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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호두

제주일상 그림일기 13

by Lara 유현정


고양이를 찾습니다.


동네 전봇대 곳곳에 전단지가 내걸렸다. 고양이를 잃고 애가 탄 주인은 사진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고등어 태비(갈색 줄무늬) 고양이가 내 눈에 포착되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 차를 세운 뒤 급히 핸드폰을 챙겼다. 고양이는 길가 빌라 단지 안으로 몸을 감췄다. 얼른 뒤쫓았지만 온데간데가 없다. 앗, 꼬리가 보인다.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막 건물 코너를 도는 중이었다. 나는 얼른 카메라 동영상 모드를 켜고 뒤를 쫓았다. 화들짝 놀란 고양이가 얼음땡이 된 채로 겁에 질려 나를 빤히 바라보다. 그리곤 카메라를 들이대자 쏜살같이 뒷 출구로 달아났다.


가던 길이 바빴지만 길 잃은 가족을 찾아주는 것이 더 시급 보였다.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상심하고 있을 주인을 생각하 길을 돌아 전단지가 붙어 있는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주인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동영상을 보낸 후 전화를 걸었다. 주인은 나이가 지긋한 여인이었다. 아, 반려묘였겠구나!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아쉽게도 내가 만난 고양이는 그냥 길고양이인 걸로 판명이 났다. 사 인사와 함께 앞으로도 유심히 봐달라는 문자를 받고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 집는 입양해서 기르고 있는 유기견 한 마리 있다. 5년 전 전남 무안을 떠돌던 말티즈 믹스견이다. 편과 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딸아이는 무안까지 가서 강아지 호두를 데리고 왔다. 벌써 다섯 해가 난 일이다. 그동안 보호자인 딸아이가 호두에게 보여준 지극정성은 끝간 없다. 나는 호두와 딸아이의 밀착된 관계를 보며 한 생명을 거두는 인연의 깊이와 그에 따른 무한책임을 실감한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웃을 일이 사라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두 때문에 미소 짓는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강아지를 기보다는 아지로부터 정서적인 족감을 느끼는 경우가 은 것 같다. 이래서 애완견이 반려견으로 승격되는 것이구나. 튼 내가 그림을 시작하자 딸아이는 호두를 그려달라고 졸랐다. 년 전에는 프랑스 자수로 호두아 달라고 해서 어렵게 어렵게 파우치를 완성해 주었는데, 이번엔 그림이다. 엄마의 실력을 너무 과신하는 거 아님? 호두를 펜으로 그리려니 손이 바들바들 떨다. 하지만 어쩌랴, 는 호두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걸.


호두를 수 놓은 파우치




<그림 1,2> 다림


강아지를 무척이나 무서워하던 언니가 오갈 데 없는 푸들 강아지를 기르게 되었다. 날마다 강아지 공부를 하더니, 어느새 강아지 박사가 다 된 언니는 어느 날 내게 질문을 던졌다.


", 하루 종일 강아지가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이 뭔지 아니?"

"음.. 글쎄.. 자는 시간 아니야?"

"아니야, 주인을 기다리는 시간이래."

"정말? 저런.. 에고.."


나는 을 듣고 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고 보니 주인이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현관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유튜브에서는 주인과 헤어진 자리에서 몇 년간 주인을 기다리다가 이를 딱하게 여긴 다른 사람의 sns를 타고 알려져 주인을 찾은 강아지이 있다. 오래전엔 진도로 보내졌던 진돗개가 몇 달만에 전 주인이 살고 있는 도시로 혼자 바짝 마른 채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정말이지 강아지의 인내심과 인을 향한 충성심은 언제나 얄팍한 인간을 감동시킨다.


우리 집의 첫 애완견었던 시츄 푸르내도 그랬. 아침마다 썰물처럼 가족 모두가 학교로 나간 텅 빈 집에서 평생을 기다렸다. 지금의 호두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에 딸아이가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기다린다. 밖에서 인기척이라도 나면 베란다 창가로 쪼르르 달려가 내보며 귀를 쫑긋한다. 어느 날은 딸아이가 여행을 가서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12시가 넘도록 자지도 않고 마루 바닥에 드려 캄캄한 창 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아닌가. 기다림이 강아지의 숙명 줄은 알았지만, 짠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낮이나 밤이나 딸아이를 기다리는 호두


<그림 3> 백꽃과 호두


제주에 오면 호두는 제 세상을 만난 듯 행복다. 유난히 풀과 꽃을 좋아하기에 겨울에도 초록이 널린 제주에서의 산책을 즐긴다. 신 킁킁거리며 새로 만난 풀과 인사를 나누고 오줌으로 영역을 넓히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런 호두와 함께 동백 꽃밭을 찾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외진 동백 군락지에서 목줄을 풀어주었다. 호두는 분홍 꽃잎이 눈처럼 소복이 쌓인 밭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자유를 만끽하였다. 실컷 달리다 돌아온 호두는 야성이 되살아나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하얗고 복실한 호두의 몸 털과 이마 위로 행복한 동백꽃이 하나 둘 피어올랐다.


동백 나무와 호두


<그림 4,5> 애교이 호두


호두는 함께 놀아주던 딸아이가 잠시 외출이라도 라치면, 침대 이불에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얼굴을 파묻고는 시무룩해다. 그런 호두가 가엽고 측은해져서 다가가 만지고 이뻐해 주면, 그제사 맘이 풀렸는지 몸을 이리저리 뒤틀고 배배 꼬며 애교를 핀다. 과자를 바사삭 씹거나 사과를 아사삭 한 입이라도 베어 물면, 어느 구석에 숨어 있가도 쏜살같이 달려온다. 리곤 바짝 옆에 앉아서 혼자 먹는 법이 어딨냐 뚫어져라 먹을 것에 집중하며 빤히 쳐다본다. 그 순진하고도 애처로운 눈빛을 나는 도저히 모른 체할 수가 없다. 결국은 호두를 식구로 인정하고 콩 한쪽도 나눠먹게 된다.


호두가 밖에서는 동네 반찬가게 아주머니를 제일 좋아 한다. 반찬을 사러 가게에 들를 때마다 간식을 듬뿍 주시기 때문이다.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 나를 반찬가게 쪽으로 끌고 갈 정도이다. 어쩌다 길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치면 반가워서 그런 난리가 없다. 호두에겐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은 모두가 은인이자 구세주인 것이다. 무안의 유기견 보호소에서도 자신의 보호자가 될 딸아이 알아보고, 그토록 호들갑을 떨며 딸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 않던가. 그런 호두의 재롱이 날로 일취월장이다. 마도 호두에게는 애교가 생존본능 닐까.


간식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호두
시무룩과 애교의 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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