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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듕쌤 Nov 14. 2023

<7화>왜 나에게 이런 일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살다 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암에 걸려 돌연 세상을 떠난다거나,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려 고통받는 사람들.


너무도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자라야만 했던 사람들까지.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들이 겪는 고통에 쉽사리 위로를 건넬 수도 없다.


"누구에게나 다 고통은 있는 거야. 고통은 축복 이랬어! 이겨내."


이 어찌나 무심하고 잔인한 말이란 말인가.




가까운 사람, 가족이 세상을 떠난 뒤로 큰 고통에 빠져 산다면.


삶이란 상실의 연속이다.


그 상실은 작은 것일 수도 있고 큰 것일 수도 있으며 내 인생을 통째로 잃어버릴 만큼 클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 인생의 반쪽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나에겐 여전히 남은 반쪽, 내 삶이 남아있다.


상실은 크고 괴롭다.

외롭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잃은 것만 생각하기엔 아직 내 삶은 지속되고 있으며 남아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남아있다.


결혼을 하기 전엔 남편이란 존재의 의미를 잘 상상하지 못했다. 내 삶의 반쪽을 담당할 사람이 세상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 후 1년쯤 지난 지금, 이 사람이 나를 떠난다면 어떤 슬픔이 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만약 그가 나보다 먼저 죽기라도 하면 슬픔에 먹혀 나의 남은 삶을 의미 없이 망가져 살아가거나 포기해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종종 하곤 한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반쪽을 잃었다고 전부를 포기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100억짜리 집이 반토막이 되어 50억이 되었다고 화가 나 아무나 가지라며 남은 50억마저 거저 버리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더 소소하게 생각해 봐도 주가가 반토막 났다며 그 반이라도 얻는 대신 갖고 있는 권리를 전부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남은 것이라도 잘 추슬러 다시금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다 보면 가슴속 구멍이 생기더라도 많은 부분을 다시 채워 살 수 있을 텐데.


금전적인 건 어떻게든 다시 채워서 산다지만 마음이 비어버린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기에 지레 겁먹고 다 포기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의 선택지는 종종 죽음이 되기도 한다.



고칠 수 없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내가 특별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선천적인 문제로 질병을 얻어 고통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반면 운동이나 건강한 식이를 전혀 하지 않아 그에 응당한 결과로써 질병을 얻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것이든 고칠 수 없는 질병이란 건 동일하다.

이제 나를 이렇게 만든 무언가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신이시여, 대체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벗어날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상황을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산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옥이 아닐까.


아파서, 괴로워서, 힘들어서, 약한 내 몸을 탓하며 그야말로 죽어가는 날만 지켜보는 삶을 사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픔을 이겨내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며 희망으로 싸워나간다면 고통 속에도 행복이 있고, 삶이 있을 것이다.


최근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라는 질병에 걸린 작가의 글을 보았다.

'그녀가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그 과정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고 있겠구나.'


자동차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는 이제 희망의 전도를 넘어서 사회복지학 교수로서 세상의 많은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픈 이들이 이렇게 단단히 이겨낼 수는 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겨보자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면 절망적인 삶 속에도 희망이 있고, 의미가 있고,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나에게만 불행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가정폭력, 이혼, 자식의 탈선, 남편의 외도, 부모와의 갈등,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면?


어린 시절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괴로운 일을 겪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남에게 쉽게 말하기 힘든 일을 겪어 내 삶은 이제 망했다고,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나쁜 일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나쁜 일은 연속으로 일어난다.


내게 일어난 하나의 나쁜 사건을 내 선에서 끊어내지 못하면 나쁜 기운은 계속 내 주변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내 속에 머물던 물귀신이 내게 속삭인다.


"너는 행복하면 안 돼."


마치 좋은 일이 일어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마구 뿌리쳐낸다. 그렇게 또 나쁜 일이 일어나면 슬퍼하면서도 왠지 위안을 받는 것 같다.


"거봐. 나한텐 이게 어울려."


가정폭력을 겪었던 아이들은 자라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다. 사랑받는 법을 모르니 사랑을 주는 방법도 모른다. 그러니 결혼하고도 쉽게 이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도 아이는 비뚤어져버린다.


혹은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해가 된다며 아예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려고 하지도 않는다.


결국 나쁜 일을 만드는 건 '나 자신'이 되기 시작한다.


처음 한두 번은 우연이지만 세 번, 네 번 연달아서 일어나고 있다면 그건 내가 막아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시작은 단순한 불운일 수 있다.


원치 않는 상황에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그 불운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평생 끌고 간다면 좋은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나도 행복할 자격이 있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야만 작은 일부터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는 일이 잘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기적인 그런 삶.


힘든 상황에서 자랐기 때문에 더 작은 것들에도 감사하며 모든 일을 기적이라 여길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이 있음에 감사한 하루다.



<표지사진: 내 인생 가장 우울한 시기에 떠난 여행. 절대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음껏 웃을 수 있었고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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