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죽기밖에 더 하겠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는 네가 보고 싶어!

by 김낙타 Mar 20. 2025

나는 몇 주 전, 새로 취직한 주방에서 일주일 채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


이전 주방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크고 작은 실수를 반복했다.


엄한 성격의 부장님은 그런 나를 매번 크게 질책하셨고, 그럴수록 나는 위축되어 자신감을 잃어갔다. 출근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직장이었기에 버티고 싶었다. 친구의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고, 나 또한 그의 신뢰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퇴사 후에 찾아왔다.


‘내가 정말 이 일이 맞는 걸까?’ ‘어딜 가도 혼나기만 할 거야.’ ‘난 일머리가 없어.’


설렘 대신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뒤이어 자책과 후회가 엄습했다.


나는 여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경쟁이 싫어. 우리는 왜 이렇게 경쟁해야 할까? 난 혼자 하는 일이 잘 맞는 것 같아.”


그러나 그녀는 때때로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넌 지금 도망치고 싶은 거야. 상사한테 좀 혼난 걸로 네 꿈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잖아.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네 모습을 보고 싶어.”


그러면서 얼마 전 스키장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초급 코스에서 스노보드를 타고 있었다. 능숙하게 눈길을 가르며 살갗을 스치는 바람을 즐겼다.


발끝에 힘을 주고, 전신의 근육을 유연하게 조절하며 착실히 하산했다. 그 경험은 짜릿하고 개운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은 그녀는 자연스럽게 중급 코스로 향하는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한 순간, 아까의 성취가 무색하게도 눈앞의 경사에 압도당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녀는 언니에게 물었다. “내가 내려갈 수 있을까?”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해 넘어지기 일쑤였고, 그럴수록 자신감을 잃어갔다.


차라리 기어가든 굴러가든 누워서 가는 게 편할 판국이었다.


보다 못한 언니가 말했다. “초급 코스라고 생각하고 당당하게 타 봐!”


반쯤 체념한 그녀는 ‘그래,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당당히 눈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려움이 걷히고, 그녀의 앞에는 하늘에 걸린 주홍빛 노을과 저마다 스키와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깨달았다. 중급 코스는 처음엔 두려웠지만, 막상 경험해 보니 더욱 경쾌하고 짜릿한 코스라는 걸.


이 이야기는 ‘뇌가소성(Neuroplasticity)’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 행동,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긍정적인 생각을 반복하면 신경회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즉, 역경이 닥쳤을 때 스스로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뇌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한다.


누군가는 상사의 질타에 ‘그래,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다 내 탓이야.’라고 스스로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어.’, ‘이건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닐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지켜내면, 다음을 위한 반등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더 잘하고 싶기에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렇게 쓸모없거나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고, 노력의 결실을 맛본 순간도 있었다.


그렇다. 때때로 우리는 두려움에 압도되어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녀의 스키장에서의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높은 경사의 두려움에 압도되어 내려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고개를 들어 다시 한 발 내디뎠을 때 본래의 목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맞아, 경사가 가팔라졌을 뿐이야. 내가 보드를 타던 실력이 달라진 건 아니잖아!’


그녀의 이야기가 맞다. 나는 두려워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나도 그녀가 중급 코스에서 보았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다.


지금 나는 위축되어 한 발 내딛는 것조차 무섭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보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발만 내디뎌 보자. 그녀처럼, 눈을 찔끔 감고.


‘그래, 까짓 거 죽기밖에 더 하겠어!’


오늘 나는, 중급 코스로 올라가는 리프트에 힘껏 몸을 실어본다.

이전 02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