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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Jun 07. 2024

25. 알바의 시작

알바_자멸로 이끄는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지났다.

남자에겐 주 1회, 한 달에 4번 컨설팅이 맡겨졌고

남자는 총 12번의 컨설팅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남자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매번 컨설팅이 끝나면 인사팀장의 손에서

남자의 손으로 두툼한 봉투가 건네졌다.

지난 세 달 동안의 컨설팅으로

남자는 총 4,8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제일 먼저 식(食)이 바뀌었다.

남자는 더 이상 빨간 뚜껑의 원통형 우유나

파스타 소스와 면, 고기 같은 음식 재료를

사지 않았다. 당연히 파스타를 만들거나 고기를

굽는 일도 없었다.

필요하면 배달앱을 통해 주문을 할 뿐이었고,

매번 다 먹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시켰다가 거의 대부분을 버렸다.

거대한 와인 냉장고는 고급 와인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다음으로 바뀐 건 의(衣).

무릎이 툭 튀어나온 물 빠진 트레이닝복과

목이 늘어나고 실밥이 뜯어진 티셔츠차림이

일상의 대부분이던 남자는 사라졌다.

유행하는 고가의 브랜드 의류를 입고

깔끔하게 면도를 한 멋쟁이 남자가

이따금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목격되었다.

그리고 남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향수 냄새가

한동안 머물다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바뀐 건,

인(人).

인간관계였다.


- 여보세요? 와 이게 누구야? 진짜.. 맞아?


- 그래, 오랜만이지?


- 야! 그걸 말이라고! 어떻게 지내냐?

안 그래도 애들 한 번씩 만나면 다들 어찌나

네 소식을 궁금해하는지..

뭐 다들 나한테 너는 알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뭐 나라고 아는 게 있어야지.

야 그러고 보면 진짜 너 너무했다.

나한테는 인간적으로 한 번은 연락을 했어야지.

내가 애들이 네 소식 물어볼 때마다 얼마나

쪽 팔렸는지 아냐! 그래도 명색이 베스트불알인데..

야! 이럴게 아니라 우리 얼굴 한번 보자.

애들한테 다 연락할 테니까.

아… 아직, 그러긴 좀 힘든가..?

미안하다. 내가 너무 반가워서 오바했네..


- 아니야. 나도 애들 안 본 지 오래돼서 보고 싶어.

그리고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고..

연락 한 번 못해줘서 정말 미안하다.

말없이 이사 간 것도 그렇고..


- 그래! 이 새끼!

아니야.. 지금이라도 연락했으면 됐어!

야 진짜.. 오늘 애들한테 가오 한 번 잡아야겠다.

너 언제 시간 돼? 우리가 다 휴가를 내서라도

너한테 맞출 테니까 빨리 말해.


- 나는.. 수요일 빼곤 괜찮으니까 나머지는

너네 편한 시간 정해서 알려줘.


- 그래? 좋았어!

이거 벌써부터 입이 근질거리는데 크크크.

누구한테 이 놀라운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지?

야 암튼 진짜 고맙다 임마.

너 그때 그 일 있고 우리가 얼마나..


- 현민아, 그 얘긴.. 그만하자.


- 어? 어! 그래 그래.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다.

이래서 회사에서도 만년 과장이지 하하.

그럼 내가 애들하고 일정 정해서 한 시간 내로

바로 전화할게.


- 천천히 해. 어디 안 도망가니까.


- 그니까! 도망가기만 해 봐 이 새끼.

엇. 대독한테 전화 온다. 야 나 들어가 봐야겠다.

바로 전화할게! 아! 대독이 누구냐면,

대머리 독수리라고 우리 팀 개꼰대 팀장새낀데..


- 얼른 끊어. 대독 이야기는 만나서 하고.


- 흐흐흐 오케이. 끊어~


한참을 떠들어대던 대학 동기와의 통화가 끝나자

남자는 핸드폰을 소파로 던져버렸다.

거실창 앞으로 걸어가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던

남자가 다시 소파로 와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이름들을 주르륵 넘기다

멈추더니 멈춘 화면에서 번호를 하나 선택해서

전화를 건다.

대여섯 번 정도 발신음이 들리고 달칵 소리가

나더니 몇 번의 헛기침 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 아니, 이게 누구야! 무슨 일이야 이게!

오늘 해가 동쪽으로 지겠어!


- 잘 지내셨어요? 상무님.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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