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친절한 James Nov 08. 2024

나는 기억에 빚을 졌다-버나드 쿠퍼의 작품에서

2024.11.8.


"좀 앉을까?"

한마디 건네며 나는 벤치에 앉았다.

호수가 내다보이는 수변 공원은

늦은 오후의 가을 햇살로

느린 반짝임을 폈다.

엊그제까지 쌀쌀했던 날씨는

꽤 다정해졌다.

바람은 잦아들고

낙엽은 바삭해졌네.

버드나무 가지 사이로 살랑이던

파란 하늘은 빛바랜 나무 의자에 스몄다.

내 마음도 그 안에서, 안으로 물들어갔다.


"오랜만이야."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

그 말은 낡은 나뭇잎보다

더 건조한 입김을 품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대꾸 없는 대화가

허공에 흩어졌다.

지난주의 차가움이

바람을 떠돌다 얼어붙듯

이번주의 쓸쓸함이

마음을 떠돌다 굳어버렸다.

나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두서없는 기억들이

한가득 펼쳐졌다.

어떤 건 흩날려 버리고

또 어떤 건 펄럭이며 떨렸다.


나는 옆을 보았다.

기차 기적 소리처럼

높이 솟아오른 빈자리.

그날의 풍경 한 꼭지가

퍼덕이며 뛰어올랐다.

그 사람과 함께 걷던 길,

흙길이었고 숲길이었지.

계절은 겨울이었나.

눈 덮인 나무를 본 것 같아.

아지랑이 같은 입김이

백합처럼 피어났지.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어.

특별한 주제는 없었지만

일상의 흔적들,

살면서 겪은 보고 들은 것들이

날아다녔지. 다른 분위기의

교향곡 악장처럼 말이야.

오르락내리락

우리를 드나든 시간,

기분이 좋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걸었어.


어느덧 우리는

전통차 카페에서

향긋한 한때를 보냈다.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별다른 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알다가도 모를 일,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여전히 좋을 것 같다.

아니,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그대 나눈 시간보다 더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잊혀가는 추억을 더 붙잡으려고,

부족했다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했던

못난 과거를 채우고 보태고 가꾸려고

더 소중한 하루를 보낼 것이다.

너를 그렇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나는 눈을 떴다.

해가 빗금을 그린다.

그 햇살처럼 몸이 기운다.

나는 기억에 빚을 졌다.


나는 기억에 빚을 졌다


이전 03화 비애로 가득한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