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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피어나는 꽃

제주일상 그림일기 14

by Lara 유현정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일기를 그리는 사람이 있을까? 주변에선 그 사람을 보지 못했기에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아뿔싸, 그림일기를 그리는 어른은 몇 되지도 않지만 그마저도 만화가 아니면 일러스트레이터뿐이네. 그렇겠지. 글도 그렇지만 그림을 공개하려면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야 남 앞에 쉽게 내놓을 수는 없을 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홀로 고립된 나라는 작은 존재, 갑자기 자신감이 쑥 지하로 내려갔다.


하지만 용기를 꺾는 최대의 적은 비교가 아닐까, 는 생각 들었다. 새로운 길 앞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는 자가 저만치 앞서간 자와 자신을 비교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럴 필요도 없데 말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타이밍에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는 게 인생 아니던가? 비교는 불행의 나락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타인과의 비교는 절대 금물이다. 만약 비교를 하려거든 어제의 나와 하면 될 것이다. 는 거북이처럼 앞서간 토끼와 비교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가자고 를 다거렸다.


마침 김충원 작가 <철들고 그림 그리다>에 추천사를 쓰면서, 그림은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라며 다음과 같은 말로 나를 려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은 것은 감추고 싶은 자신의 내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를 평가하는 세상의 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림 그리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의미이고, 우리의 숙명일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보듬어 향유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림을 그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이제는 산책길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생태 드로잉을 하던 친구가 만들어준 달력의 꽃 그림을 보며 부러워도 엄두가 나지 않던 나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림의 대상이 물건에서 식물로 옮겨지고 있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초보자의 부끄러움을 딛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산을 오를 수만 있다면, 그 길에서 만난 멋진 순간을 하나라도 주워서 오늘을 향유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림 1> 주 수선화


한겨울의 꽃구경이라니! 밤 사이 눈발이 날려 백록담 설문대할망이 하얗게 분칠을 했는데, 서귀포 바닷가 산책길에는 꽃이 지천에 피어 있다. 12월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겨울꽃들이 아직도 싱싱한 걸 보면 2월까지는 제철인 듯싶다. 꽃과 초록이 대지를 뒤덮은 귀포를 닐며 나는 잠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제주 수선화는 제주를 대표하는 겨울꽃다. 곧게 뻗어 올린 초록잎과 하얗고 노란 얼굴의 청초한 이미지가 고고하다. 주도에서 귀양살이하던 추사 김정희도 반했다는 꽃,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호숫가 나무 아래 수많은 수선화가 미풍에 머리를 살랑대며 춤추는 모습을 <수선화>라는 아름다운 시로 노래하였다. 나도 처음 제주살이를 시작했을 때, 그 청순한 이미지에 반해서 구근을 얻어 난산리 밭에 줄 맞춰 심어 놓기도 했다. 요즘 정방시 공원과 올레길엔 제주 수선화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이제 곧 난산리 밭의 수선화를 보러 가야겠다.



<그림 2,3> 해국


자구리 바닷가 공원엔 현무암 축대 사이로 해국이 가 피어났다. 해풍을 맞아 잎과 줄기는 도톰하니 솜털이 가득하고, 꽃은 연보라색으로 국화처럼 생겼다. 햇살이 좋아 벌과 나비 떼가 소풍을 나온 날, 나는 운 좋게도 꿀을 빨고 춤추는 장면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제주의 햇살이 만들어낸 무공해 식사를 무제한으로 배를 채우는 곤충을 보며, 수고하지 않아도 삶의 환희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곧 마음을 비우고 그저 오후의 감미로운 햇살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제주 수선화(위), 해국(아래)



<그림 4> 털머위


서귀포 도심을 걷는 하영 올레길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꽃은 털머위다. 발밑에 펼쳐진 둥그런 잎 위로 쑤욱 꽃대를 올리고 얼굴을 내민 노란 꽃잎이 도드라진다. 보통 11월에 만개하기에 지금은 꽃이 진 자리에 하얀 풀씨가 소복이 달려 있다. 하지만 간혹 성장이 더딘 꽃들이 가끔씩 나를 반긴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대학 후배가 털머위를 보고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서울에선 너무 귀해서 어렵게 구해 화분에 심고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데, 제주에선 이렇게나 흔한 것이었냐고.



<그림 5> 브라질 아부틸론


하영 올레길 무량정사 마당에 브라질 아부틸론 자란다. 꽃은 작고 빨간 것이 꽈리처럼 생겼는데, 붉은 꽃받침이 아래로 터지며 노란 꽃잎이 벌어지면 까만 수술이 아래로 쏟아진다. 그 본새가 마치 청사초롱을 밝힌 듯하다. 못 보던 꽃에 홀려 이리저리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순간 누군가의 혼례식 마당에 숨어들어 엿보고 있는 양 가슴이 콩닥거렸다.


털머위, 브라질 아부틸론


<그림 6,7> 나뭇잎


화사한 꽃에 밀려 2등으로 밀려나는 인생이 있다. 늘 배경이 되어주는 잎이 있기에 꽃이 그토록 빛날 수 있을지니. 하지만 아주 가끔은 꽃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눈길을 끄는 나뭇잎이 있다. 깊은 울림 메시지까지 던지며.


어느 귀포 3 총사가 모여 올레길 7코스 수봉로를 걸을 때였다. 엽록소가 모두 빠져나가 노랗게 물든 커다란 나뭇잎 하나가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른 잎들은 아직 초록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성급했던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니 온몸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게 아닌가. 벌레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까만 주근깨까지. 너무 처절하고 안쓰러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림으로 마지막을 기록하고 싶었다. 한 계절 삶을 만끽하고 때가 되면 장렬히 스러져가는 생과 사의 법칙을 자연에서 배운다.


햇살이 좋은 날엔 홀로 칠십리 詩공원엘 나갔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너른 잔디밭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이트볼을 치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산책하다가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담팔수 나무를 만났다. 담팔수는 사철 푸른 잎을 달고 있지만, 가끔 나의 머리에 돋아나는 새치처럼 가지 끝에 빨갛게 물든 잎이 달려있는 제주도의 보호수이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이 너무 예쁜 게 아닌가. 따사로운 살이 통과되며 잎들은 한없이 투명해졌고, 서로 얼기설기 만들어낸 그림자의 음영이 너무 또렷하여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나뭇잎이 있다니! 나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와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에서 담팔수 잎을 그나갔다.


햇살에 비친 담팔수 잎과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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