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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Nov 20. 2024

작은 변화, 그리고 틈

2021년 5월 #4

한 9년,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오래,

만에 안경테를 바꿨습니다. 

그동안 안경렌즈만 시력 변화에 따라 몇 번 바꾸다가 이번에 얼떨결에 테까지 새로 했습니다.  

스타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뭐든 오래 사용하는 편에다 애착물건이 있기도 해 오래되고, 구멍 나고, 늘어나고, 까지고, 낡아도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몇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2-3년은 너무나 기본이고, 5년, 10년 심지어는 20년 넘은 아이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그리 오래되었나 인식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새로운 안경테가 큰 차이는 아니지만, 큰 변화에 기분이 좋았는데 하루 지나 보니 안경은 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그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변화에 큰 관심이 없기 마련이라 그 변화가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경이라는 것이, 저의 피부와도 같은 안경이라는 것이 

오래전 연출가 쌤 한 분이 몇 년 만에 만나서 같은 안경인 것을 보고 저 안경 좀 바꿔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었고,

사무실 동료가 10년 동안 저 안경에 저 귀고리라고 가끔 얘기했고,

어느 날 택시기사님이 손님은 안경만 바꿔도 이미지가 많이 바뀔 것 같다며 바꿔보라고 했던,

사연이 있습니다. 

헉! 갑자기 택시기사님 얘기를 하니까 정말 뜨악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꽤 오래전 엄마집에서 출퇴근하던 때에 매일 택시를 타던 시기가 있었는데(얼마나 피곤했으면), 하루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얘기했더니 기사님이 어제도 본인이 저를 거기까지 태워다 줬다고… 그게 집에서 사무실이었는지, 반대로 사무실에서 집이었는지 잘 기억은 안니지만, 그 얘길 듣고 정말 뜨악했던 기억은 확실히 납니다. 후덜덜한 느낌적 느낌은 아니었는데, 기사님 눈썰미 무엇?! 그보다 더 오래전에 140번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 같은 기사님의 꽤나 자주 마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몇 사연들로 보건대 시크하고 가끔 의외의 친절함이 나오는 그런 기사님이었습니다. 그땐 운행과 교대 시간이 정해져 있는 버스와의 우연이 성립될 수 있었는데 말이지요. 


어쨌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택시기사님은 무슨 의도, 내적 의도라기보다는 뜻? 의미?, 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까요. 오지라퍼이거나, 쉰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거나, 대화를 필요로 하는 말 많은 사람이거나,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는 택시 운전즐기는 사람이거나, 관찰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뭐 그런…

그런데 말이라는 것이 참 이상해서, 화자는 깊은 생각 없이 한 말이 청자에게는 오래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치듯 지나간 말이 예기치 않게 마음에 콱 박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스치듯 지나가는 정체 모를 말이 어떤 예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떤 단서가 되는 것처럼 여길 때가 아주 가끔 있습니다.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이.ㅋㅋㅋ 그때도 안경을 바꾸면 내 일신상의 어떤 변화가 생기거나, 좋은 일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을까 며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일상이나 저의 무언가가 불만족스러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상과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울 때, 주변에서 발생하거나 던져지는 무엇이든 그러모으고 싶어지잖아요. 그러면 어떤 의미가 발생하는 것처럼, 어떤 긍정적 변화가 발생할 것처럼. 

물론 그러한 말들을 들었을 때는 정작 안경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마도 때가 되어, 지금에서야 바꿨습니다. 아무리 귀에 들어오는 많은 말들이 있어도 마음이 동해야만 행동하는 거겠지요. 다시 새로운 결론, 작은 변화가 저의 일상에 틈과 즐거움을 주었네요. 


다음 주면 6월입니다. 

아직도 이렇게 추운 날과 순간들이 많은데, 6월이라니요. 6월은 여름이 아니던가요.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고, 여름은 여름답게 더워야 만물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조금 덜 춥거나 너무 추운 겨울과 조금 덜 덥거나 너무 더운 여름의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도대체 올여름은 또 어떠려나… 싶습니다. 

올 초는 유난히도 비가 많았잖아요.

부디 벌레만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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