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선구자가 되려는 그 남자

그 남자 운전대만 잡으면 세상의 선구자가 되려고 합니다.
터널에서는 조금 더 잘 뚫리는 차선으로 변경하고 싶어도 참고, 흰색 실선에서는 절대로 끼어들기 안 하고, 횡단보도에 사람이 건너고 있으면 반드시 기다려 주고,
"혹시 그 남자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운전하나요!"
특히 그 남자 끼어들기할 때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웅장함을 느끼며 끼어들기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비장함까지 느껴집니다.
마치 "세상의 운전자들아 끼어들려면 나처럼 해라"라고 외치는 것처럼,,,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다른 운전자들은 끼어든 순간 또는 자동차의 앞부분을 일단 들이밀어놓고 방향지시등을 켜는데 그 남자 반드시 끼어들기 전에 방향지시등을 오랫동안 켭니다.
약 10초 이상, 길게는 30초 이상, (선구자임을 합리화하기 위해 너무 길게 잡았나요^^)
그리고 끼어들려는 뒤차와의 간격을 확인한 뒤 뒤차가 끼워주려는 의사가 있는지, 뒤차가 속도를 줄이는지, 뒤차가 안 끼워 주려고 속도를 더 내는지를 확인한 다음에 끼어듭니다.
그리고 아무리 뒤차와의 거리가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끼어들더라도 반드시 비상 깜빡이를 켜서 감사(더 속도를 내서 달려와 끼워주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서 고맙다는)의 표시를 합니다.
이유인즉슨 그 남자가 끼어들어 뒤에서 따라오게 되는 자동차 운전자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배려라나요,,,
아무튼 그 남자 오지랖이 넓어요^^
동승자는 그 남자가 끼어들 때마다 매번 비상 깜빡이를 켜주는 그런 것들이 너무 답답하니 제발 하지 말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 남자 난폭한 운전자보다 무례한 운전자를 더 싫어합니다.
도로에서 속도를 내어 난폭하게 운전하는 사람은 본인이 속도위반을 해서 딱지를 떼어도 다른 운전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고 원활한 교통 흐름에 방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무례하게 끼어들어 비상 깜빡이도 안 켜주고, 무례하게 일부러 천천히 가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스크래치를 주고 원활한 교통의 흐름에 방해를 준다나요,,,
그 남자 출근할 때 한강대교 남단에서 북단 쪽으로 주행해서 강변북로를 타야 합니다.
그러나 한강대교 남단에서 북단 쪽으로 주행해서 강변 북로를 타기 위한 도로는 남단 시작부터 막히기 시작합니다.
그 남자는 막히더라도 남단의 끝에서부터 천천히 앞차들을 따라 진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중간에서 끼어들거나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흰색 실선의 끝에서 무례하게 끼어들려는 자동차 운전자들 때문에 절대 끼워주지 않으려고 엄청난 신경전과 함께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었다 하는 예민한 싸움을 합니다.
그러다 그 남자 어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아니다.
내가 왜 이렇게 할 필요가 있냐!
차라리 나도 중간에 가다가 끼어들고 내 앞으로 들어오는 차들도 기분 좋게 끼워주자."
그게 그 남자의 마음도 편하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맞는 생각인가!)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물론 남단의 끝에서부터 진입해서 꾸준하게 주행하는 자동차 운전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선구자가 되려는 그 남자가 선택한 자기 합리화 내지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동안 그 남자가 끼워주지 않으려고 실랑이했던 운전자들도 그 남자처럼 선구자적인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내일부터 출근시간에 한강대교 남단에서 북단 쪽으로 강변북로를 진입하려고 끼어드는 자동차가 있으면 저인 줄 알고 꼭 끼워 주세요^^
과연 그 남자는 선구자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