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ra 유현정 Aug 11. 2023

실패가 때론 행운이 된다

<실화소설 10, 에필로그> 구세주를 만난 김비야


Y는 처음 여행기를 쓰고자 하였다.

그러나 기대를 안고 날아간 멕시코에서 코로나일지도 모르는 병마 싸우느라 체력 탕진하는 바람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잡한 인파와 매연 냄새, 밤마다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와 목숨을 위협하는 지진에 시달리며 앓아누워있는 동안, 얼마나 고국에서의 평안한 안식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멕시코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여독을 풀기도 전에 오른발 깁스를 하고 발이 묶여버렸다.


그렇게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 폭탄은 멕시코 여행을 끝내고 마이애미 도착한 H2로부터 도난 사건을 전해 들으면서 절정에 달다. 아마도 그때부터 Y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국만리에서 겪고 있을 딸아이의 고초를 생각하며 걱정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자식이 불행을 겪을 때 부모는 더한 고통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행기는 이미 마음에서 멀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오래였다. 터널 속에 갇 마음만 부여안고 여러 날이 흘렀다.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사건은 아주 천천히 수습되었다. Y는 차츰 여유를 되찾았지만, 여전히 글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그토록 서늘했던 충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 가능하지 않을까. 찰리 채플린처럼 H2의 상황을 멀리 객관적인 타자의 시점에서 바라봄으로써 비극을 희극으로 전환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글은 1인칭의 여행기가 아 3인칭의 소설 형식이 되었다.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른 채, 하나씩 기억이 꺼내지면 마음이 가는 대로 써 내려갔다.


Y가 을 쓰는 시간은 신의 가슴을 진정시키는 한편, 고난과 절망 속에 놓인 H2의 마음을 다독이며 위로하러 가는 길이. 때로는 함께 한 멕시코 여행의 추억을 나누는 기록이었고, H2가 고난을 딛고 새로운 여정을 꾸려나가는 과정에 힘을 보태 응원을 전하는 장이기도 하였다. Y는 H2를 키우면서 겪은 잊지 못할 일화들을 되살리면서 다시 웃음을 찾기 시작하였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어느 농사보다도 지난한 과정이지만, 부모를 행복하게 철들게 만드보람된 시간이었다.


H2의 어린 시절로 떠나는 여행이 길어지면서, 멕시코 여행은 큰 비중을 차지하 못했다. 그래도 그것으로 족하다. Y는 자신이 좋아하는 유럽의 여행이 달콤한 체리에 비유된다면, 멕시코 여행은 선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이국적이 멋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가시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 생소한 생채기가 덧나는 과정에서 심신이 고달팠지만, 그래도 멕시코시티의 역사박물관과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를 찾아 멕시칸의 영광을 돌아보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또 히니아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익스타파의 가정집 방문과 휴양지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보낸 절정의 오붓한 시간들, 오랜만에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 과달라하라에서의 추억은 즐겁고 소중했다. 크리스마스 주간에 H1과 H2를 키워주신 할머니(Y의 시어머니)의 제사상을 차린 것도 의미가 있었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면서 행복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H2를 만나 가족이 24시간을 밀착하여 보낸 3주간의 시간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호사였다.


과달라하라에서의 즐거운 한때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날마다 자신의 일상을 전해오던 H2의 소식이 뜸해졌다. 이는 마이애미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래도 생활의 기본은 의식주일 터인데, H2는 제일 먼저 식을 해결하였다.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디디를 통해서 무료급식소를 알게 되었고, 또 거기서 봉사를 시작함으로써 먹을 것은 걱정이 없게 되었다. 옷은 입고 있는 것이 있어도 여벌이 필요했는데, 이 또한 영주권 재발급을 도와주던 교회와 주변 친구들이 나눔을 해주면서 해결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주거지의 확보였는데, 여러 날 난제로 남아 있었다. 여권과 영주권이 없어서 잠시라도 호텔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에어비엔비는 마이애미가 관광도시이다 보니 하룻밤 숙박비가 수백 달러를 호가해서 쉬운 일 아니었다. 월세를 얻으면 되지 싶었는데, 이 또한 직장을 다녀야만 구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1인용 텐트마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H2는 가끔씩 언니와 함께 사는 디디의 집을 들락거렸다. 방이 부족하여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청했지만, 그것만이라도 얼마나 감지덕지던지.


보통은 마음을 비우고, 공원의 벤치를 전전하며 별을 헤아리다 잠이 들곤 하였다. Y는 이러한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밤마다 편안한 잠자리에 들 때면, H2가 오늘은 또 어디서 밤을 지새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갔다. 몸 하나 누일 곳 없이 떠돌면서도, 결코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이 아이를 어쩔 것인가. 지나온 성장 과정을 돌이켜봐도 절대 엄살을 피울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H2가 마이애미에서 드디어 방을 얻게 된 것이다. Y는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다. 모든 걱정이 스스로 물러나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주거가 확정되기까지 가장 큰 공신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목사님이었다. H2가 남다른 애정으로 급식소의 일을 성심성의껏 도와주자, 주변의 지인을 수소문해서 무료 아파트를 알선해 준 것이다. 디디가 H2를 마이애미로 인도한 수호천사였다면, 목사님은 간절히 원하면 구함을 건네주는 구세주였다.


H2는 그 사이 이런저런 상황을 겪으면서 자신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다. 애팔래치아 산 종주를 내년으로 미룬 것이다. 이유는 무료급식소에서의 봉사와 함께 마이애미에서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서였다. 올해 초 배낭을 잃어버리면서 닥친 시련은 H2의 계획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정상 궤도에서 한참을 벗어나게 만든 이 도난 사건은 어찌보면 일종의 실패였지만, 그 덕에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게 되었다. 인생이란,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다른 문이 열리는 법이다. 실패가 때론 행운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H2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다. 건장하고 잘 생긴 연하의 청년은 이제 H2 인생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알콩달콩한 커플은 지난 주말 마이애미 해변의 다리 위에서 낚시를 하며 달콤한 시간을 낚았다고 한다. H2의 얼굴엔 다시 사랑스런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였다. 이제 Y는 슬슬 보호자의 자리를 H2의 남친에게 넘겨줘도 좋을 듯하였다. 하지만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올해는 잠시 마이애미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도전을 일삼는 H2는 또 어디로 튈지 누구도 모른다.


이제 그만 날개를 접어다오.


Y는 10회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았다. 부모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누구도 자식의 고생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비록 사서 하는 고생일지라도 말이다. 젊어서 Y는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H2가 마냥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부모의 품을 떠나 이국만리 타향에서 겪는 고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실감한다. 자식이 어떤 길을 가더라도 Y는 렬히 응원을 할 테지만, 목구멍이 자꾸 스멀거린다. "얘야! 이제는 날개를 접고, 사소한 행복으로 인생을 채워나가면 어떻겠니?"




 - - The End --  언젠가.. To be continued.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 댓글 다음 글을 쓰는데 큰힘이 됩니다.


마이애미 풍경들



이전 09화 이제는 이실직고를 해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