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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는 환생해서 집 앞 세탁소 아저씨가 되었다

어쩌면 성자가 되는 건

by 진샤




동네 이사 오고 나서 처음 가보는 세탁소였어요. 아이 점퍼 지퍼 손잡이가 떨어져서 수선을 맡겨야 했어요. 세탁소는 늘 먼지가 가득한 곳인데, '먼지를 매일 엄청나게 먹으면서도 어쩜 이런 표정과 이런 미소를 가질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주인아저씨였어요. 아이 옷을 보더니, 첫마디부터 '죄송합니다'라고 했어요. '수선비가 2,000원이었는데, 3,000원이 되었어요. 너무 죄송해요.'

좀 당황한 저는 처음에는 그냥 '괜찮아요'라고만 했어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 나자 아저씨는 이틀 후에 오시면 되세요,라고 말해 주었어요. 네, 잘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세요,라고 하고 나오려는 제 뒤통수에 다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보다 좀 더 맑아 보였어요.

문을 열고 나오자 출발점을 알 수 없는 6월의 초여름 더위가 이제 막 내 곁에 도착한 것이 느껴졌어요. 집에 걸어서 오는 내내 알게 되었어요. 나는 방금 성인을 만났구나. 생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깨달은(佛) 자, 성스러운 이를 만났구나. 굳이 종교를 들먹이자면, 석가모니가 다시 태어나 우리 동네의 세탁소 주인이 되었구나. 교회에 다니신다면, 살아있는 예수님을 가슴속에 지닌 분이시구나. 매일을 세탁소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고장 난 옷과 얼룩진 세탁물들을 마주 하면서, 나 같은 범인(凡人)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정화(精化)된 얼굴을 한 자였어요. 말 한 마디마디에 담긴 배려와 감사, 표정에 담긴 삶의 기쁨, 손끝에서 우러러 나오는 일상의 행복이 체화되어 있었어요. 그 모든 축복을 스스로도 주체 못 해 온몸으로 발현하는 분이었어요. 갑자기 내 마음속 구석에서 빛을 잃어가던 종교의 언어들이 떠올랐어요. 허위와 텅 빈 의미로 가득 찬 언어가 아닌, 삶의 틈틈을 꽉 채우는 진실한 '성실함'의 무게를 가진 언어들이요.



이틀 후, 세탁소 주인의 모습을 한 성인에게 점퍼를 찾으러 갔어요. 수선은 당연히 깔끔히 잘 되어 있었고, 소매 끝에 묻어있던 얼룩마저 지워져 있었어요. 대자대비의 행위, 은혜 가득한 행위는 멀리 있는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수선을 맡았는데, 자신의 벌이가 자신의 소임을 넘어선다고 느낀 성인(聖人)은, 세탁까지 한 것이에요. 아웃렛에서 만 오천 원 주고 산 아이의 옷은, 온갖 성스런 어휘들이 적힌 경전(經典)으로 변했어요.


종교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굳이 산 속이나 십자가가 표시된 건물 안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내 주변에서 자신의 할 일을 꿋꿋이 해나가며 삶의 충만함을 전파하는 자, 그런 자들 곁에 종교가 있고 설법이 있고 예배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교회와 성당 예배당과 법당에서만 종교의 심성을 찾는 것 아닐까요. 은혜에 충만해졌다가, 생의 찰나 깨달음을 얻는 시간을 가졌다가 점심을 먹으며 앞에 앉은 가족을 향해 독한 말을 쏟아내는, 상처 주고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우리가 아닐까요. 그런 우리에게 종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쩜 종교는, 그 종교의 성인은, 허름한 세탁소를 예배당으로 하는 세탁소 아저씨 같은 분이 아닐까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다가 새로운 일을 마주함에 감사하고 그 일과 관련된 이들에 감사하며 더 큰 행복을 나누려는 마음, 그 마음을 조용히 드러내는 자. 어쩌면 성인이 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까요. '일상에 감사(感謝)'라는 작은 마음의 결단으로부터 우리는 종교가 말하는 위대한 인성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성자를 우리는 주변에 무수히 많이 두고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 성인을 찾으러 나서는 마음, 그 마음이 진정한 종교의 시작은 아닐까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시를, 그 시가 쓰인 이유를 적어보았어요. 부처님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육신의 땅에 오셨지만, 우리의 삶이 그들의 가르침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어요. 고개를 들 수 없이 부끄러워지는 날이에요.



시가 남겨지는 마음을 수요일마다 담아보려 합니다.

시가 허락하는 순간만 남길 테니, 기다리지는 마세요.

시의 변덕을 아름답게 받아들이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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