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울적하면서도 산뜻하다. 문을 열면 들려오는 달콤 쌉싸름한 커피 냄새가 가시기 전에 나는 얼른 음악을 틀고 어제 남겨둔 설거지를 한다. 돌아올 이유를 남겨두고 돌아온 이유를 확인하는 일. 아침을 여는데에는 정승환의 목소리가 좋다. 너였다면. 눈사람. 보통의 하루. 이렇게 3곡을 듣다 보면 세상 어딘가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타인과 나의 불행을 비교하면서 위안을 얻는 일은 소중하다. 나는 불행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내가 가진 결은 바람의 통로를 불행 쪽으로 튼다. 불어간 바람이 불행의 숲을 한 바퀴 쓱 훑고 돌아오면 자잘한 틈에 냄새가 밴다. 불행의 냄새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더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싶은 마음. 나는 그 마음에 거리를 두려다가도 무심결에 한걸음 다가선다. 애초부터 한쪽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면 다른 한쪽으로 한걸음 다가서는,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게임. 스멀스멀 자라난 불행처럼 솜털 돋아난 토마토 모종의 치솟은 줄기를 보며 눈을 크게 뜬다. 곧 지지대가 모자라겠구나. 분갈이도 해줘야 하고. 막대기는 자라나지 않으니까 대신할 무언가를 새로 찾아야 한다. 7월에 접어들면서 구름은 지구의 하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치 고양이 떼처럼, 구름은 하얗게 푸름을 덮었다. 첫 주는 드문드문 비가 내렸다. 두 번째 주는 지겹도록 비가 내린다. 장마는 세상을 자라게 한다. 또한 내가 거기 속하지 않았다는 것도 단호한 언어로 말해 준다. 어떤 때는 그런 단호함이 반갑다. 그 단호함이 나를 울적하게 하고, 또 움직일 기력을 준다.
아침의 카페에는 파랑새가 날아든다. 파랑새는 유유히 초록잎 무성한 은행나무를 돌아 전신주 사이를 활공한다. 멈춰 선 차들 위를 날기도 하고 달리는 차들을 가로지르기도 하며 빌라 옥상 난간에 훌쩍 앉았다 가벼운 몸을 띄워 전깃줄에 안착하기도 한다. 파랑새의 고향은 하늘. 그러나 오늘따라 하늘은 푸르지 않다. 나는 따뜻한 라떼 한 잔을 탄다. 펌프를 반쯤 눌러 시럽을 담는다. 뽀얀 우유거품이 만드는 그림을 보며 너는 파랑새구나, 하고 중얼거린다. 실은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나는 나를 속이는 짓에 능하다. 습관은 죄책감을 누그러트리는 재주가 있다. 파랑새가 가벼운 몸짓으로 어깨에 앉아 우유 거품에 부리를 박는다. 우유 거품에 좁쌀만 한 구멍이 폭폭 파인다. 파랑새의 부리에 우유 거품이 묻는다. 너도 라떼가 좋니. 물으려는데 파랑새는 날개를 펼치는가 싶더니 바람에 밀려나듯 몸을 띄워 날아간다. 나는 멀어지는 파랑새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바라보는 내내 한 가지에 사로잡힌다. 파랑새가 날아다닐 하늘에 대해서. 안녕. 파랑새는 내 말을 듣지 못한다. 우리의 언어는 다르고 나는 파랑새가 떠난 다음에야 말을 꺼낸다. 내가 말을 건네려 할 때 파랑새는 이미 먼 곳에 있다. 하지만 마음에 남은 깃털 하나. 그 깃털의 질량만큼 마음에 사소한 흔적이 남는다. 나는 그 질량에 산뜻함을 적신다. 나를 묶어두는 중력은 그렇게 깃털에 물기가 어리듯 나를 붙든다.
커피를 볶는 아침으로 넘어가 보자. 로스팅은 불행의 냄새를 덮는다. 내가 가진 결들이 불행을 잡아끌어도 초콜릿 빛깔로 익어가는 원두의 향내는 집적되는 불행을 덮을 만큼 환하다. 그곳으로 걸어갈 때의 고소함은 이곳의 출처를 잃어버릴 만큼 기분 좋은 착각을 선사한다. 커피란 어쩌면 기다림으로 빚어낸 인연 같은 것. 시간에 관해 무용론으로 기울었던 적이 있는데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시간은 인연의 질량을 더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생각. 커피를 볶을수록 빙글빙글 돌아가는 수레바퀴의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아침을 나서는 내내 나는 내가 만들어낼 즐거움에 사로잡힌다. 온도와 시간과 색깔. 어떤 불꽃을 만나야 너만의 색을 낼까. 얼마나 오래 만나야 너다운 맛을 낼까. 어떤 옷을 입으면 소스라칠 만큼 아름다울까. 차분히 들여다보는 잠깐의 망각. 현실로부터의 도피. 비가 지붕 패널을 두드리는 소리와 원두가 익어갈 때 타닥타닥, 모닥불 위로 달이 기우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나는 여기에 서서 너를 기다려. 아주 짧은 시간 우리가 만날 때 만질 어떤 향기와 교감을 상상해.
그러므로 카페의 아침은 불행으로 둔해진 나를 움직이게 할 만큼 울적하고, 파랑새의 기다림과 활강을 선선히 돌려보낼 만큼 산뜻하며, 콩이 익는 동안 쏟아지는 향내의 망각만큼 진하다. 내가 어떤 아침을 맞이하건 카페의 아침은 몇 가지 다른 조건을 내건다. 그것들은 내가 그곳으로 돌아갈 중요한 이유가 되고, 내가 그곳에 머물 한정된 이유가 된다. 그 속에 드러낼 수 없는 몇 가지 의도가 숨어 있다. 즐거움은 단지 아침의 라떼 한 잔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 긴 장마를 비껴 난 세상에 포함된 나는, 토마토 모종을 돌보고, 커피를 볶고,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만들고, 파랑새를 기다린다. 비 내리는 창가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세상은 트릭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인다. 일그러진 풍경 속에서 내가 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파랑새야, 넌 그게 뭐라고 생각해?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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