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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바람 따라 춤추며 떠난 여인

독거노인의 요양원에서의 마지막

묶인 두 손의 비명

그녀의 두 손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침대 난간에 묶여 있었다. 요양원에서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채워진 구속대는 그녀의 피부를 파고들어 붉은 자국을 남겼다. 손목 주변은 구속의 흔적으로 짓무르고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물 좀... 물 좀 주세요..."라는 갈라진 목소리의 애원은 메마른 복도를 맴돌았지만, 밤 당직 간호조무사는 TV 소리에 묻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혹은 듣지 않기로 했다.

"풀어주세요... 제발... 화장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누워 있어야 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마저 박탈당한 채, 그저 숨만 쉬는 '물건'으로 취급받았다.

온 몸은 옴으로 인해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가려움은 지옥이었다. 긁을 수도 없는 가려움. 몸 전체가 불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묶여 있던 두 손등은 부종으로 물이 가득 차 파랗게 변색되었다. 누르면 마치 익은 감처럼 터져버릴 것 같았다.

밤마다 그녀는 홀로 흐느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평생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식 키우고, 며느리 시중들며 살았던 그녀였다. 이제는 가족도, 찾는 이도 없이,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창고에 맡겨진 '짐'이 되어버렸다.

의학적 치료가 시급한 상태였지만, 누구도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요양원 원장은 "병원에 보내면 병원비가 더 나오니, 여기서 최대한 버텨보자"고 했다. 죽도 넘기지 못하는 그녀에게 간호사는 그저 죽을 더 처방할 뿐이었다. 삼키지 못해 입 밖으로 흘러나온 죽을 보며, 조무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왜 이렇게 힘들게 해요. 좀 편하게 가시지..."

국민기초수급 1인, 단독 노인세대

그녀는 보호자가 없는 국민기초수급 1인 단독 노인세대였다. 사회안전망의 가장 끝자락에 있던 그녀는 통계 속 하나의 숫자, '기초생활수급자 148만 명'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남편은 20년 전 폐암으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간병하느라 모아둔 돈은 바닥났고, 작은 가게마저 망했다. 아들은 사업 실패 후 연락이 끊어졌고, 딸은 이혼 후 해외로 떠났다. 한때는 손주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집에서, 이제는 벽에 붙은 바랜 사진만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평생 식당 설거지, 건물 청소, 대형마트 전단지 돌리기까지... 허리가 굽어도, 무릎이 아파도 쉴 수 없었다. 노후를 대비할 여유는 꿈도 꿀 수 없었다. 75세에 쓰러져 거동이 불편해지자, 동사무소 직원이 요양원으로 보내졌다.

요양원에 들어온 지 2년, 그녀의 일상은 침대에 묶인 채로 희미한 형광등 불빛 아래 천장의 얼룩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엔 울부짖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여기 있기 싫어요." 하지만 이제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난번에 왔던 할머니 손자 맞죠? 오늘은 어쩐 일로..." 간호사의 말에 방문객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어머니는 옆 병실에 계세요. 이분은 제가 처음 봐요."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명절에도, 생일에도 찾는 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밤마다 그녀는 꿈을 꾸었다. 젊은 시절, 봄날 남편과 함께 벚꽃 구경을 갔던 날의 꿈.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바다에 갔던 날의 꿈. 꿈에서 깨면, 그녀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꿈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었다.

요양원의 불편한 진실

요양원은 '요양'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대기실에 가까웠다. 인력 부족을 핑계로 노인들은 종종 구속되었고, 기저귀는 제때 갈아주지 않아 욕창이 생기기 일쑤였다. 최소한의 식사와 약물 투여만 이루어질 뿐, 정서적 케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의 형식적인 감사는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감사 날짜를 미리 알려주고, 그날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도록 했다. 평소에는 간호조무사 한 명이 20명 이상의 노인을 담당했고, 식사와 약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방치된 채로 보냈다.

노인들의 개인 재산과 수급비는 '관리'라는 이름으로 요양원 측에서 관리했고,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는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비양심적인 운영자들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했다.

벚꽃 바람따라 춤추며 떠난 날

그런 그녀가 바람이 유난히 불어 벚꽃이 춤추던 봄날, 마침내 이 세상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365일 묶여 있던 두 손을 풀고, 그녀는 벚꽃 꽃잎과 함께 춤추며 천국으로 날아갔다.

하필 그날 나는 그녀의 춤을 응원할 수 없었다. 업무 교대로 그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떠나고 난 뒤, 그녀의 자리는 무심하게도 비워졌다. 떠난 그녀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을 텐데, 이미 다음 입소자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간소했다. 요양원에서 준비한 형식적인 절차만 있었을 뿐이다. 조문객은 거의 없었고, 그녀의 일생을 기억하는 이도 없었다. 화장된 유골은 무연고자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우리 사회의 민낯

우리 모두는 언젠가 떠난다. 울면서 가기 싫어 몸부림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아무 의미 없이 그저 갈 길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365일 두 손이 묶인 세상을 떠나면서도 웃으며 꽃잎과 함께 춤추는 인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떠난 자는 떠난 자일 뿐, 그저 슬픈 현실만 남는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 먼 길을 떠난다면, 적어도 사흘은 슬퍼해 주고 잘 가라고 인사라도 해주자. 떨어지는 꽃잎에도 무심한 우리가 되지 말자.

우리 사회는 노인들, 특히 빈곤한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독거노인, 쪽방촌에서 난방비를 아끼려 동상에 걸리는 노인, 요양원에서 두 손이 묶인 채 세상을 떠나는 노인들. 이것이 우리가 만든 노인 복지의 현주소다.

떠난 여인을 위한 기도

벚꽃과 함께 떠난 여인이시여, 이제는 두 손이 자유로워지셨기를, 더 이상 목마름도, 아픔도 없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이 겪으셨던 고통과 외로움, 이 세상에서는 다 이해받지 못했던 그 삶을, 이제는 평화로 감싸안으시기를.

다음 생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 태어나시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두 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 누리시기를.

벚꽃 흩날리던 그날의 바람처럼 당신의 영혼도 자유롭게 날아가시길, 이 봄날의 꽃들이 피고 지듯, 당신의 새 삶도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잘 가시오, 벚꽃과 함께 떠난 여인이시여.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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