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0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요양원의 두 얼굴

치매 위장한 권력자와 그 피해자들

by 시가 별빛으로 눕다 Mar 13. 2025


 150kg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

서늘한 바람이 요양병원 복도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따라 유난히 가벼운 공기가 느껴졌다. 150kg 거구의 박정숙 여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찾아 떠난 날이었다. 말로는 아쉬움을 표했지만, 직원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십 년 묶인 체증이 내려간 듯한 표정들.

"정 들었는데..."

박정숙 여사가 짐을 챙기는 직원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의례적인 인사만 오갔을 뿐.

"어르신도 건강하세요."

표정 없는 목소리로 건넨 마지막 인사. 그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요양원의 '여왕'은 떠났고, 직원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에는 드디어 휴식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느 쪽을 이해해야 할까?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은 지친 직원들에게 기울어 있었다. 치매도 아닌, 그저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는 노인을 돌봐야 했던 그들의 고충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가짜 치매 환자의 요양원 지배기

박정숙 여사는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치매 증상은 전혀 없었다. 의사는 경도인지장애 진단만 내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치매 노인'으로 포장하며 특별대우를 요구했다. 요양병원에 있는 3년 동안, 그녀의 몸무게는 130kg에서 150kg으로 늘어났다. 끊임없이 배달시키는 치킨, 피자, 호빵 때문이었다.

"목사님, 어머님께서 또 주문하셨습니다. 당뇨가 있으신데 이렇게 드시면..."

간호사가 조심스레 그녀의 아들에게 전화했다. 박정숙 여사의 아들은 인근 교회의 목사였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 그냥 드리세요. 어머니 마음이 평안해야 우리도 평안한 거예요. 비용은 걱정 마세요."

목사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건강보다 자신의 평안을 우선시했다. 신의 종이라 자처하면서도 고통받는 요양원 직원들의 현실은 보지 않았다. 그저 월급의 몇 배에 달하는 '팁'을 직원들에게 건네며 양심의 가책을 덜었을 뿐.

그녀의 횡포는 음식에만 그치지 않았다. 밤마다 휴지, 물티슈, 심지어 기저귀까지 방 구석구석에 던져두었다. 자신의 물건이 조금이라도 옮겨져 있으면 고함을 질렀다. 화장실 청소를 하는 직원에게는 "네가 공부를 더 했어야지, 이런 일 안 하려면"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박 여사님, 약 드실 시간이에요."

"나중에 줘. 지금 드라마 보는 중이야."

"그런데 정해진 시간에 드셔야..."

"시끄러워! 내가 돈 안 내나? 네가 월급 더 줘?"

이런 모욕적인 상황이 매일 반복되었다. 150kg의 그녀를 베드에서 옮기거나, 목욕을 시킬 때는 최소 세 명의 직원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요통이나 근육통을 얻은 직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그녀가 실제 치매 환자들에게 보인 태도였다. 자신과 같은 방을 쓰는 실제 치매 노인들을 향해 "더러운 것들", "미친 것들"이라며 경멸했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 입소자들을 향해 물그릇을 던지기도 했다.

이런 행태에도 불구하고 요양원 원장은 그녀를 내보내지 못했다. 아들 목사의 든든한 후원금 때문이었다. 목사는 매달 정기적인 '특별헌금'을 요양원에 보냈고, 어머니를 특별관리하라는 메시지를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는 조금 까다로우신 분이에요. 하지만 우리 교회가 요양원을 많이 돕고 있잖아요. 서로 돕는 게 신앙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는 항상 '신앙'이란 단어가 등장했지만, 실천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직원들에게 가하는 무례함을 외면했고, 오히려 직원들에게 "더 인내하라"고 조언했다. 자신의 교회 신도들 앞에서는 "요양원 봉사"를 자랑했지만, 정작 어머니를 방문하는 시간은 한 달에 한 번도 채 되지 않았다.

직원들의 고통은 누적되었다. 젊은 요양보호사들은 하나둘 사직했고, 남은 이들은 "박정숙 수당"이라며 농담 삼아 웃었지만, 눈가의 피로감은 감출 수 없었다. 밤근무 때면 그녀의 호출벨이 울릴까봐 가슴을 졸였다. 새벽 3시, '급하게' 부른 이유가 '핸드폰 충전기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던 적도 있었다.

"제가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건, 그분이 치매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평생 타인을 존중할 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퇴사를 결심한 간호조무사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우리 사회는 노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지만, 모든 노인이 공경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이 그 곳에 있었다.

권력이 떠난 자리

150kg의 박정숙 여사가 떠난 자리에는 기이한 고요함이 남았다. 아무도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함께 지내던 치매 노인들까지도 더 평온해 보였다. 박 여사가 자리를 비운 식당에서는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오늘은 밥맛이 어떠세요?"

"맛있어요. 왠지 오늘은 공기도 좋은 것 같아."

치매를 앓는 김 할머니의 말에 모두가 미소 지었다. 박정숙 여사가 없는 공간은 그렇게 조금씩 치유되어 갔다.

떠나는 날, 그녀는 새 요양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 좋은 서비스", "더 넓은 방", "더 맛있는 음식"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곳도 곧 그녀로 인해 지옥이 될 것임을. 그리고 또 떠날 것임을.

마음 속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어르신, 세상은 함께 돌아가는 거예요. 행복하세요."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짐을 실어주고, 의례적인 인사만 건넸을 뿐. 진심 어린 작별인사를 할 만큼 그녀는 사랑받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의 삶이 만든 가장 슬픈 결말이었다.

 요양원의 그림자를 밝히며

우리 사회는 노인 요양 시설의 실상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 헌신적인 요양보호사들의 노력과 실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의 상황도 있지만, 동시에 드러나지 않는 어두운 측면도 존재한다.

첫째,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돈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정숙 여사와 그녀의 아들처럼 경제력을 무기로 특혜를 요구하는 입소자들이 있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시설들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둘째,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돌봄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신체적·정신적 학대에 노출되어 있지만, 제대로 된 보호 장치가 없다. 감정노동의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 채,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인 양 여겨진다.

셋째, 신앙과 봉사라는 이름 아래 위선이 자행되기도 한다. 

박 여사의 아들처럼 종교인임을 내세워 특권을 요구하거나,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나이 들고, 어쩌면 요양시설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떤 대우를 받고 싶은가? 단지 돈을 낸다는 이유로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요양원은 단순한 서비스 시설이 아니다. 그곳은 인간 존엄성의 마지막 보루이자, 우리 사회의 윤리적 수준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150kg의 권력자가 떠난 지금, 우리는 더 나은 돌봄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누구에게든 어려움은 닥칠 수 있다. 그때 너무 냉정한 이성의 끈을 잡지 말자, 상대를 위해. 누구에게든 얼굴 가득 눈물 가득할 때가 있다. 그때 왜 슬프냐고 묻지 말자, 그저 조금 젖어 있어 주자.

그리고 요양원의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헌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나고 있다고. 박정숙 여사 같은 사람들이 있더라도, 당신들이 지키는 인간 존엄성의 가치는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고.


이전 15화 망각의 바다에서 - 치매, 당신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