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라드 키즈르 모스크에서 나와, 유대인 회당을 찾아 다시 비비하눔 모스크가 있던 거리로 돌아갔다. 유대인 사당은 관광지의 주요 인도에서 벗어나, 거주민들의 주거지 사이에 있었다.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지, 유대인 회당 방향을 가리키는 표식 하나 없었고, 주거지 골목 입구에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현지인들이라 찾아가면서도 긴가민가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어느 청년이 말을 걸었다. "어디 가세요? 한국인이세요?" 돌아보니 키 크고 잘 생긴 우즈베크 청년이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뿔테안경을 쓰고, 깔끔한 체크난방과 하늘색 청바지를 입고는 두꺼운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옷 입은 게 한국 대학생 스타일이었다. "저도 한국에 5년간 유학했었어요. 한국인 만나니 너무 반가워요. 여행 오신 거예요? 어디 가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낯선 이의 호의에 순간 당황하고 무서웠지만, 청년의 눈을 보자,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핸드폰 화면 속 유대인 회당을 가리키자, 청년은 주변 현지인들에게 물어본 후 우리에게 길 안내를 자처했다. 청년은 유아차를 끄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신이 유아차를 밀겠다고 대뜸 유아차 손잡이를 잡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유아차에 기댄 채 졸려하던 주원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가 유아차 미세요. 이 아저씨 아니에요. 엉엉엉"
머쓱해진 내가 다시 유아차를 잡았다. 청년은 걸으면서 지도를 보더니 15분이나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유아차를 들여다보았는데, 아까 울던 주원이가 고단했는지 그새 유아차에서 잠이 들었다.
청년의 이름은 이스마일이었다. 이스마일은 한국에서 학사를 하고 귀국했다고 한다. 이스마일은 귀국하고 한국인 관광객은 처음 본다면서 나에게 우즈베키스탄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누구와 오게 되었는지, 얼마나 머물 예정이며, 사마르칸트에 언제 왔고 언제 떠나는지, 어떻게 왔는지 순식간에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여기 사마르칸트 남자들 좀 이상하지 않아요? 누나한테 치근덕거리고 따라다니고 그럴 수 있거든요. 위험해요. 제가 동행해 드릴게요." 지금까지 우즈베키스탄에 와서 나에게 치근덕거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누가 유아차를 미는 아줌마한테 치근덕거리겠나. "그런 일 없었는데요?" "아니에요. 정말 조심하세요. 제 한국인 친구들이 사마르칸트에 놀러 왔을 때, 사마르칸트 남자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특히 여자들한테 계속 말 걸고 따라다니고, 친구들을 보호하느라고 제가 얼마나 신경 썼는지 몰라요."
그러나 이 말은 약 1시간 후 나에게도 벌어진다.(다다음 에피소드;;)
나는 타슈켄트에서 만난 내 오랜 친구 아이비에커와 바허보다, 방금 만난 이스마일이 너무 편하게 느껴졌다. 아이비에커와 바허한테는 솔직할 수 없지만,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고, 향후에도 엮일 일 없는 이스마일에게는 되려 솔직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마음속에 묵은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실, 제 전 남자친구가 우즈베키스탄 사람이었거든요. 이번에 10여 년 만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도요." 내 첫 번째 질문이 시작도 하기 전에, 이스마일도 자신이 친구나 이웃이나 가족한테 하지 못한 얘기를 갑자기 하기 시작했다. 이스마일은 한국에 유학할 때 5년이나 만난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이스마일이 캐나다에 단기로 언어연수를 갔는데 거기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고 한다. 여자와 이스마일은 친구로 시작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이스마일은 여자가 보고 싶어 한국유학을 떠나게 된다.
