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
오늘 아침, 몇 년 동안 함께했는 지도 기억할 수 없는 작은 오디오를 당근 했습니다.
실로 놀랍도록 찰나였습니다.
문득문득 너무 듣고 싶은 CD가 있는데, 장착된 CD 플레이어가 망가져서 못 들었거든요.
수리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모양이 꽤 맘에 드는, 비슷하지만 새로운 오디오를 금요일 밤에 들였고
토요일 저녁, 힘든 하루를 보내고 그토록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오디오보다 더더더 오래된 팔코의 CD를 들으며 행복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는 동생에게 오디오를 갖겠느냐 물었는데 본인은 음악을 잘 안 듣는다며 당근 하자고, 사진 찍어 보내라고.
그렇게 밤 11시 넘어 오디오 사진과 정보를 올렸는데, 질문이 몇 번 왔다 가고,
오늘 아침 7시 30분 새로운 주인이 결정되었습니다.
정말 심플하고 예쁜 아이거든요. 다른 기능은 다 멀쩡하구요.
그래서 어젯밤 고이 싸둔 아이를 아침 10시 30분에 집 앞에서 떠나보냈습니다.
보내고 집에 들어왔는데, 같은 자리에 놓여있는 새로운 오디오가 어찌나 낯설고, 어찌나 허전하던지요.
어제저녁 팔코의 음악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얼른 새로운 애정을 형성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팔코라는 뮤지션의 CD는 제가 초등학교(실은 이제는 이름도 낯선 국민학교) 6학년인지 중1인지 처음 오디오를 구입할 때, 인켈 아저씨가(제가 처음 갖게 된 저만의 오디오 브랜드가 인켈이었어요, 인켈 코지) 테스트로 소리를 들려주고 나서 선물한 건지, 아님 사은품인 건지, 어쩌면 잘못 딸려온 걸지도... 모르지만 처음 갖게 된 CD였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전 카세트테이프를 사고, 듣고, 만들었습니다. 그거 아세요? 예전에는 라디오나 다른 카세트테이프의 음악, 또는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었습니다. 저 고등학생 때까지 직접 만든 카세트테이프를 친구들에게 선물하거나 나눠 듣는 게 한창 유행이었답니다.
어쨌든, 너무 오래돼서 흠집이 많아 엘피 튀듯 버벅거리는 순간들이 있는 CD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팔코에 대해 검색하고는, 그가 1998년, 41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놀라고 속상했습니다. 예전에도 분명히 검색해 보고 알았을 텐데, 그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새롭게 놀라고 속상합니다.
아마도 가장 마지막 검색은 <우어 파우스트>라는 공연으로 알게 된 독일 디자이너의 이름이 팔코라는 걸 알게 된 때였던 것 같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후에 처음 베를린 여행을 했을 때도 검색했던 듯합니다. (앗! 여기서 잠깐, Falco는 독일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출신입니다. 그저 노래의 독일어에서 기인한 저의 연상작용 때문일 뿐입니다. 제가 그 독어 발음 소리를 좋아하거든요. 노래를 꼭 들어보세요!) 어느 시점까지는 기억하고 있다가, 그리고는 떠올릴 일이 없어 기억의 저편 너머로 깊이 넣어두고 어느 순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겠지요.
알았던 것을 잊어버리고, 새롭게 알게 되어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한 사실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완전히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하고, 듣는 순간 예전에 알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알았었다는 생각마저 저의 조작된 기억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꺼내도 괜찮을 때 다시 꺼내드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더 그런 것 같기도.
기억력이 안 좋다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나 싶습니다. ㅋㅋ
오늘은 날이 좋았고, 공기가 좋았고, 바람이 많았고,
두 개의 공연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팽팽팽 돌아갑니다.
휘몰아쳐 흐르는 시간에 휩쓸리다가, 어느 순간 알아차리고는 섬찟 놀라게 됩니다.
시간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는데, 참 자주 잊어버리고, 자주 새롭게 알게 됩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