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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불안으로 아이의  영어 정서를 망치지 말자



엄마표 영어라는 낯선 길을 가면서, 그 행위를 하면서도 항상 불안했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표 영어가 영어 교육에 있어서는 정답이라는 믿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방법이 맞는지 항상 불안했던 것은 아이의 영어 성과가 내가 기대하는 것만큼 나오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남들과 비교를 하려고 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나름대로의 성과의 기준을 두고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원하는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아이를 닦달했다. 그럴 땐 언제나 아이의 태도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네가 집중을 하지 않아서야. 자세가 그 모양이어서 그런 거야 '등으로 언제나 아이를 채근하는 동안 아이가 느꼈을 감정들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끔 나는 나와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된다. 나처럼 서툴고, 불안한 분들을 볼 때면 이맘쯤 내가 저질렀던 실수들이 떠오르곤 한다. 다른 부분에서는 딱히 후회는 없지만, 아이가 '읽기'를 배우는 과정에서는 정말 매일이 힘든 날들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제법 똘똘하다고 느꼈던 큰 아이가 사이트 워드를 빨리 읽어내지 못해서였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쯤 JFR 읽기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외워지지 않는 것인지, 아이는 바로 전날 읽었던 단어들도 다음 날이면 말도 안 되게 읽어내기도 했다.



물론 당시에는 내가 진행하는 방식이 미숙하여, 사이트 워드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어떻게 진행하는 지도 알지 못했던 때였다. 그저 따라 읽도록만 시켰는데 목적도, 방법도 정확하지 않으니, 기간은 기간대로 늘어지고 아이는 전혀 읽지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짧고 단순한 문장을 1학년이나 되는 아이가 외우지 못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났고, 그저 집중하지 않은 아이 탓만 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진행할 때마다 매번 화가 났고, 아이도 사이트 워드를 할 때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때에는 파닉스의 문제라 생각이 들어 파닉스 교재를 들여서 한번 짚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어찌 되었든 반 강압적으로 꾸역꾸역 아이는 읽어내는 일에 성공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에게 너무 많은 질책을 받았던 터라 스스로 책을 골라 읽어내는 일은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은 '잘 못 읽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읽기에 대한 부담감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아이는 듣기도 잘하고, 영어로 말하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딱 하나 '읽는 것'에는 부담을 느껴했다. 생각보다 그 기간은 길었다.



충분히 잘할 수 있음에도 아이가 그렇게 책을 읽을 때마다 위축이 되었던 이유는 내게 받았던 따가운 시선과 감정 섞인 말들 때문이었다. 아이는 매번 시험을 치르듯이 책을 읽어내야 했다. 긴장과 불안 속에서 본 글자들이 아이에게 얼마나 남았을까. 기간은 길었지만 아이가 마음 편하게 눈으로 글자를 외울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둘째의 경우는 아예 기대가 없었던 터라, 그다지 내가 들인 노력이 없었음에도 단어 한 두 개를 읽어내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라고 기특했다. 언제나 나는 아이가 뭔가를 읽으려고 할 때면, 그 자체를 대견해했고, 읽지 못했을 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내 감정이 그대로 아이에게 전해졌는지 아이는 틀렸다고 실망하지 않았고, 읽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아이는 읽어내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리고는 어느 날, 언니가 읽기 연습을 하는 책을 언니보다 더 유창하게 읽어버리게 되었다.



둘째의 성과는 큰 아이의 부족함을 더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었고, 나는 알게 모르고 그럴수록 큰 아이를 더 재촉했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그것은 큰 아이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이었다. 똑같은 아이를 두고, 나는 서로 다른 크기의 기대치를 품고 있었다. 그게 큰 아이에게 자신감을 떨어트리는 일임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한두 번 읽어본 책을 '읽는 것이 당연하다'가 아니라, '읽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다면 아이가 읽어내는 한 두 문장에도 어쩌면 감탄했을지도 모른다. 내 눈에는 아주 단순한 문장일지라도 아이 입장에서는 난생처음 접하는 영어 문장이 아니던가. 그렇게 쉽게 외워지고, 읽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는데 당시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이미 1학년이었고, 주변에는 제법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제일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읽기'에 관해서 제대로 된 방법을 숙지하지 않고 덤볐던 일이다. 만약 방법을 정확히 이해했다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를 괴롭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 아이의 부족함만을 탓하여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든 일도 후회가 된다. 지나고 보면 그것 참 별 것도 아니었던 그냥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데, 나는 왜 그 순간 왜 그리 그것에만 집착했던 것일까. 그게 두고두고 아이의 읽기 성장에 방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읽기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 자체는 엄마표 영어에 있어서 큰 문제가 되는 일이다. 영상을 보고, 소리를 듣는 행위만으로도 영어는 성장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려는 목표는 책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아이가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첫 단추가 되는 사이트 워드에서 삐걱거리면 아이는 읽는 행위 자체를 꺼려할 수밖에는 없다.



유창하게 읽어내는 과정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된다. 유창하게 읽는다는 것은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뿐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며 속도감 있게 읽어내는 것까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트 워드의 기간도 인풋의 정도, 문자 감각, 나이, 진행방식에 따라 아이마다 다르다는 것을 엄마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애초에 짧게 끝나는 일이 아니니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 하는 일이다.



'읽기'의 핵심은 '독해력'에 있다. 결국 책을 읽는 이유는 '내용에 대한 이해'인데 사이트 워드나 파닉스는 그저 음가를 조합하여 단어가 갖고 있는 소리를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니, '독해력'과는 딱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더 크고 중요한 부분은 단어와 문장을 쌓아주는 일이다. 비록 읽어내는 일이 더디게 갈지라도 단어와 문장을 쌓아주는 일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큰 아이의 경우에도 읽는 부분이 너무 느려 문제가 될 것이라고 여겼지만, 아이가 읽어내는 일이 수월하게 되자, 많은 아랫단계는 굳이 거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이해 수준이 되는 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림책을 꾸준히 읽어준 덕분에 제법 많은 양의 단어와 문장을 쌓아온 덕으로 오알티에서 바로 초기 챕터로 넘어가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엄마들에게 기록지를 쓰도록 했다. 기록지 양식은 엄마표 영어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따졌을 때 중요한 것부터 순서대로 작성하도록 만들었다. 영상 보기/소리 노출/한글책/영어책/사이트 워드(리딩)의 순이다. 사이트 워드는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고, 엄마표 영어의 진행과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10%로 되지 않는다. 나머지를 충분히 잘 채웠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10%로도 안 되는 부분에 집착하여 아이를 다그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문제는 그 10%로 때문에 아이가 나머지 90%마저 거부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표 영어는 10년을 내다보아야 하는 길이다. 영어 감정을 상하게 하면 어차피 이 길을 끝까지 갈 수가 없다. 엄마는 감시하는 눈빛이 아닌 응원의 눈빛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것이 보이면 그 자체로 칭찬해야 한다. 그런 엄마의 자세가 결국에는 아이 스스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임을, 그러나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일이 전체를 그르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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