유학할 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이 여자는 젊은 나이에 포르셰도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부자였다. 여자의 아버지가 한국의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고, 이 여자도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아 해당 사업체의 임원으로 있었다. 이스마일의 친구들은 이스마일과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도대체 이 아름다운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이스마일을 만나냐고 사진을 보면서도 믿지 않을 정도였다. 부와 미모를 동시에 갖춘 여자는 이스마일을 사랑했고, 이스마일도 여자를 사랑했다. "지금은 헤어졌어요. 너무 서로 사랑했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이스마일이 학사 졸업을 하자, 학생 체류비자가 끝나버려 이스마일은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스마일을 사랑한 여자는 이스마일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내 앞에 선 이스마일은 갓 25살이었다. 이스마일도 여자도 요즘 한국에서는 결혼하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였다. 여자는 회사를 장기휴가 내고 이스마일을 보러 사마르칸트에 오게 되었다. 이스마일의 집에 머물면서 사마르칸트도 함께 구경하고, 이스마일의 어머니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여자가 이스마일의 여자친구인 걸 모르던 어머니가, 여자친구인걸 알게 되자 둘의 사이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스마일의 어머니에게 자신이 모시겠다고 하며, 이스마일과 결혼을 승낙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했다. 우는 어머니 앞에서 이스마일도 여자도 함께 울며, 어머니가 승낙하기만을 기다렸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 여자가 귀국하게 되었을 때 이스마알의 어머니는 하도 울어서 기력이 다 빠져 쓰러져 누워있었다. 여자와 이스마일은 굽히지 않는 이스마일의 어머니를 보고, 5년 간의 길고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헤어지는 걸 서로 받아들이고도, 마음정리가 도저히 안 돼서, 여자랑 이스마일은 서로 껴안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사실 저도 너무 사랑했거든요. 지금은 헤어졌지만... 카카오톡으로 연락은 하고 지내요." 이스마일은 외동아들이었다. 이스마일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슬람 전통상 아들이 어머니를 모셔야 했다. 어머니에게 이스마일의 아내는 단순히 이스마일의 반려자가 아니라 자신을 모시고 살 순종적인 며느리여야 했던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대부분 결혼 일찍 하지 않나요?" "맞아요. 제 사마르칸트 친구들은 이미 다 결혼했어요. 늦게 결혼하는 친구도 이번주에 곧 결혼하는걸요. 어머니도 중매로 여자를 만나라고 성화예요. 그런데 저는 아직 생각 없어요. 사마르칸트에 살기 싫어요. 여기서는 일할 것이 없어요. 일한다 해도 임금도 낮고요. 여기 살 생각을 하면 정말 깝깝해요. 사실 저 2주 후에 캐나다 석사 하러 가기로 했어요. 어머니께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아마 아시면 또 우실 거예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캐나다 가서 일하면서 석사 할 거예요." 이스마일은 인생의 엄청난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속사포처럼 꺼낸 이스마일의 이야기에, 지금까지 이스마일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누나는 우즈베키스탄 남자친구하고 왜 헤어진 거예요?" "글쎄요. 그 친구의 부모님도 무슬림 며느리를 맞기를 바랐어요. 저도 결혼까지는 생각이 없었긴 했는데, 다시 만나니 마음이 좀 복잡하더라고요. 이스마일은 어머니의 반대 때문에 헤어지게 된 거예요?" "그것 때문 이긴 한데, 사실 저도 마음이 지금은 많이 정리된 상태예요. 한국은 우즈베키스탄보다 월급이 많이 높잖아요. 더구나 제 전 여자친구는 부자였고요. 제가 호프집에서 일하면서 100만 원 정도 벌었는데, 그 얘길 듣고 자기가 월 200만 원 용돈 줄 테니까 그냥 놀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저도 우즈베키스탄 남자라 자존심이 세거든요. 제가 돈을 못 번다고 늘 무시당하니까 점점 마음이 멀어지더라고요."
사랑은 설렘의 순간이 아니기에, 지속가능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상대방과의 동질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 같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 달리는 댓글이 하나같이 드라마가 고구마다, 원작과 다르길 바란다, 막장드라마 보는 줄 알았다, 보다 보니 숨이 막힌다인데, 정작 결혼해 본 나로서는 드라마가 직장 현실과 배우자 고르는 상황을 너무 여실히 잘 반영하고 있어 놀랄 때가 많았다. 이스마일과 그 여자도 사랑했지만, 서로의 문화적 갭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마일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난 과거도 재평가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