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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

2024.3.17.

by 친절한 James Mar 17. 2024


"비상, 비상! 탈출하세요!

 빨리 비상구로 나가세요!"

긴박한 일이 생겼다.

얼른 몸을 피해야 해.

살아야 한다. 뛰어!


비상구.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에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출입구.

녹색 배경의 어딘가로부터

하얀 광명의 공간으로 뛰어가는

초록 사람의 픽토그램.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평소에는 잘 눈여겨보지 않는 곳.

하지만 비상시에는 꼭 필요한 곳.


살면서 비상구가 필요한 때가 있었나.

몇 개의 조각 기억이 떠올랐다. 

그중 비교적 최근 상황은

코로나19 근무였다.

당시 서울에서도 

확진자가 제일 많은 자치구에서 

역학조사팀과 현장 확인 일을 거쳐

확진자 이송 총괄 업무를 맡았다.

대상자와 병상배정반, 병원과 생치 간

일정 조율과 구급차 배치, 인력 조정 등

컴퓨터와 전화기를 떠날 수 없었다. 

경찰과 소방관과도 종종 연락했다.

하루에 70명이 넘는 사람을 

전국 방방곡곡에 옮겨야 하기도 했다. 

사무실 PC에 개인 노트북까지 지참해

주말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살은 쪽쪽 빠지고 지쳐갔다. 

비상구가 필요했다. 


짧은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바람을 쐬고 머리를 식히는 시간,

나에겐 귀여운 비상구였다.

일정은 꼬이고 연락은 안 되고

크고 작은 문제가 터질 때,

잠깐의 틈을 내어 

구청 간이문고에서 

책을 몇 장 넘기던 시간,

나에겐 숨을 쉬는 비상구였다.

숨 가쁜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조금 한가할 때 사무실에서

졸업 논문을 쓰고 다듬는 시간,

나에겐 애타는 비상구였다.

소중한 첫사랑과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지친 몸으로

새벽에 귀가해 함께 계획한

작은 결혼식 일정을 준비하던 시간,

나에겐 아름다운 비상구였다. 

운전 연수를 마친 지 몇 주 지니지 않아

차를 몰고 남해로 떠난 신혼여행,

나에겐 빛나는 비상구였다.


이제는 다시 일상이 찾아온 시간,

'Exit'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 속에서

생각 없이 습관대로 

먹고 자고 일하고,

감정 기복 따라

아프게 하고

아파하고

화나고

슬픈

삶.


이제 이런 반복으로부터

탈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살던 대로만 살면

그저 살아지는 인생이 된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는데

나도 몰랐던 가능성과 잠재력,

더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대로 포기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기에.

찐득거리는 하루하루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미래로

탈출해 보는 건 어떨까.

마음먹었다면

당장 'Exit' 하자.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조금씩 다가오는 봄바람에

올해의 꿈과 희망을 담아

멀리멀리 띄워 보내자.

그리고 외쳐본다.

"Yes, I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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