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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이었다

2024.4.6.

by 친절한 James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B는 쓴웃음을 내뱉었다.

4년이라는 세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담겼던 이곳. 20대 끝자락과

30대 언저리를 품었던 여기.

겨울에는 난방 없는 좁은 침대에서

침낭에, 이불에, 전기장판에,

거기에다가 적외선 등까지 켜고

달빛을 벗 삼아 호호 잠들던 이 공간.

건조하니까 물수건을 곳곳에 널어두고

물뿌리개로 구석구석

촉촉한 숨결도 더하고.


한쪽 구석에는 턱걸이 기구를 두고

종종 운동도 했는데.

의자 대신 짐볼을 쓰면서

일상의 코어 운동을 하던 날들이

떠올라 피식거리곤 했다.

한때는 채식주의자로

7개월 동안 생활했었지.

고기 없는 식사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 끝나고 틈틈이 준비해서

자격증 3개를 따고

학위도 2개 받았는데

이제는 그저 다 지난 일이 되었다.

삶이 엄청나게 바뀐 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다.

좀 나가볼까.

B는 방을 나와 길 건너편 편의점에 들렀다.

검은 하늘에는 모래알 같은 별들이

까슬까슬한 빛줄기를 흐느적거렸다.

태양처럼 환한 간판과 매장이

터벅 걸음을 반겨주었다.

바로 앞에 있었지만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뭐가 괜찮을까. 가벼운 술 한잔

걸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소주나 맥주는 그다지.

진열장을 둘러보니

알코올 도수가 3인 술이 있었다.

어디에선가 본 것 같다.

광고에서였나.

무슨 맛일까.

빛깔이 예쁜 캔을 하나 고르고

새우 과자도 한 봉지 집어 들었다.

작은 초콜릿도 한 개 먹어야지.

B는 뿌듯한 장거리를 손에 들고

다시 돌아왔다.


똑딱, 촥. 치이익.

스릅, 아!

상큼한 과일향이 인상적이네.

보글거리는 탄산은

지금껏 머릿속에 품었던

걱정거리를 톡톡 터뜨리는 듯 와글거렸고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울적함을 달래는

향기가 마음을 다독였다.

한 잔 음료로 이런 기분이 들다니.

B는 커피를 잘 마시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커피 애호가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술 마시며 커피 생각하는 것도 웃기네.

이런 날에는 이렇게 한 잔 걸쳐줘야지.

아삭아삭, 과자도 맛난다.


컴퓨터를 켰다.

내일부터는 너도 못 보겠구나.

그동안 작성한 문서 파일을 열어보았다.

나름 부단히 애썼던,

엉성하지만 소중한 기록들.

일부는 메일로 보내고 몇몇은 삭제했다.

또 몇 개는 블로그에 정리해 두었다.

나중에 새로운 글감으로 써야겠어.


B는 책정리를 마저 했다.

중고 서점, 인터넷 서점에서

한 권씩 모은 책들이 한 짐이다.

다 본 책도 있고 조금 들춰본 것도 있지.

다시 중고 서점에 팔 책은

따로 상자에 담아두었다.

다른 주인과 좋은 시간 보내길.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 되었다.

휴, 이제 거의 다 된 것 같은데.

이곳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고 했다.

떠나는 입장에 별 건 아닌데

고마움과 아쉬움이 오르락내리락.

그래도 잘 살았지 뭐. 고생 많았다.

B는 자신을 토닥이며 자리에 누웠다.

잘 자. 스위트 드림.

안녕. 스위트룸.


https://youtu.be/3ekpIombw3Q?si=GjZO-0P_MrhxaL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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