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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녀를 좋아해

(이런 감정 뭘까)

그녀를 처음 봤을 땐 참 도도하고 당당해 보였어.
보는 순간 바로 흠모하고 말았지 뭐야.
언제부턴가 그녀를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내 삶은 무기력해지고 뭔가 보람을 잃는 것 같았어.

그래서 매일매일 출근하는 날만 기다려.
어느 때는 토요일 일요일 휴일도 없이 매일매일 출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오늘도 며칠 쉬었다가 월요일에 출근을 했어.
그녀가 날 보더니 말을 하더라고

"부장님 머리를 시원하게 깎으셨네요"

그냥 웃었지, 뭐라도 대답을 할 걸 그랬어, 바보같이,


다음 날이었어.

그러니까 화요일이었지.

출근하는 그녀가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고 시무룩해 보이는 거야.

왜 그럴까, 뭔가 걱정이 있나, 좋지 않은 일이 있나,

혼자서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해봤어,

혹시 어제 나한테 관심 표현을 했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삐졌나,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어, 나의 착각이겠지,


다음 날 그러니까 수요일이었지.

오늘도 그녀가 기운이 없어 보이고 뭔가 고민이 있어 보여.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참 난감하네.

그렇게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목요일까지 하루를 그냥 흘려보냈어.


오늘은 금요일 아침이야, 어떡하지,

오늘 그녀를 보내면 3일 후에나 봐야 되는데 이대로 그녀를 기운 없게 돌려보낼 순 없어.

, 네임펜으로 "기운 내시고 파이팅 하세요"라고 글씨를 써서, 그녀가 좋아하는 라떼 커피를 하나 사서 책상 위에 올려놔 볼까,

어때, 괜찮을 것 같지.

아니야, 그것도 이상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커피를 안 사 주면서 그녀한테만 커피를 사주는 것도 좀 이상하잖아,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내가 그녀라 표현을 하지만 직장 동료잖아, 직장 동료가 힘들어하는 게 보여 커피 한 잔 사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아,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래, 차라리 내가 간식으로 자주 먹는 미니 초콜릿에 "힘내세요, 파이팅" 글씨를 써서 주는 거 어때,

괜찮을 거 같은데, 한번 써보자, 포장지 위에 네임펜으로 쓰니까 글씨도 아주 잘 써지는군, 유성펜이라 금방 마르니 손에 묻지도 않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해 주지,

출근하면 바로 볼 수 있게 책상에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야 이 방법도 좀 시대에 뒤떨어지고 유치한 것 같아,

초콜릿을 책상 위에 놓았다가 이내 다시 들고 나온다.


이것저것 업무 준비를 하는데 그녀가 잠깐 자기 방에서 나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다 싶어 왔다 갔다 하면서 일하다 마주친 것처럼 "이거 어때요"하면서 "힘내세요, 파이팅"이 쓰여 있는 초콜릿 2개를 내밀었어.

"요즘 기운이 없으신 것 같아서 제가 준비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세요"

"제가 기운이 없어 보였나요. 그럼 저는 힘내세요"라고 웃으며 그녀가 받아서 봉지를 까서 먹는다.

우와 대성공이다, 그래, 그녀는 저렇게 웃으며 당찬 모습이 참 맘에 들어,

근데 나 왜 그래? 너무 관심을 갖는 거 아니야, 몰라 그럴 수도 있지 뭐, 다른 마음은 없잖아, 그냥 순수하게 좋은 거잖아,

맞지, 응,

그냥 그녀가 잘 됐으면 좋겠고 웃었으면 좋겠어.


그래 다행이야.
그녀가 주말을 생기 있게 웃으며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걱정을 하나 덜어놓은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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