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인생이 무수히 반복된다 하더라도 그대는 괜찮은가?
어느 스포츠 경기가 극에 달아 작은 움직임으로도 희비가 교차할 중요한 순간에 문뜩 생각했다.
‘딱 10초만 저 팀의 리더와 영혼을 바꿔서 스피치(speech) 할 수 있다면 적절한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생각을 멈추지 마,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계속 움직여. 망설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해.”
저들은 엄청난 압박과 떨림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터이었다.
그런 점에서, 멀리서 봤을 때만 적절한 말과 행동이 떠오른다는 건 우리의 비극 중 하나이다.
6여 년 전 나와 내 친구도 마찬가지이었다.
당시 나와 내 친구는 많은 사람들한테 우리의 영감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내 친구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아 케이블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큰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그에게 그러한 유명세는 되려 독이 되었고,
평소 신경이 예민하던 그는 편집증적인 증세를 동반한 극심한 불안 장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어떤 투정과 스트레스도 참아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허울 좋은 말 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마시고 싶다는 욕심과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 내 모습에 대한 열등감이 가득해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보이는 다정함 뒤에 숨겨둔 그런 추악함을 스스로도 깨닫지 못해서,
그에게 상처 밖에 주지 못했다.
만약 내가 한발 짝 뒤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면,
끔찍한 열등감이 나 자신과 또 친구까지 그 모두를 상처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그와 대화를 하다가 그가 물었다.
"만약 네가 5,6년 전쯤으로 돌아가 너 스스로에게 조언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할래?”
그때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을래" 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지나온 그와 내 사이 관계에 대해 후회했던 수많은 말들이 스쳤고,
더해 수많은 실패로 자존감이 바닥에 내쳐진 나는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순간들은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 큰 고난은 아니야. 그러니까 버텨서 더 멋진 어른이 돼 줘"
"그 말들은 너의 가치와 잠재력을 낮추지 못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전진하도록 해"
"더 안정적으로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당장의 편안함은 잠시 희생하도록 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그때그때 최선의 것을 고르기 위해 노력하지만 때때로는 미련 가득한 후회가 남게 되고,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내가 아쉽기만 하다.
후회 위를 다른 후회로 덧칠하며 연명하던 내게, 어느 날 니체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나에게 여러 번 고난을 타계할 지혜를 주곤 했는데 여느 때처럼 그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게 소개해줬다.
"이 삶을 지금까지 네가 살아온 그대로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삶에서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고통과 쾌락, 모든 생각과 탄식, 그리고 네 삶에서 말할 수 없이 작은 것과 큰 것들이 모두 되돌아올 것이다."
니체의 말에 화답할 흥미로운 경험이 뇌리에 스쳤다.
아주 지루했던 영화가 마지막 한 장면을 통해 잊지 못할 영화가 되는 경험.
그런 영화는 때때로 커다란 의미가 되어, 누군가 묻거든 최고의 영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게 한다.
지금까지는 고단 했던 삶이었다. 만약 살아온 그대로를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면 그것이 곧 심판 끝 내려진 형벌 같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봤던 그 영화처럼, 내일 하루를 극적인 한 장면처럼 살아낼 수 있다면 그 모든 고통에 의미가 생길 것이란 희망.
어느 날의 하루를 그 영화의 마지막 한 장면처럼 살고 싶다.
내 지난 수많은 후회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선택이 가득한 삶이 아니라, 지난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줄 하루가 기다려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설령 실패 하더라도 '나는 이 날을 위해 살아왔구나'하는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 살아가고 싶다.
니체의 아이디어 앞 내 지난 후회들에 대해 지금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삶을 무수히 반복해도 내일의 그 장면을 위해 나는 기쁘게 살겠노라고.
지금 나의 당장 앞에는 살아온 여생을 긍정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와 기회가 있다.
좋다, 이제 그가 나에게 다시 묻거든 나는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미래의 내가 나에게 와서 10초 동안 얘기 한다고 하면 나는 실망할 거 같아. 난 정해지지 않은 내 엔딩에 도전할 수 있어서 아직 설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