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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수업

제주일상 그림일기 11

by Lara 유현정


서둘러 사랑하라.
사람들은 너무 빨리 떠나 버린다.


어느 폴란드 시인의 두르라는 일갈이 가슴에 사무친다. 이미 상실의 아픔을 짊어진 조카 *연이에겐 너무 늦은 것이다. 개월이 지났건만, 애완견 랑이의 죽음 앞에서 직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공허감과 깊은 슬픔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 특히 재난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쇼크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사랑이의 죽음도 재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건강하던 강아지가 하루아침에 유명을 달리했으니 말이다. 산책을 나갔다가 아마도 유박비료를 입에 댄 것으로 추정된다. 깻묵이 원료인 그 비료는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커서 최근 도시공원에 뿌리는 것을 금지하자는 법이 제기되고 있다고 들었다. 동물들의 생명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 사랑이를 간호하며 밤샘을 하던 *연이는 수의사로부터 사랑이의 죽음을 통보받고 실신을 하였다.


*연이는 언니네 막둥이다. 어느새 다 커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앳된 모습이라 마냥 아기 같. 그런 녀석이 지난 2년간 애지중지 기르던 강아지를 급작스레 잃고 깊은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오갈 데 없는 사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으니,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과 책에 시달리며 삶의 의미를 잃어 가더니, 결국에는

자신의 죽음지 생각하 우울증세를 보였다.


심히 걱정이 된 동생과 나는 007 구출 작전을 펼치기로 하였다. *연이 온 가족의 슬픔으로 도배된 공간에서 벗어나 햇살과 자연 속에서 심신을 정화하며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있었다. 동생은 여러 시간 공을 들여 *연이를 설득했다. 대화가 통하는 또래 사촌도 합세하였다. 그렇게 동생과 조카 *연이, *상이가 나의 제주 일상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림 1> 해변의 속삭임

첫날 우리는 제주의 동쪽 성산으로 일정을 잡았다. 오전엔 `빛의 벙커’를 찾아 모네와 샤갈의 그림을 감상하였고, 점심을 먹은 후엔 일출봉이 보이는 광치기 해변으로 나갔다. 햇살이 좋아 *연이를 데리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바닷가로 려서는데, 발밑에 아주 조그만 조개껍데기들이 모래 위로 삐죽이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는 주저앉아 조개를 구경며 만지작거렸다. 하얀색 선홍색 보라색 갈색 등 저마다의 빛깔로 치장한 조개들이 너무나 앙증맞아, 나는 몇 개를 라 주머니에 담았다.


우리는 잠시 해변의 돌 틈에서 자라는 푸른 이끼와 군데군데 물 웅덩이에서 서식하는 작은 물고기를 관찰했다. 하늘과 바다가 서로 푸르름을 견주는 맑은 날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멀리까지 한적한 모래 해변이 펼쳐졌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둘씩 짝을 지어 거닐며 서로 속삭였다. 오후의 햇살에 얼굴이 따스하게 상기되며 마음의 온도도 덩달아 올라갔다.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길게 발자국을 남기며 앞서가는 *연이와 *상이의 다정한 뒷모습이 주머니 속의 조개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광치기 해변의 다연이와 연상이
해그문이소의 단풍과 *연이



<그림 2> 해문이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이승이 오름을 들렀다. 오름의 둘레길 한쪽에 숲이 우거져 해가 들지 않는 `해그문이소’라는 계곡을 보여주고 싶었다. 호기심이 많은 *연이는 미끄러운 이끼를 딛고 기어이 연못가 바위로 올라섰다. 아기단풍이 뒤늦게 붉어지고 있는 풍경 속에서 홀로 서 있는 모습이 또 어찌나 이쁘던지.


그날 밤 *연이는 또 한 번 오열했다. 정을 감추거나 억누르지 않고 사랑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로하다 감정이 북받친 것이다. 애도하는 슬픔은 치유에서 꼭 거쳐야 하는 시간이니 만큼, 우리는 그저 지켜보며 기다려줘야 한다. 마음이 진정되자 *연이는 신의 종교를 통해 죽음에 대한 깊은 사색을 동반했다. 마냥 어린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훌쩍 컸다. 나는 문득 오늘라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서툴러도 조카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달달한 그림으로 야겠다고 생각다. 용감하게 한 컷 풍경화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림 3> 애완견 사랑이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연이를 좀 더 다정하게 위로하고 싶었다. 스마트폰을 뒤져보니 다행히 사랑이의 사진이 두 장 남아 있었다. 언젠가 내가 사준 장난감을 들고 노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마침 수채 색연필도 눈에 띄었다. 인형처럼 생긴 푸들 사랑이를 그려나가는 동안, 다연이의 그리움이 전이되며 내 마음도 촉촉이 젖어들었다.


*연이에게 그림을 전하자 또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연이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펑펑 눈물을 쏟을 것이다. 눈물의 샘이 마를 때까지 그렇게 울고 또 울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의 터널을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죽은 사랑이가 남긴 것을 실천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겠지. 사랑이를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을 키웠다는 다연이의 독백처럼.


상실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또 언제든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상실의 반복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상실은 가장 큰 인생 수업 것이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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