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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Sep 30. 2024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는 너에게

아니,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엔 이런 사람도 있을 거야.


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을 거야.

저 사람은 신입일 때도 일을 척척 잘 해냈겠지.

어쩜 저렇게 매끄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

모든 게 부러워지는 사람.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르고,

그 능력의 크기도 모두 다르다지만

저 사람만큼은 그 법칙에서 예외인 것 같은,

그런 사람.


나는 대체 왜
저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걸까.
나도 노력하면
저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군대에서 나는 포병 부대의 사격지휘병이었어.

FDC(Fire Direction Center)라고 하는데

이게 뭘 하는 사람이냐면.


메인으로 하는 일은 각도를 계산하는 거야.

대포를 쏘면 포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거든?

이렇게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포탄이 타깃에

명중할 수 있도록 발사 각도를 계산하는 거지.

하늘을 여러 개의 층으로 나누어서

각 층의 기온, 풍향, 풍속 등을 고려해서

수평각과 수직각을 계산하는 거야.


물론 이걸 쉽게 계산해 주는 장비도 있어.

그래서 평상시에는 이 장비를 이용하지.

하지만 군대는 항상 비상시를 대비해야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우린 이걸 수동으로도 계산할 수 있어야 됐어.


또 뭘 하냐면.. 맞다, 도판도 그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전지 사이즈 종이를 깔아.

입에 표적핀을 물고 도판 위에 상체를 숙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으면 옆에서 좌표를 불러줘.

그럼 이제 커다란 철제 기구와  잘 깎은 연필로

우리 쪽 진지 좌표를 도판 위에 그려서 찍고

그걸 기점으로 타깃들 좌표를 도판 위에 찍는거야.

전시에 전자장비가 안되면 이렇게 해서라도

포사격에 필요한 제원을 구하는 거지.



병장을 막 달고 훈련을 나간 어느 날이었어.

박스카(이동식 사격지휘차량이야)안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데 이등병 막내가 내 밥을 타 가지고 왔어.


- 나비 병장님! 식사하십시오!

- 아이고 여치야, 밖에서 힘들지?

- 아닙니다!

- 아니긴 뭘, 들어와서 잠깐 앉아있어.

- 괜찮습니다!

- 쓰읍. 셋만에 튀어 들어온다. 하나, 두...


둘을 세기도 전에 박스카 안 보조의자에

직각으로 앉아 있는 막내였어. 역시 이등병이란.


- 여치야.

- 이병! 정! 여! 치!

- 아오, 깜짝이야. 훈련 복귀하면 사단 의무대에

한 번 가봐야겠다. 고막 찢어진 것 같은데..

- 아... 헛... 죄송합니다!

- 여치야, 아니야! 대답하지 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 절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마.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어.

- 네! 알겠...

- 하아... 이제부턴 숨도 쉬지 마. 알았지?

- 흡!

- 이거 보이지? 이게 메트로 떨어지면 제원 계산하는 장비야. 이러저러 저러이러하게 하는 건데..

이제 나중 되면 네가 맡아서 해야 돼. 아니 그렇게 놀란 붕어눈 하지 말고. 내가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건 아니잖아. 천천히 배워서 하면 돼. 두 시간이면 배워.진짜야. 도판 그리는 건 30분만 배우면 끝나.

여치야, 숨은 쉬어야지. 진짜로 안 쉬면 어떡해.

나 영창 보내려고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 헉헉... 후아후아...


그제야 급하게 숨을 몰아쉬는 여치가 귀여워서

이따 몰래 먹으려고 가지고 온 소시지 하나를

건빵주머니에 넣어주고 돌려보냈지.

소시지가 빠질까 건빵주머니를 잡고 뛰어가는

여치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이 나왔어.

역시 이등병이란.



훈련에서 복귀하고 얼마 후부터 여치는 선임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어. 그런데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여치는 기본 문제조차 제대로

못 푸는거야. 여치를 가르치는 애들이 거의 매일

나한테 와서 하소연을 했지. 상황이 심각하다고.

포대장님께 말씀드리고 지금이라도 다른 신병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만 더 있어보자고 했어.


나와 여치의 사이는 지구와 명왕성 사이만큼이나

멀었기 때문에(친함이나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짬밥의 차이 말이야.)여치는 바로 윗 선임에게 정말

많이 혼났어. 거의 볼 때마다 혼나고 있는 것 같더라.


