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rsity in Sport (1)
지난주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고, 이번 주는 호주 GP(그랑프리)를 시작으로 F1(포뮬러원)의 2025시즌이 시작되는 주말입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고민하다가 여성과 F1을 주제로, 스포츠에서 날로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고 F1에서도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자 하는 스포츠에서의 여성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최근 여성의 스포츠 참여는 관람스포츠와 참여스포츠를 막론하고 모두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3 프로스포츠협회에서 발간한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설문에 응한 프로스포츠 팬 가운데 여성 비율이 57.1%로 절반을 넘었고, 고관여팬(관심 있는 리그의 지난 시즌 우승팀과 응원 구단의 선수를 모두 알고 있고 유니폼을 보유한 응답자)은 여성 비율이 62.6%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K리그에서의 여성팬 비중은 아직 타 종목만큼 높지는 않지만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그에 따라 K리그의 응원 문화도 점차 바뀌는 것을 체감하고 있죠.
생활체육 참여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년 시작한 '골 때리는 그녀들'이 이슈가 된 후로 여성들의 축구 참여도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축구를 배우거나 풋살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전에는 없었던 일입니다.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 축구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제게는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이처럼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여성의 스포츠 참여는 아주 명확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8년 역대 최초로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율이 남성을 추월하기도 했습니다.
단순 취미로서 생활체육 레벨이 아니라 엘리트 레벨에서도 여성들의 성장이 두드러집니다.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아스날, 첼시 등 유럽의 유명 축구 구단들은 모두 여성팀을 함께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로는 지소연 선수가 첼시FC 위민에서 활약하기도 했었죠. 이런 여자 축구리그는 흥행면에서도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24시즌 아스날 위민은 약 3만 명의 평균관중을 기록했고, 같은 시즌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위민과의 홈경기는 60,160명의 관중이 찾으며 WSL(Women's Super League, 잉글랜드 여자축구리그) 역사상 가장 높은 수의 관중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2024시즌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관중 수를 기록한 FC서울의 평균관중 27,838명 보다 많은 숫자며(단일경기 최고 기록도 51,670명입니다), 일부 남성 프리미어리그 구단의 평균관중보다도 많은 숫자입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2023 FIFA 여자 월드컵은 총 1,500만 명 이상이 대회를 관람하고 결승전에서는 약 75,000명이 넘는 관중을 기록하며 여성 축구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여성 플레이어가 진출하지 못한 분야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버 오직 20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F1이 그곳입니다. F1 드라이버는 성별과 관계없이 기술적, 신체적 자격을 충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F1을 비롯한 모터스포츠는 남녀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포츠 종목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현재 F1에는 여성 드라이버가 존재하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오직 5명의 여성 드라이버만이 공식적인 F1 무대에 도전했을 뿐입니다. 물론 그마저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에 F1을 주관하는 FIA(국제자동차연맹)에서 현재 가장 공들이고 있는 사업 중 하나는 여성 드라이버 육성입니다. F1 드라이버는 시속 300km 이상에서 달리며 발생하는 엄청난 중력가속도로 체력과 집중력, 근력과 신체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체격과 근력이 약한 여성 드라이버들은 이런 피지컬적인 능력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죠. 때문에 F1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FIA은 모터스포츠가 그리고 F1이 남성 중심적인 스포츠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이는 레이스 드라이버뿐 아니라 모든 모터스포츠 분야를 포함하고 있지만, 특히 여성 F1 드라이버에 대한 열망이 대단하죠.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선 사회적 가치에 대해 논해 본다면, 여성 드라이버의 등장은 모터스포츠계에 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여성 고용률이나 리더십에서의 여성 비율 등 성별 다양성(Gender Diversity)은 기업에서도 주된 ESG 평가 항목 중 하나죠. 이는 스포츠계에서도 동일합니다. '남성 중심적 스포츠'라는 인식은 성별 다양성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F1 드라이버는 모터스포츠계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리더이기 때문에 여성 F1 드라이버를 키워낼 수 있다면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FIA의 가장 큰 명분은 성별 다양성의 증진입니다.
물론 당연하게도(아마 더 큰 이유겠지만) 상업적인 이유도 있을 겁니다. 여성 드라이버의 등장은 자연스럽게 여성 팬이나 젊은 팬층의 관심 및 유입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 관련 브랜드와 같이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이어질 겁니다. 실제로 올해 초 F1과 루이비통(LVMH) 그룹 간의 10년짜리 대형 스폰서십이 체결되기도 했고, 해당 스폰서십에는 여성 드라이버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인 'F1아카데미'의 스폰서로 태그호이어(TAGHeuer)가 참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F1아카데미의 후원사 중에는 샬롯 틸버리(Charlotte Tilbury)라는 영국 코스메틱 브랜드도 참여하고 있죠.
나아가서는 어린 여성들이 레이싱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수풀도 넓어질 수 있습니다. 여성 F1 스타의 등장은 어린 여성들에게는 훌륭한 롤 모델로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세리, 김연아 선수의 성공이 후 '세리 키즈', '연아 키즈'가 등장하며 해당 종목에 많은 여성 선수들이 유입되었고 시장이 크게 성장하였죠. 여성 F1 드라이버의 등장은 그야말로 모터스포츠 산업을 또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는 잭팟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FIA는 수년간 여성 F1 드라이버의 육성을 위해 여성만 참여하는 W Series(2019년에 시작하여 2022년 폐지되었습니다), 여성 드라이버를 육성하는 F1아카데미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여성 드라이버를 시장에 유입시키고 있고 어느 시점에서는 그 결실을 얻는 날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제쯤 여성 드라이버가 F1에 나타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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