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일주일에 세 번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오전 8시 30분쯤 은행에 오셨었다.
빈 박스와 문서를 소각한 폐지들을 가져가신다.
내가 오기 전부터 오셔서 폐지를 수거해 가고 있어서 어떻게 인연이 되어 오시게 됐는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온 뒤로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쯤 일주일에 세 번씩 오시니 폐지 물량이 적게 나오는 날도 있어서 저희도 미안하고 힘드실 테니 수요일, 금요일에 두 번만 오시라고 했다.
요즘같이 날씨가 추워지니 잘한 일인 것 같다.
할아버지도 은행거래는 하시는데 연세가 있어서 은행업무 보러 따로 시간 내서 오시지는 않고 폐지 수거하러 오시는 날에 돈을 인출해 가거나 입금하는 것을 부탁하신다.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할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처럼 작은 키라 왜소해 보이고 추워 보여 더 애틋하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침에 나가셔서 거의 반나절은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모으셨다.
아파트 주차장 한 구획을 당신의 손수레와 폐지를 위해 전용하시면서까지,
가끔 집에 들르면 손수레를 끌고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음료수도 사주고 과자도 주고 맛있는 거 사드시라고 용돈도 준다고 자랑하셨었다.
그래서 나도 할아버지께 가끔 박카스도 드리고 내가 쟁여두고 먹는 간식들도 조금씩 챙겨드린다.
내가 인색한 건지 아버지에게 했던 사람들처럼 용돈은 드리지 못하겠다.
얼마 전에는 폐지와는 상관없이 낮에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같이 은행에 일이 있어 나오셨다.
처음으로 두 노부부를 같이 뵈었다.
뭐가 그리 고마운지 할머니는 늘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기다려도 할아버지가 안 오신다.
정리해서 내어 놓은 박스들과 소각된 폐지들을 다시 들여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번거로워 좀 더 기다려 본다.
자꾸 조금만 더 하면서 아무리 밖을 내다봐도 할아버지 손수레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두 번 일이 되었지만 폐지들을 다시 안으로 들여다 놓는다.
필경 어딘가 아프신 게다.
독감이라도 걸리신 겐가?
일전에 할머니가 늘 고맙다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나는 우리가 박스와 폐지를 주기 때문에 고마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조금은 했었는데 사실은 할아버지가 우리의 짐(할아버지가 가져가지 않으면 우리가 버려야 할 수고스러운 일)을 덜어가 주시는 고마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할아버지가 별 탈 없이 다음 주 월요일에는 나오시겠지?
(옛날에 폐지 주우실 때 누군가 길에서 찍어 주었다는 사진, 핸드폰 통화하는 우리 아버지 생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