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ween Skylla and Charybdis
진퇴양난(進退兩難)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키르케는 자신의 섬에 머물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나는 오디세우스에게 닥쳐올 위험을 경고한다. 한쪽에는 끔찍한 이빨을 드러낸 Skylla(스킬라)가 있고, 다른 쪽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무시무시한 Charybdis(카리브디스)가 있어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히 바다를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곳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한쪽 위험을 피하려다가 다른 쪽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지금도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메시나 해협에는 Skylla(스킬라) 바위가 있는데, 우리 표현으로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에 빠진 것을 나타내는 서양의 표현 'Between Skylla and Charybdis'의 유래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와 같은 형국에 빠지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이다. 특히, 직장이라는 조직 세계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판단하고 처신해야 할까? 어려운 일이다. 쉽게 판단하기 어렵고, 다른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그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선례를 찾더라고 대입해서 판단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다. 그 상황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이러한 상황을 현명하게, 나에게 적합하게 헤쳐 나가기 위한 생각을 해보자. Skylla와 Charybdis 사이를 어떻게 항해해 피해 없이 헤쳐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취업 자체가 어려우니 이러한 고민이 사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신입사원이든 경력사원이든 새로 들어간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는 것이 보통이다. 직장의 조직 문화는 어떤가? 만나기도 쉽지는 않지만 사장(또는 조직장)은 어떤 스타일인가? 매일 같이 일하게 되는 직속 상사는 어떤가, 조직에서 인정받는 능력자인가 아닌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선배는 어떤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는 있는가? 등등. 무수한 많은 변수가 직장에서의 갈등 발생 요인이고, 이러한 요소들이 갈등 상황에서의 생각과 판단을 요구한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담당자로서 일 할 때 관련 부서와의 협업 관계이다. 작은 규모의 조직보다는 일정 규모 이상이고, 각 부서별 기능성을 갖춘 조직에서 일어날 것이다. 관련 부서 담당자와의 협업이 잘 되느냐가 조직 적응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가 몸 담았던 조직에서의 경험인데, 나 보다는 후배였던 동료는 거의 매일 관련부서 女직원과의 업무처리 시 고충, 불만에 대하여 나한테 하소연하곤 했다. 어떤 경우는 다른 직원이 대신 가서 업무를 처리해주는 일까지 있곤 했으니 어느 정도의 관계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고충, 불만이 사라졌다. 그래서, 요즈음 업무 처리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그 부서 女직원과는 잘 협조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잘 되고 있다. 그래서, 직장 다니는 재미도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욱 반전인 것은 1년 뒤에 그 직원과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부서원들에게 돌려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 부서 女직원과 처음 업무 처리할 때 그가 실수를 해서 그 女직원이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고, 그다음부터는 사사건건 확인하고 따지게 되는 바람에 모든 일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女직원과 한 번은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퇴근 후에 자리를 갖게 되었고, 그때 상황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그 女직원도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가 보니 관련부서에서 꼼꼼하게 해오지 않으면 일처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시범적으로 좀 심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 일이 있은 후에 두 사람은 업무처리 고충에 대해서 서로 터놓고 이야기함으로써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고, 스트레스를 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이해가 높아져 인생을 같이 하는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가끔 접한다.
아주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점은 '갈등이 있을 때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직장에서의 생활을 슬기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직장도 똑같이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곳이다. 자가 자신이 먼저 솔직하게 다가갈 때 소통이 이루어지고, 이해가 생기며,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일이다. 대기업 CEO가 된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출 영업부서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였는데 당시에는 컴퓨터, Fax도 없고 텔렉스로 통신하던 시절이었다. 불과 40여년 전 1980년대 초이니까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다. 그는 본인이 근무하던 층에서 제일 먼저 출근을 해서 밤새 들어온 텔렉스를 구분해서 선배들 책상에 가져다 놓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신입사원으로서 자진해서 한 것이다. 텔렉스를 구분해서 가져다 놓으면서 어떤 거래선에서 텔렉스가 들어온 건지, 어떤 내용인지 등을 자연스럽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그게 하루 이틀 쌓이면서 그는 층 내 전부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일이 주어졌을 때 어느 부서와 협업이 필요한지, 시급한 것인지, 큰 프로젝트인지 등을 알면서 대처할 수 있어서 선배들한테는 스스로 잘 알아서 일처리는 하는 유능한 신입사원으로 인정받게 되고, 승진도 빠르게 할 수 있었고, 궁극에는 CEO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일화이다.
요즈음 하고는 환경과 여건이 많이 다르지만 전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은 직장이라는 조직에 적응하고, 성과를 창출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는 것은 누군가 나에게 가르쳐 줘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 내가 보고 배우면서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는 사례와 기회가 굉장히 많다. 전체를 보려고 하는 시도가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고 대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전체를 볼 줄 아는 실력을 갖추어야 진퇴양난의 형국에 놓인 상황에서 피해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는 답을 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리더에게는 더욱 요구되는 꼭 필요한 능력이자 실력이다.
본인도 신입사원 시절에 어려운 상사를 만났다고 생각해서 사표 제출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사표를 내려니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 미련이 많이 남고, 계속 다니려니 그 상사와는 한시도 같이 못 있을 것 같고 진짜 'Between Skylla and Charybdis'의 상황이었다. 결론은 그 시기를 잘 넘겨서 한 직장에서 27년을 근무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민이 많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때 본인이 취했던 해결책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수동적인 방법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안이 나타나게 된다. 내 마음이 누그러질 수도 있고, 상사의 태도가 변화될 수도 있고, 조직의 변화 등 외부 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어떤 문제, 갈등을 접했을 때 인내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과감하고, 명쾌한 결단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현명한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Between Skylla and Charybdis'라는 진퇴양난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도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도전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한 여러 사람과 허심탄회한 소통이 필요하고, 실력도 쌓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헤쳐 나가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