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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Nov 01. 2024

사라진 생일 케이크

갭이어 여섯째 달

갭이어 다섯째 달인 5월을 지나 보내면서 만들어간 하루의 루틴을 6월에는 잘 유지해 갔다. 

아침(아침이라고 말하기엔 조금은 민망한 시간이지만)에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기대보다 늦은 아침의 기상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러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기분에 따라 개운하게 양치를 하거나 대충 입을 헹구고 

체중계에 올라(관리 차원이 아닌 그저 몇 년째 하고 있는 습관이다) 꾸준히 조금씩 증가하는 체중에 잠시 빠직하고 내려와 

유산균(나는 알약보다는 옛날 프리마 맛에 약간의 고소함이 더해진 달콤한 분말 유산균을 좋아한다. 간식 먹는 느낌이라서)과 밀크씨슬(이런 생활에도 간을 챙길 필요가 있나 싶지만)을 먹은 후 사과 반쪽. 

책상에 앉아 일정 확인과 글(업로드할 글이든, 일기든, 메모든)을 끄적끄적 수정하거나 새로 작성한다. 

저녁에 잠시 원고를 다시 들여다 보고(지금 보면 요일 맞춰 업로드한 결과물 포함 엄청 특별하지도 않은데 뭐 그렇게 꾸준히 했나 싶으면서도 원고 파일은 매일 열었다. 파일 열어보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랄까), 

밤엔 여전히 드라마나 짧게 끊어볼 수 있는 예능에 몰입한다. 

이때는 점심약속도 가능하면 늦은 시간으로 잡을 만큼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혼자만의 특별한 오전 시간에 충실했는데, 어느 날은 그 일정을 지킬 수가 없어 '자체 휴가'를 갖는 것으로 표시를 해두기도 한 것을 보니 그 루틴에 많이 매달렸나 보다. 특히 습관적으로 하는 모든 다른 행동들보다 글쓰기의 경우는 간신히(?) 노력으로 끌고 가는 행위이다 보니 어떠한 이유로든 하루 건너뛰면 다시 안정시키기가 어렵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들여다보건대 그 외의 시간도 꽤나 다채로웠다. 

지난달 방문했던 양재꽃시장과 엄마 집에서 데려온 화분의 안부를 매일 아침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주는데, 그러던 중 유칼립투스 잎에서 흡사 먼지와도 같은 벌레를 발견한다든가(매일 아침 휴지로 닦아 주어도 어느새 다시 생기고 생기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유칼립투스가 떠났다. 잎이 점점 말라가니 아이러니하게도 유칼립투스 향기가 더 강해지는 것은 무엇?), 

동네 문화센터에서 자유수영을 시도한 후 못하는 수영에도 강습 수강 의욕을 뿜뿜 한다든가(매달 수영강습 신청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실패 중이다), 

제주도 어느 곳에서 한다는 노마드 스태프 모집 공고를 알게 되어 1달 제주살이 로망에 사로잡혀 때아닌 지원을 해본다든가(연락은 없었다. 지원 후 친구와 조건이 정당하다 아니다 한참 얘기한 게 무색하리만치 소리소문 없이 까...임), 

갭이어 멘토의 개인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소소한 손을 보태면서 오히려 내가 에너지를 받는다든가(페인트칠 같은 해본 적 없는,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 헬퍼를 자원했다. 1차 프로젝트가 완성된 후 아주 가끔 그곳에서 청소 알바를 했는데, 그런 장르에서 통용되는 최저시급 알바비를 받으면 왕복 교통비 제외ㅠ.ㅜ하고 남은 돈으로 커피를 마시거나 빵을 사서 탕진한다.ㅋㅋ탕진잼), 

세기말적 꿈을 꾼다든가(기억나는 꿈은 대체적으로 너무 생생해서 깨어서도 온몸이 힘들거나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지 영문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어른들 꿈도 이런가. 물론 환상적으로 기분 좋은 꿈을 꿀 때도 있는데 그런 날은 아침뿐 아니라 하루종일 기분이 무작정 좋다), 

점괘에 빠진 여자로 부캐를 잠시 장착한다든가(퇴사 직전 사무실에 사주팔자, 신점, 타로, 별점에 더해 귀신의 기 까지 잠시 대화의 주제로 급부상했었다. 살면서 가끔 관심이 생겨도 막상 실제로는 친구 따라, 재미 삼아 두세 번 뿐이었으나 인생의 큰 변곡점을 맞은 만큼 이번이야 말로 제대로 사주팔자를 볼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이면 생활에 불안함을 느끼기 전에 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불안할 때 들으면 무슨 얘기든 붙잡고 싶거나 우울해질 수 있으리란 나름의 논리적인 판단 결과였다.ㅋ 2월에 문의했는데 새해라 그런지 예약이 꽉 차 6월에나 날짜가 잡혔고, 까마득한 시간 뒤 안 잊어버리면 용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덜컥 6월이 다가왔다. 벌써!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물리적 시간의 경과를 충격적이고도 명확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주팔자를 보고 내친김에 타로카드점까지 한 번 더 봤는데 먼저 본 것에 대한 불신이었는지, 재확인이었는지는... 거의 반반이다.)

