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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밴드 모임

정말이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십 년 만에 초등학교 밴드 모임이라는 곳에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졸업하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친구들을 보면 얼굴이나 기억할까'라며 망설여지긴 했지만 최근 까지도 서로 만나며 지내는 2명의 친구가 있어서 스스럼없이 초등학교 밴드 모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초등학교 밴드 모임이라는 것이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그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순수했던 기억에 젖었다가 서로 눈이 맞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는 친구들도 몇 명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초등학교 밴드 모임에 나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 당시 좋아했던 효정이나 현정이라는 친구가 나오지 않을까 혹은 두 아이의 소식을 아는 친구라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과 다들 모여서 뭘 하는지 궁금해서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했던 아이들은 밴드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지도 않았고 대놓고 다른 친구들에게 소식을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모임은 1차에서 저녁 먹으며 술 마시고 학교 다니던 시절의 추억 얘기도 하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는 것이 전부였다.

2차에서는 맥주 마시고 당구 치거나 노래방 가고 한마디로 모일 때마다 나온 사람들끼리 회비를 걷어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전부였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나 건설적인 대화는 전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식의 이런 모임에 계속해서 나가야 하는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뜻하지 않게 초등학교 다닐 때 6년 동안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직도 초등학교 때의 티를 벗지 못한 아이를 보게 되었다.

이름은 수정이,

수정이는 우리 초등학교 밴드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조그마한 키에 날씬한 외모, 다소곳한 맵시가 내 마음을 끌리게 했다.

그 아이와 어떻게든 말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모임 때마다 같은 테이블에 앉으려고 고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해보려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

초등학교 밴드 모임이 있는 날에 다른 모임이 겹치면 다른 모임은 다 포기하고 초등학교 밴드 모임에만 나가게 되었다.

어울리려고 좋아하지도 않는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나도 참 별종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호감을 갖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침데기처럼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초등학생처럼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 아이를 속으로만 좋아했다.

옛날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변함없이 아직도 누군가를 짝사랑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 아이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다가 언젠가 한 해가 다 지나가고 12월에 새로운 회장단 선출이 있어 임원이 바뀐 뒤로 그 아이는 전에는 임원이라서 모임에 그렇게 충실히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다음 해부터는 전혀 꼬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한마디 깊이 있는 대화도 해보지 못하고 그렇게 아쉬운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때처럼 또 하나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렇게 내 추억 속에서 잊혀간 얼굴들을 그리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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