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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James Nov 10. 2024

우리는 그것을 포장했다

2024.11.10.


달력을 한 장 넘겼다.

올해도 이제 한 페이지만 남았네.

"시간이라는 게 겪기 전에는 아득해도

  지나고 보면 아련해져."

"맞아, 금방이지. 시간 가는 게.

  벌써 연말이라니, 참."

"그러니까. 한 달하고 며칠만 지나면 내년이야."


우리는 지난달들을 넘겼다.

각종 일정과 약속, 메모를 보며

추억에 잠겼다. 칸칸이 적힌 계획은

한때는 미래였지만 지금은 과거가 되었다.

가슴 졸이던 불안은 여유로운 미소가 되었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기쁨은 슬픔이 되고 눈물로 맺히기도 했지만

그래도 웃은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결국 좋은 쪽으로 흘러왔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아니야. 사실 그런 마음이 들기도 했고

  때로는 멀리 돌아오기도 했지만

  원하던 것들이 그대로, 또는 다르게

  이루어졌으니까."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기도 했다.

최악이라고 여긴 상황도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었다.


"산다는 건 매일 씨앗을 심는 것 같아.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열매가 맺힐지는

  사실 몰라. 짐작할 뿐이지.

  씨앗이 잘 자랄 수도,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씨앗을 안 심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지."

"오늘은 오늘의 씨앗을 잘 심어보자."


우리는 거실 탁자로 갔다.

빨강과 초록 무늬로 꾸민 선물 상자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간식 몇 개,

가지런한 학용품, 정성껏 쓴 손 편지가

그 옆에 놓여 있었다.

"선물을 포장해 볼까?"


우리는 매년 이맘때 선물 상자를 하나 만든다.

지역사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한 자선 단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작은 보탬을 더하고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작은 안식이 되고

조그만 평온이 된다면

참 좋겠다고 여겨 시작했다.

세상은 이어져 있고

너를 위해 마음을 담은 사람이 있단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선물을 포장했다.

기부자를 따로 표시하지 않아서 더 좋다.

매듭을 묶으니 뿌듯했다.

이 선물이 누군가에게

좋은 씨앗이 되어 크게 자라기를.

우리는 사랑을 담아 그것을 포장했다.


우리는 그것을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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