하는 일들이 간간히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친구들과의 만남도 꾸준히 특별히 많았다. 다른 이들은 직장 생활하면서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나에겐 쉬면서나 작정하고 할 수 있는 퍽이나 특별한 것들이다. 


지금까지의 나였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고군분투하고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본값으로 장착되어 있는 J를 누르고 가끔 발현되는 P 성향은 쉬는 기간 중 예기치 않은 발견들을 하게 했다. 물론 나중의 일이지만 장기적이거나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시간 덕택에 내가 지금까지 한 게 뭐지? 또는 이 긴 시간 이뤄놓은 게 하나도 없네와 같은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후회는 아니더라도. 괜찮다, 이때는 몰랐고 충분히 즐겼다. 


조금 더 신나는 일이 있었는데, 엄마와의 데이트를 꾸준히 이어가던 중에 하루는 동생의 동행으로 춘천나들이를 다녀왔다. 운전을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엄마와 집 근처 아니면 도심이 아닌 곳엘 갈 수 있다는 것(퇴사 초반에 당일치기로 춘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기절하듯 뻗었던 경험이 있다)이, 그리고 청소년기를 지난 후 엄마와 동생과 내가 함께 외출을 한 건... 내 기억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었다. 세상에. 

그리고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라고 쓰지만 실은 후배들)이 집에 놀러 왔었다. 바쁜 일정 이리저리 조정해 시간을 맞춰 함께 방문한 이들이 어찌나 반갑고 그보다 고맙던지.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퇴근 후 방문한 이들을 위해 음식을 거의 안 해 먹는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먹거리를 준비했지만 꽤나 소박했고, 이들이 가져온 예쁘고도 맛있는 떡 베이스 케이크로 후식을. 


6월을 보내며 마음속으로만 소스라치게 놀랐던 적이 있는데 생일케이크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십수 년 간 항상 생일이면 사무실에서 생일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티타임을 가졌더랬다. '생일케이크가 사라졌다'는 것은 단순히 케이크가 아니라 초와 축하 노래와 촛불 끄기와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한 이벤트용 소품과 이 모두를 아우르는 동료들과의 티타임 등 모든 게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팀 인원이 늘어나 같은 달에 생일이 몰리는 경우가 생기면서 누군가는 그런 달에는 하루에 몰아서 생일파티를 하자고 제안을 했었지만, 다행히 그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안 될 말이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니 생일에 불어야 할 초가 사라졌음을 깨닫게 된 거다. 공교롭게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식구들과도 생일케이크를 하지 못해 올해 난 생일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기분이었던 차다. 생일은 아니었지만, 여럿이 모여 케이크를 먹자니 아니 좋을 수가 있는가. 


덕분에 6개월 차 한 달 동안 루틴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뿌듯함과 특별한 이벤트들로 즐거움까지 시간을 꽉꽉 채워 지내다 보니 '백수 과로사'라는 말을 실감했다. 왜 갑자기 일정이 많아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괜스레 만족스러웠고, 그것도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달의 목표는 자유수영 시간에라도 물에 들어가 보기였다. 백만 년은 좀 과장이지만 햇수를 헤어리기도 어려운 시간 만에 입성 성공!(자유수영도 인원제한이라 선착순에 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수영장에서 물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어려운 숨쉬기에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로 시작해 뜰 수는 있으리라 기대했으나 그렇지 않은 몸에 낭패를, 그저 물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묘한 희열을, 베테랑 할머니들의 수영실력에 감탄을,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의 팔과 발차기에 공포를 한꺼번에 느꼈다. 이제수영강습을 받을 때가 되었어!라고 생각했지만 매 달 한번 모집하는 수영강습은 피 튀기는 경쟁으로 실패. 지금까지도 매달 실패. 


두 번째는 요즘사에서 진행하는 파인더스 클럽(시즌2) 활동에 성심성의껏 참여해 보기. 갭이어라는 주제로 진행된다며 친구가 추천했지만, 스스로 가입하고, 돈을 내고,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은 처음이었던지라 엄청 쑥스럽고, 많이 낯설고, 다행히 조금보다는 조금 더 설렜다. 이곳에서 굉장히 많은 젊은이들(ㅠ.ㅜ 40대는 매우 적다)을 온라인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연차 불문 갭이어를 갖고 있거나 고민 중인 사람들에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었고, 그들이 하는 일이나 사는 모습이나 고민거리들도 정말 가지가지였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합을 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두 달 기간으로 진행되는 기획이었는데 첫 한 달 초심자의 호기심으로 나름 꾸준히, 성의껏 참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퇴사와 갭이어에 대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구성부터, 더듬더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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