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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박약은 인터벌이 힘들다

마라톤 훈련 일지 D-63

by 쪼이



본격적으로 훈련을 시작하기로 짐한 첫 주, 러닝크루에서 열어주는 훈련에 참여했다. 이번 주에는 목요일 400m/200m 인터벌과 일요일 25km LSD 훈련 참여 수 있었다.

인터벌은 개같이 망했다…. 400m는 5'10" 페이스로, 200m는 7'30" 페이스로 총 10세트 하는 게 훈련 구성이었는데, 5세트 정도 하고 난 뒤에 낙오해 버렸다. 남은 시간 동안 혼자 7'30" 페이스로 천천히 트랙을 돌았다.

사실 나는 지금껏 인터벌 훈련을 제대로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인터벌이 유독 힘든 이유는 휴식구간에서 천천히 뛸 때, 그 천천히 뛰는 맛을 알아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10세트를 한다는 것은 빡세게 뛸 마음을 10번 먹어야 하는 거다. 나는 의지박약이라 그렇게 의지를 다잡는 게 힘들다.

작년 10월, 첫 번째 하프마라톤을 기대 이상으로 완주한 이후 나는 두 번의 하프마라톤을 더 뛰었다. 그리고 매번 뛸 때마다 10분씩 더 느려졌다. 가장 최근에 뛴 하프마라톤은 지난 4월 서울하프마라톤이었는데, 아주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걸었기 때문이었다. 한 번 걸어버리니 절대 다시 뛸 수 없었다. 걷는 것의 편안함을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이겨내야 하는 것은 그 편안함에 대한 유혹이다.

오늘 아침에는 25km LSD 훈련이 있었다. 전날 밤늦게까지 일정이 있었는데, 훈련을 가려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수면부족 상태에서 훈련하면 몸에 더 안 좋은 거 아닐까? 그런 약한 소리를 내뱉으며 훈련 안 갈 핑계를 대는 나한테 남자친구가, 진심으로 시카고에서 쓰러질까 봐 무서우니까 훈련을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 줬다. 너무 맞는 말이었다. 진짜 목숨이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고, 간신히 일어나서 훈련을 나갔다. 그리고, 얼마 전 입추 때부터 귀신같이 선선해진 공기 덕분에 상쾌한 기분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의 최장거리는 하프마라톤 거리인 21km였다. 오늘 25km를 성공하면 최장거리를 갱신하는 것이다!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어찌저찌 20km까지 뛰었는데, 그때부터 또 마음속에서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22km만 뛰어도 기록갱신이야!’

다행히, 25km를 채우는 데 성공했다! 인터벌 훈련 때 낙오한 나를 본 크루원들이 오늘 훈련은 꼭 낙오하지 말라고 다독여준 힘이 컸다. 무엇보다, 훈련을 계속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확실히 느낀 바가 있었다. 다들 10번씩 힘든 것을 다시 견디려고 뛸 의지가 있는데 나만 없다고. 나는 포기에 대한 역치를 좀 올려야 한다고.

아무튼, 오늘 훈련을 성공해서 기분이 좋다! 단순히 이번 훈련에 대한 성취감만이 아니라, 정말 마라톤 완주를 해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덕분에 기분 좋게 한 주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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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