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잘 될 아이템을 찾으라고? 아니 나는..
주방에서 일을 그만두고, 평소 동경하던 사업을 시작했다.
나는 돈이나 현실에 떠밀려 소중한 것을 놓쳐 버리는 우리에게
숨 돌릴 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과 성과에 매몰되어 하늘 올려다볼 틈조차 없는 우리에게
스스로의 안전한 공간이 마음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곧
‘돈은 내 주인이 아님임을 선언하는 소비’가 되길 바랬다.
마치 교회에서 ‘나의 주인은 돈이 아닌 하나님입니다.’의 선언이 되는 십일조처럼 말이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창업 성공담, 경영학, 마케팅에 관한 책들을 다수 섭렵했다.
책을 여섯 권쯤 읽을 무렵, 내 마음에 큰 파도가 요동 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업가들의 아이템은 뛰어나고 심플하며 직관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일은 잘 될 거 같지 않았다.
차라리 그들이 추천해 주는 당장 돈이 될 만한 아이템들을 실험해보는 게 현명해 보였다.
내가 주도적으로 짠 계획 속 첫 마케팅에 대한 대중의 피드백은 싸늘했다.
조회수는 그저 12회에 불과했고, 내 지인들 말고는 그 어떤 피드백도 얻지 못했다.
‘절벽에 뿌리를 내렸구나, 난 자랄 수 없을 거야.’ 비관적인 마음이 가득했다.
비슷한 시기 사업을 시작한 친구는, 실제 수입은 알 수 없었지만 나에 비해
훨씬 가파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 상권의 독점 위탁 판매권을 따내고, 일본으로 미팅을 하러 날아갔다.
하지만 나는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일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고
당근 마켓에 ‘귀찮은 청소와 집안일 대신 해드립니다.’ 같은 일회성 사업 홍보 글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여전히 내 마음 안에는, 잘 될 거란 확신만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일상의 여유를 더해주는 브랜드’의 대표가 일상이 불안으로 가득하다면 누가 그 브랜드를 신뢰하고 구매할까?
그래서 나는 먼저 내 감정이 숫자와 관계없이 최대한 일정하도록 유지하기 위해 사업에 관한 책은 잠시 덮어두고, 내 마음 안에 불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의 불안은 어디서 온 걸까? 왜 불안한 걸까?
사업이 잘 안 될 거란 불안감, 잘 안된다는 것은 내 상품이 시장에서 실패한다는 것.
그것은 곧 며칠, 몇 달, 몇 년의 기회비용을 날린다는 것, 그리고 남들에 비해 뒤쳐지고
나아가 결혼 실패, 불안정한 수익과 나아가 나의 삶의 전반적인 질과 수준의 하락.
생각해 보면 이것은 모두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에 의한 불안감이었다.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구성원에 비해 스스로가 못날 때 자신이 곧 도태되었다 여기며, 그것에 대해 극히 불안해한다.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지우지된다는 건 지극히 불행한 것처럼 들린다.
내 여자 친구는 매 해 여름 케냐 작은 마을에 선교를 간다.
그곳은 빈민가 지역으로 매우 가난하고, 열악하며 쓰레기 더미에 마을이 묻혀있다.
길거리엔 본드와 같은 마약을 흡입한 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쓰러져 있는 아이들이 있고,
피임 없는 성관계나 성폭행이 비일 비재 하여 끊임없이 원치 않는 출산이 반복되는 곳이었다.
그녀가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서로 다른 두 무리의 아이들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그녀에 대해서도 여성에 대한 올바른 존중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회고하기를, ‘그곳에서 작은 아기 예수를 봤다 ‘고 했는데
그곳의 몇몇 가정과 아이들은 와이 파이는 고사하고 스마트폰도 없지만 눈동자가 항상 반짝인다고 한다.
그저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며 춤과 음악 그리고 가족과 나누는 저녁 식사 시간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하루는 색연필을 이용해 색칠 놀이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이들이 색연필이란 것에 눈이 동그래져서 아주 꼼꼼히, 섬세히 일제히 집중하여 색칠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높은 지능을 가진 탓에 무엇이 생존을 위한 것인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은 거 같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그저 먹고 싸는 삶을 부러워할 때도 있다.
하지만 멀리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면 타인이 정해 논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인생에서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설령 낮은 입금 밖엔 받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모아둔 돈이 없어 집을 사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늙어버려 결혼에 실패하더라도 내 마음이 색연필에 감동할 수 있다면,
남이 실패라 부르는 삶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뭐가 문제일까?
만약 어떤 친구가 내게 ‘그렇게 살다 인생 망한다’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그런 친구를 옆에 두는 것이 실패다.
어느 날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 옆으로 가는 순간, 떠오를 내 모습이 마치 케냐의 그 어린아이와 같다면 그것이 나에겐 성공한 삶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병명을 진단해 주고 처방을 내려줘도 영원토록 평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불안해하고 우울해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안에 기준이 명확하다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유시민 작가는 얘기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리석은 세상 속에 살면서 최대한 그 어리석음에 젖지 말고, 물들지 말고
그 어리석음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그게 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 후 다시 핀 창업에 관한 책에서, 전 세계 1억 명이 사용한다는 인기 메모 앱 ‘에버 노트’의 창업자 필 리빈(Phil Libin)의 문장을 읽었다.
“창업자는 경쟁자와 고객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든다면 1억 명 정도는 좋아할 것이고, 그것이면 충분하다”
창업에서 실패하는 42퍼센트의 가장 큰 이유가 ‘애초에 안 팔릴 상품’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팔릴 상품’을 찾아낼게 아니라, 뭘 만들어도 팔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내 신념과 가치에 기꺼이 소비해주는 고객들을 개발하자. 내가 찾아가는 것은 ‘팔릴 아이템’이 아니라 ‘기꺼이 사 줄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