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아란 Jan 10. 2022

낚시


파르르 찌가 떨린다. 자조와 낭패의 몸부림이 전해진다. 상대의 열패감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리라. 그 누군가를 딛고 올라설 기회를 잡기 위해, 또는 그 약한 고리를 빨리 보듬어 전체의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 눈치 빠른 강태공이 생 하나를 건져 올린다. 크거나 작거나 붉거나 검거나, 모자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오롯한 생 하나.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서 반 토막도 되고, 갑절도 되는 모양이다. 탄식과 함성이 그때 그때 다른 것을 보면.


붉바리가 딸려오면 감탄이 터진다. 대단하다고, 부럽다고, 축하한다고 웃음꽃이 핀다. 잡은 사람, 옆에 사람, 이따가 같이 회 한 점 할 사람 다 즐겁다. 역시나 붉은 몸, 열기 한 마리가 딸려오니 카메라 샤워 한 번 시원하게 받는 법이 없다. 여타 잡어들로 바글대는 물통 속에 무심히 던져진다. 낚시꾼은 손 빠르게 다음 미끼를 걸어 고급 어종이 꾀이기를 소망한다. 전복이니 성게알이니 하는 고급 미끼 값을 헤아리면서.

“우리딸은 왜 이 세상에 왔어?” 엄마가 묻는다. 네댓 살이나 될까 한 아이는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눈도 떼지 않고 답한다. “엄마 혼자 무서울 까봐.”


소문난 결혼과 연이은 이혼으로 세간의 이목이 따가웠을 여배우다. 연애고수들 얘기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던데, 버거웠던 시선도 또 다른 시선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걸까. 그녀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TV 관찰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부모 닮아 오목조목 인형처럼 예쁜 꼬마의 한 마디로 시청률이 솟구쳤다. 다음 날 인터넷 뉴스로 내용을 접한 내 눈물샘도 울컥한다.


울컥은 울컥이고, 나도 호기심이 동해 아이에게 묻는다. 주말 내 잘 놀아주고 샤워 시켜서 머리 탈탈 말려주며 들뜬 티 안 내려고 애쓰면서 같은 질문 해본다.


“엄마랑 아빠랑 언니랑 같은 가족 되고 싶어서.”


너무 좋아 보였단다. 그래서 그 먼 곳을, 그 복잡한 길을 헤치고 우리에게 온 거구나. 나는 목이 메여 제대로 대꾸하지도 못했다.


아이는 우연히, 가 아니라 제대로, 우리를 찾아왔다. 낚싯줄 같이 가느다랗고 투명하지만 질기디질긴 인연의 끝에 우리가 있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삼백 년을 내달려 색시나무 종아리에 발끝을 닿은 신랑 은행나무의 사랑(반칠환 詩 <은행나무 부부> 중에서) 처럼, 아이는 우리에게 환호하고 감탄하고 고마워해 주었다. 꿈인 듯 출렁이던 그 만남의 시작을 생각하면 너와 나는 모든 행운을 한날 한시에 수령하였으므로 매일 매일이 한 턱 내는 잔칫날이어도 과할 것이 없으리라.


큰애 같은 반에서 아이 하나가 몇 몇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애가 목격자로 지목되었다며 교내 학교폭력위원회에서의 진술을 요청하는 담당교사 연락을 받았다. 아이와 상의해보겠습니다. 우선은 그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하교 후 만난 아이가 두 번도 묻지 않고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열세 살짜리 보다 마음이 얕은 나는 담당자에게 익명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날 밤 아이가 자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물었다. “엄마. 만약에 내가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떨 것 같아?” 말을 고르느라가 아니라 여러 말이 한꺼번에 튀어 나와 말이 되질 못했다. 일단 아이를 앉혀놓고, 일단 손부터 잡고, 마음 추슬러 몇 마디 전했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어른스럽지 못한 듯 하여 자기 전 기도가 길었던 것 같다. 다음 날에, 그 다음 날에도 아이에게 엄마 마음을 전했고, 그러면서 하느님께는 자식 되는 마음으로 하소연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 다리를 건너는 법을 나는 모르니까, 아버지께서 재주껏 어떤 아이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가해자 셋은 사흘 째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


TV 속에서는 붉바리를 낚은 사람만 황금 배지를 달았다. 같은 날 잡은 열기도 아마 맛나게 구워지고 조려져 상에 올랐을 것이다. 모두가 위대하고 빛나는 인연으로 만난 우리는 하나같이 가슴팍에 황금배지, 금강석배지를 달고도 이토록 슬플 일이 많다. 작은 지혜로 너른 세상 나기가 고단하다.



이전 03화 3년 적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