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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Jun 10. 2024

26. 자멸의 조짐(1)

알바_자멸로 이끄는

- 여기야! 여기!


남자가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자

안쪽 테이블에서 손이 하나 불쑥 올라왔다.

손바닥을 활짝 펴고 좌우로 열심히 흔들어대고 있는

현민을 본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얼마만이야 이게! 야, 이 자식 신수 훤한 거 봐바.

친구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벌어 보려고

아주 다 죽어가는데 혼자 아주 연예인이야 연예인.

근데.. 어째 더 잘생겨진 것 같다?

하아,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하고 신은 없는 게 맞아.

세상이 공평하다면 대체 나는 뭘 가지고 있는 거야?

신? 없지 없어! 있다면 직무유기야!


테이블 앞으로 걸어온 남자를

현민이 기다렸다는 듯 덥석 끌어안았다.

이내 남자의 양팔을 부여잡은 현민이

상체를 뒤로 기울이며 눈을 게슴츠레 흘려 뜨고

쉴 새 없이 주절대기 시작했다.


그런 현민덕에 남자는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두 명의 친구와는 급히 눈으로만 인사를

나누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끝도 없이 주절대는 현민을 가게 안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마저 신기한 듯 바라볼 정도가 되자

현민의 옆에 앉아있던 단발머리의 여자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덜미가 잡힌 채 자리로 끌려가면서도 쉴 새 없이

주절대는 현민을 보며 남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단발머리의 여자는

현민 쪽을 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던 뻥튀기로

현민의 입을 틀어막는 신기를 보여주었고

그 모습을 본 몇몇 테이블에선 탄성이 들려왔다.


- 얘는 세금 더 내게 해야 돼. 남들보다 산소를

열 배는 더 쓸걸? 한 마디만 더 해봐.

오늘 술 값 너 혼자 내게 될 테니까.


입에 뻥튀기를 문채 버둥거리던 현민이

여자의 마지막 말에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 진짜 오랜만이긴 하다. 잘 지냈어?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쑥스러운 듯 마주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 어, 현주야. 뭐.. 그럭저럭.. 너도 잘 지냈지?

너네야말로 다들 그대로네.

재승이 너도 진짜 오랜만이다!

현민이는 언젠가 저 입 때문에.. 헉!


남자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남자의 뒤에는 언제 왔는지 키가 190센티는 넘을 것

같은 장신의 여자가 남들 두 배는 될 듯한 손바닥을

남자의 등에 댄 채 서있었다.


장신의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남자의 뒤로

걸어올 때 부터, 거대한 손바닥을 활짝 펴

남자의 등에 내리꽂던 그 찰나의 순간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포착하고 있던

재승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 아하하! 아우 속이 다 시원하네!

어제 회식 때 먹은 문어가 체했는지

영 속이 더부룩했는데 이제 좀 내려가네.

미영아 한 대만 더 부탁하자.

이번엔 저 자식 대가리를 조준해서 한 번..


- 재승아 임마. 그건 안되지!

방금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송장 치울 일 있냐!

미영아, 심정은 우리도 백배 공감이지만 손은 이제

그만 내리자. 너 배구선수 출신이 등짝스메싱하면

그거 살인 미수야.


아직도 입안에 뻥튀기가 가득한 현민이 사방으로

파편을 쏟아내며 미영을 말렸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남자의 뒤에 서있던 미영이

자리로 돌아와 앉더니 빈 맥주잔에 소주를 들이

붓기 시작했다.

빈 맥주잔에 소주가 깔리기 시작하자

현민과 재승은 좋아 죽는 표정들이다.


- 그렇지! 미영아 잘 생각했어!

힘들게 손 쓰지 말고 술로 죽여버리자!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남자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콸콸콸


맥주잔을 채우는 소주의 양이 절반을 넘어가자

남자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고,

2/3를 넘어섰을 때 남자의 얼굴엔 핏기가 사라졌다.


마침내 맥주잔이 소주로 가득 차자 테이블 주변마저

조용해졌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미영을 보고 있는 사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잔만 주시하고 있는 사람,

미영과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는 사람..

주변 테이블에서 다양한 시선들이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영이 소주로 가득 찬 잔을 남자의 앞으로 밀었다.

잔의 끝까지 가득 차 있던 맑은 액체가 관성으로

찰랑거리며 테이블 바닥으로 조금 쏟아졌다.

한 모금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맥주잔만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급히 잔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남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유롭게 자신의 손을 쳐낸 미영이 다시 소주병을

들어 흘러넘친 만큼 잔을 채웠던 것이다.


- 후우.. 이거 마시면.. 이제 다 터는 거다?


남자의 얼굴에 체념과 비장함이 번갈아 자리를

잡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잔을 들어 올렸다.


그때 미영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막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던 남자가 동작을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미영을 바라보았다.

미영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펴기

시작했다.

검지, 중지, 약지,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현민의 입에 물려 있던 뻥튀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미친년..


재승이 허공을 응시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 차라리 대가리 스메싱이 낫지..


마지막으로 현주가 남자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 와! 옛날 생각나고 좋네.

오랜만에 진기한 풍경을 다 보네 이거.

자, 시작하자 얘들아.


현주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명의 친구들이 일제히 외쳤다.


- 후. 래. 자. 식. 독. 사. 발!


後來子息 獨四鉢!


남자의 눈이 한껏 커졌다 돌아왔다.

창백하게 굳어있던 얼굴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해진

남자가 잔을 치켜들었다.


- 사발 중 일발이요!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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