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영혼들
희망원. 이름과는 달리 희망이 희미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영혼들이 모여 있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녀는 희망원에서 왔다고 했다. 65세, 장애를 가지고 있다. 공적인 부양의무자가 없어 국가로부터의 지원금은 시설에서 관리한다. 그녀의 하루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것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눕지도 않고, 그저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오늘도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르신, 오늘 왜 그래요? 슬퍼요?"
내 말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슬픔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 나 꽉 죽어버릴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말은 항상 나를 아프게 한다.
"왜 그래요?"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며 물었다. "말해봐요,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엄마가 데리러 안 와요."
65세의 나이에도 그녀에게 '엄마'는 여전히 세상의 전부였다.
그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그녀의 엄마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언젠가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는 희망과 함께. "그러지 마요. 밥 잘 먹고 있으면 엄마 오실 거예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진실보다 위로가 필요한 법이다.
나는 보라색 스카프로 그녀의 목을 감싸 멋을 내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 귀걸이 하면 다 예쁘다고 한다고."
그녀는 서랍에서 오래된 귀걸이를 꺼냈다. 누가 선물했는지,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귀걸이. 하지만 그녀에게는 보물이다.
나는 귀걸이를 채워주고 모자도 씌워주었다.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원해서 태어난 인생은 아무도 없다. 그것도 장애를 가지고... 누군가는 생각지도 못한 인생들이 여기 있다. 처참하다. 사실 나도 전혀 모르던 인생이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는 행여 우릴 힘들게 하는 민원일까 봐 애써 피해 왔던 사람들. 그네들의 삶이 이토록 눈물나게 슬플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복도 건너편에는 또 다른 그녀가 있다. 70세, 역시 장애를 가지고 있다. 공적인 부양의무자가 없는 것도 같다. 그녀는 커피와 빵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괴성과 노래를 부르고, 어떤 날은 엄청 기분이 좋다가 어떤 날은 아주 좋지 않다.
오늘은 노래의 날이었다. 아침부터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타주어도 진정은 잠시뿐. 곧 다시 노래가 시작되었다.
나는 박수를 치며 그녀와 함께 노래했다. 그녀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다가 물었다.
"어르신, 오늘 우울해 보이네요. 왜 그래요?"
노래를 멈춘 그녀가 대답했다."엄마가 보고 싶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오늘은 날도 좋은데 왜 다들 엄마를 찾을까. 이 분도 장애가 있다. 엄마 들으라고 큰소리로 부르는 거다.
그녀의 말에 내 가슴이 저몄다. 얼마나 멀리 계시길래. 하늘 너머에 계신 엄마에게까지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지.
"목 안 아파요? 그만 부르고 좀 누워요."
내 말은 공허하게 흩어졌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녀의 노래는 계속되었다. 엄마에게 닿기를 바라는 그 간절한 목소리가 요양원 복도를 채웠다.
기도의 시간
밤이 깊어지고, 모두가 잠든 후에야 나는 조용히 사무실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다.
"주님, 이 영혼들을 안아 주소서.당신만이 치료할 수 있고, 당신만이 평안을 줄 수 있사오니 주여, 외면하지 마옵소서."
목이 메였다. 나 자신의 무력함이 견디기 어려웠다. 오늘은 2년 가까이 나가지 않은 교회의 목사님 설교를 일부러 찾아 들었다. 두 눈 사이로 스며드는 뜨거운 느낌은 무엇일까. 죄책감일까, 아니면 위로일까. "주님, 저를 이 곳까지 보내셨사오니 저에게 이들을 안을 수 있는 용기와 힘과 지혜를 주옵소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적다. 보라색 스카프를 둘러주고, 오래된 귀걸이를 채워주고, 커피 한 잔을 타주는 것. 그것뿐이다. 그들의 영혼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그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엄마'를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까.
지금은 밤 12시 5분.그들은 잘까? 꿈나라에서 그토록 목놓아 부르던 엄마를 만날까?
제발 만났기를. 그래서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겨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사랑이 많은 신이 꼭 그리 했으리라 믿으며 나도 꿈속에서 사랑하는 님을 만나고 싶다.
나는 매일 밤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한다. 오늘도 65세 그녀는 "엄마 마음 아프게 할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70세 그녀는 또다시 엄마를 부르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저 그들의 손을 잡아줄 뿐이다.
하지만 오늘 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그들이 꿈속에서만이라도 엄마를 만날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다.
주님,이 밤, 엄마를 부르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65년, 70년을 살아왔지만여전히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소서.
"엄마가 데리러 안 와요""엄마 마음 아프게 꽉 죽어불까요""엄마가 보고 싶어"이 말들이 당신의 귀에 닿기를 바랍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세상의 냉대와 외로움을 견뎌온 이들에게당신의 따스한 위로가 함께하길 원합니다.
주님, 그들의 밤을 지켜주소서.하얀 침대 위에서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소서.그들이 꿈속에서 만나는 엄마의 품이실제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하소서.
온종일 부르짖었던 그 목소리가오늘만큼은 엄마의 귀에 닿게 하소서.하늘 너머에 계신 그 엄마가오늘 밤은 꿈속에서 자녀를 품에 안게 하소서.
주님, 저는 그저 작은 커피 한 잔과오래된 귀걸이를 채워줄 수 있을 뿐입니다.하지만 당신은 그들의 영혼을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그 깊은 상처와 그리움을 감싸안아 주소서.
아무도 원치 않았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작은 행복과 위로가 되어 주소서.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이들을 돌보는 저에게도 지혜를 주소서.제가 지치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도록용기와 인내와 사랑을 더하여 주소서.
이 밤, 모든 이들의 잠자리를 축복하소서.엄마를 부르던 이들도,그들을 돌보는 이들도,모두가 평안한 꿈을 꾸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