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했을 때, 승무원이 지키는 세 가지 태도
비행을 하다 보면 선물처럼 찾아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손님으로 탑승하는 순간이지요.
어렵게 팬미팅 신청을 하지 않아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1:1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승무원으로서의 또 다른 복지는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물 같은 순간이 위기가 되었던 경험도 있는데요. 제가 비즈니스 담당 승무원으로 근무하던 호주 브리즈번행 비행이었습니다.
비즈니스 손님이 만석이어서 유독 바빴던 탓인지,
저는 인플루언서 손님이 사전에 주문하신 메뉴를 다른손님에게 전달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손님이 기내식을 다 드신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필 그 메뉴는 여분도 없었고, 불편을 겪으셨던 승객분은 평소 제가 정말 좋아하던 60만 인플루언서였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찔했던 그날의 실수를 떠올리며, 실수했을 때 필요한 태도 세 가지를 적어봅니다.
내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당황스러움입니다.
당황하고, 난처하고, 아쉽고, 어쩔 줄 모르게 되면서 머리가 하얘집니다. 하지만 실수 해결의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실수에 대처를 하고 해결법을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기내식이 오전달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심호흡을 한 후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평정심만 있다면, 해결하지 못하는 실수는 없어.’
-‘지금 이 상황에서 손님이 원하는 방법은 뭘까?‘
> 사과, (동일하진 않더라도 비슷한) 기내식 메뉴 제공, 보상이나 환불
-‘내가 지금부터 해야 할 행동의 순서는 뭘까?’
>동료들에게 공유, 손님에게 사과, 동료들과 논의한 해결안대로 행동, 문제 원인 파악해서 실수 재발 방지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천천히 문제를 해결해 보자.’
이러한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감정을 제외한 채 이성적으로만 상황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아, 나 왜 이런 실수를 했지?‘, ’ 손님한테 뭐라고 말씀드리지?‘ 등과 같은 감정과 엮인 생각들은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실수를 했을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정직함’입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도, 상사에게 혼이 날 것을 알고도 보고를 하는 용기도, 나의 실수로 인해 불편을 겪은 상대에게 사과를 전하는 일 모두 정직함이 있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일 것입니다. 가끔 여러 동료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실수를 저질러 놓고도 내가 그러지 않은 척하거나 실수를 본인 혼자만 알고 동료들에게 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대화에서도 사과를 전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수를 저지른 나부터 정직해져야 문제 해결의발판이 마련됩니다. 문제를 덮기만 한다고 실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설령 당시에는 상황을 모면했다 할지라도 뒤늦게 알려진다면 더 커져서 돌아온 문제를 감당해야 하고 동료들에게 신뢰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먼저 사무장님과 동료 승무원들에게기내식 오전달 실수를 공유하고, 사과했습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대안을 고민한 결과, 해결을 위한 프로시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손님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
-대체 메뉴 제공 (대체 메뉴 A와 B로 제공 가능한 상황 말씀드리고, 취향에 따라 선택하실 수 있도록 제안)
-사과의 뜻을 담은 음료 제공 (우선, 원하시는지부터 여쭤보기, 무작정 제공 X)
다행히 인플루언서 손님은 제 사과에 “대체 메뉴가 오히려 더 좋아요! “라고 하시며 유쾌하게 상황을 넘어가주셨습니다.
손님의 그 한마디를 듣고, ’화가 많이 나셔서 우리 회사에 대한 안 좋은 리뷰를 남기시면 어쩌지?’ 하며 걱정했던 마음은 진정되었고, 다른 사람의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는 태도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손님이 사과를 받아주시며 상황은 별 탈 없이 무마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나의 실수로 인해 누군가가 불편함을 겪었다면, 다시 상대가 만족할 수 있도록 Service recovery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실수를 저질렀더라도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진심 어린 노력이 전해진다면, 그것 또한 손님에게 감동을 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컨설턴트 John Goodman은 1988년 TARP 연구를 통해 “불만을 제기하고 해결에 만족한 고객은 아무 문제없었던 고객보다 충성도가 최대 8% 높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Goodman, J. (1999). Basic Facts on Customer Complaint Behavior and the Impact of Service on the Bottom Line 서비스 불만 고객 충성도에 관한 연구. Competitive Advantage, 6월호, 1-5.)
그렇기에 실수 이후에 해당 손님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혹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은 더 없는지 민감하게 살피며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저와 동료 승무원들은 인플루언서 손님께 의견을 여쭤본 후, 커피를 제공해 드리며 다시 한번 사과를 드렸고,손님의 가족들까지 세심하게 케어하려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내리실 때는 “아주 좋은 비행이었습니다.”라는 손님의 칭찬을 들으며 비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별성이 보입니다.
<유퀴즈>에 출연하셨던 배우 최화정님의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인상 깊습니다.
“사람이 허리를 쫙 펴고 입꼬리를 쫙 올리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
정말 그렇습니다. 실수는 태도와 노력으로 만회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여러분도 꼭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