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belong here
너무 대충 만들고, 너무 많이 불러서,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팬들이 원해도 절대 라이브 무대에서 부르지 않는다는 라디오헤드의 “크립” creep.
아마 세대를 넘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락 넘버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도 라디오헤드도 나이가 들어 유연해졌는지 요즘은 대략 7-8년 주기로 한 번씩 불러준다고 한다. 역시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아니 자본주의 앞에 장사 없는 걸까)
Creep은 1992년도에 나온 곡인데, 라디오헤드의 리더인 톰 요크가 첫사랑에 실패하고 쓴 곡이라고 한다. 사랑에 실패하고 쓴 곡의 가사인데, 내용을 보면 상실이나 외로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면이 있다.
But I'm a creep / I'm a weirdo
What the hell am I doin' here? / I don't belong here
I don't care if it hurts / I wanna have control
난 찌질해. 난 괴짜야. 젠장 나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난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상처받아도 상관없어. 난 이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길 원해.
사랑이 고통스러운 건, 상대의 마음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매달리다 보면 현타가 올 것이고 (젠장, 나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난 그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이 관계의 주인이 아닌 것 같아 괴로운 마음.
사람과 사람이 모여 지내는 곳 (학교든, 어떤 커뮤니티든, 온라인상이든, 직장이든)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소외감과 현타를 느끼는 사람들은 늘 있지 않을까?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사실 반복적인 말인 것은, 고독이란 사람 사이에 섞여 있을 때 온전히 나를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만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 아닐지. 무인도에서라면 고독보다는 고립이란 말이 더 맞지 않을까.
심리 상담을 받는 중인데, 상담사 선생님이 나에게, 지금껏 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늘 어딜 가나 느껴지는 외로움과 이질감. 도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이 사람들과 뭘 하고 있는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철이 들면서부터 늘 해왔었다. 이 정도의 고독감은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했다. 유달리 민감한 사람 (HSP - Highly Sensitive Person)이라면 좀 더 심하겠지 정도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이해받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이 지금 한국인들의 공통적 정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편을 가르고, 취향을 가르고, MBTI로 가르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라디오헤드의 “크립”이 한국인들에게도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