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그 남자 24화

그 남자의 아내

몇 년 만에 정말이지 오랜만에 그 남자의 아내가 다시 자동차의 조수석 자리에 앉았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아내는 신혼 초기 그러니까 결혼해서 1~2년 을 제외하고는 운전하는 그 남자 옆의 조수석에는 거의, 아니 전혀 앉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기가 신생아 때 아기를 데리고 뒤에 따로 앉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 같다.

그러나 아기가 조금씩 커 가면서는 시댁(대부분 시어머니와의)과의 불화로 인한 잦은 말다툼으로 관계가 악화되어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둘이서만 자동차를 타게 되어도 아내는 뒷좌석에 항상 따로 앉아서 다녔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몇십 년 만에 아내가 자발적으로 "겨울인데 여름 바지를 입어서 너무 춥다며 엉빠를 틀어달라"고 그 남자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그 남자가 "뒤에서 춥다고 하지 말고 추우면 앞에 와서 앉으라"라고 수백 번 말을 해도 듣지 않던 아내가 오늘은 조수석에 그것도 자발적으로 앉은 것이다.

얼마나 추웠으면 그랬을까?

혹시 마음이 다정, 화해 모드로 바뀐 걸까!

아니야, 아니야,

마음이 바뀌진 않았을 거야, 정말로 추웠겠지!


아뿔싸,

그런데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생겼다.

아내가 옆자리에 앉아서 말을 하니 안 그래도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따발총 같은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더 크게 들려 귀청이 터지는 것 같은 것이었다.

아 차라리 그전처럼 뒤에 앉으면 좋았을 걸,

그 남자 아내가 하는 말을 계속 들어주는 척하다가 겁 없이 아내에게 대놓고 얘기를 했다.

"차라리 뒤에 가서 앉는 게 좋겠다고, 앞으로는 앞에 앉지 말라고"

아내가 조수석에 앉았다고 해서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옆에 앉아도 옛날처럼 애틋하고 따뜻하고 설레는 기분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연애 때는 옆에 앉으면 손도 잡고 잠깐 틈나면 뽀뽀도 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말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고통이다.

그 남자의 아내는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거나 할 말이 있으면 옆사람이 듣거나 말거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 소리를 옆에서 들어주고 호응해 줘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다.

달콤하고 로맨틱한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남자의 마음과 생각이 변한 걸까?

아내의 모습과 태도가 바뀐 걸까?

어쨌든 뒤에 앉아 잔소리할 때가 그나마 더 좋았던 것 같다.

다행히 아내가 뒤로는 예전처럼 다시 계속 뒤에 앉는다.

참 다행이다^^

때로는 좋았던 과거는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겨두고 돌아가지 않는 것이 그나마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아내도 많이 늙었다.

흰머리가 많이 보인다.

그렇게 매정하게 대해도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은 지내온 사랑에 대한 예의인가?


keyword
이전 23화그 남자가 빡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