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들은 엄마, 그러니까 나의 아내를 무척 잘 따르고 좋아한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엄마밖에 모른다.
나는 어땠었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었나!
나는 과연 엄마를 좋아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좋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엄마가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합정시장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생선 장사를 했던 애틋한 기억, 초등학교 5학년때 운동장 평행봉에서 같이 놀던 친구가 다쳐서 엄마랑 친구네 집에 사과하러 갈 때 미안했던 기억, 그리고 엄마가 육성회비(그 당시의 초등학교에서 걷어가는 재원으로 월 5,000원 정도의 금액) 못 줘서 학교 안 가고 동내 어귀에서 비 맞고 울던 처량한 기억, 학교 갔다 오면 예습, 복습 마치고 어두워지면 엄마가 일하는 관광버스 세차장으로 가서 차 닦는 것을 도우며 손님들이 남기고 간 귤, 삶은 계란 등을 좋아라 먹으며 세차를 돕던 아련한 중고등학교 때의 기억,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아리고 슬픈 기억들이 전부인 것 같다.
엄마는 서운하거나 속상하실 때 내가 폐결핵이 걸렸을 때 당신이 다 죽어가는 나를 살려놨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별로 좋지도 않고 '부모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반감이 먼저 앞선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퇴직금을 탓을 때 집에 갈 때마다 몇 번인가 이 얘길 했었다.
"너 이놈아, 세상에 너 같은 놈은 없다고, 퇴직금 타서 지엄마한테 돈 한 푼 안 준 놈은 너밖에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너보고 도둑놈이라고 한다고"
그 얘길 자꾸 들으니까 어디에다 얼마나 떠벌리고 다니면서 흉을 보셨는지 짐작이 가고 정말로 다른 사람들은 퇴직금 받으면 당신 엄마에게 얼마를 떼어주는가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 하나,
"세상에 너 같은 놈 없다, 결혼하더니 마누라한테 푹 빠져서 지엄마 아빠는 생전 신경도 안 쓴다"라고도 하신다.
다들 결혼하면 부모보다는 자기 자식과 아내를 챙기고 그렇게 새로운 가정 위주로 살아가는 게 아닌가!
나는 지금의 나의 아들과는 다르게 엄마에 대한 좋은 감정보다는 나쁜 감정을 더 많이 지니고 있는 거 같다.
왜 그럴까?
어렸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엄마이기 때문에 다 이해하려 했고 잘 몰랐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장인, 장모가 아내인 딸과 처남들에게 하는 것을 보고 비교도 하게 되면서부터 엄마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을 가슴속에 더 많이 쌓게 된 것 같다.
그런 엄마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그렇게 하나뿐인 아들에게 애걸복걸하시더니 이제는 나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건지 잔소리도 안 하시고 마음 편하게 대해주신다.
엄마가 과거에는 당신 생각만 하고 당신 얘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자식을 배려하고 생각한다는 마음이 들었서인지 나도 엄마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애틋해지는 것 같다.
'엄마가 나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나를 염려해 주기 때문에 나도 엄마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그런 사랑이 조금씩 자리 잡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와서 엄마는 왜 그러실까?
당신의 시계가 멈출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제는 내 시계에 맞춰 주시려는 걸까!
사랑은 참 어렵다.
이제야 엄마를 조금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이제는 아내가 좋은 감정들을 다 지우려 하고 있다.
멀어지려는 아내의 사랑도 놓지 않아야 하고 다가오는 엄마의 사랑도 잡아 드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제라도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이어다 붙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