휘파람을 불며 느지막이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여치는 사격 제원을 계산하며 혼나고 있었고,

심심해서 연병장에 내려가보면 거기서도 여치는

도판을 그리며 혼나고 있었어.

저녁에 출출해서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으려고

벙커로 내려가보면 벙커 앞 공터에서 포반에 신호를

알려주는 깃발로 맞으면서 혼나고 있더라.


너무 하단 생각이 들겠지만, 당시엔 어쩔 수 없었어.

여치가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여치는 직접 대포를

담당하는 포반으로 보내질 수도 있거든.

그러면 여치에게는 군생활 내내 꼬리표가 붙을거야.

FDC에서 쫓겨난 멍청이라고.


어느 날, 매점에서 쭈쭈바를 입에 물고 나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벙커 앞에서 여치가 또

혼나고 있는 게 아니겠어. 가만히 난간에 기대서

보고 있는데 정말 엄청 혼이 나고있는거야.

나중에는 혼을 내는 애가 지쳤는지 여치를 밖에

세워두고 벙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버리더라.

나는 매점에 다시 들렀다가 여치에게로 갔어.


- 오~ 우리 여치~ 오늘도 주특기 삼매경이구나!

이러다 육군 최고 계산병이 되겠어!

- 추웅서엉!

- 됐어 됐어. 우리 사이에 경례는 무슨.

야 뭐 하러 여기 서있어. 저기 가서 앉아있자.


쭈뼛거리는 여치의 손을 잡아끌고 그늘에 가서

퍼질러 앉았어.


- 내가 이거 아무나 안 주는데.. 너니까 특별히 주는 거야.


그렇게 스무 살 초반의 어린 군인 둘이 바닥에

퍼질러 앉아 쭈쭈바를 빨았어.


- 여치야 힘들지?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괜찮긴. 다 보고 있어. 맨날 혼나니까 힘들지?


그제야 여치는 쭈뼛거리며 속의 말을 하기 시작하더라.


- 나비 병장님. 저도 진짜 잘하고 싶은데..

제가 머리가 너무 나쁜 것 같습니다.

- 머리는 다 나빠. 아까 걔가 너보다 더 나쁠걸?

- 나비 병장님 보면 진짜 너무 부럽고.. 멋있습니다.

주특기 대회 나가서 상도 받아 오시고.. 훈련 나가서

나비 병장님 하시는 거 보면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저번에 전포대장님도 나비 병장님 나가시면

이제 FDC 어떡하냐고 막 그러시던데..


역시, 남의 입에서 듣는 나의 칭찬은 언제 들어도

달콤해. 그나저나 여치 이 녀석! 잘하는 게 있었네!

이 자식 아부를 참 잘하네.


- 그래, 여치야 너도 곧 그렇게 될 거야.

이 판이 다 그래. 너 나중에 병장 달고 제대할 때

되면 그때의 전포대장님도 너한테 매달리실 거다.

- 아닙니다! 저는 진짜 이쪽은 아닌가 봅니다.

그냥 제가 포반으로 가는 게…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하아... 이 새끼 비싼 쭈쭈바 먹고 못하는 소리가

없네. 다시 내놔. 아니 임마 진짜로 먹던 거 주면

어떡해. 다시 먹어. 여치야, 여치야~

좀 늦게 배울 수도 있어. 하다 보면 다 돼.

우리가 뭐 탄도학을 정식으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냥 하다 보면 다 돼.

- 나비 병장님... 저 진짜 너무 힘듭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하는데...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계산은 하나도 안 맞고, 제원표를 보는 법도 매번

까먹습니다. 도판은 아예 그리지도 못하겠고.. 엉엉


하아, 이 자식...

내가 여자한테도 이런 거 안 해주는데...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여치의 등을 몇 번 토닥여

주고, 손에 들고만 있는 쭈쭈바를 다시 여치의

입에 물려주었어.


- 여치야,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스무 살이 넘은 다 큰 남자 애가

소다맛 쭈쭈바를 입에 물고,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

나는 내 비밀을 하나 말해줘야겠다 싶었어.


- 그러니까 내가 처음 여기 전입 왔을 때 일인데..



- 추웅!서엉! 이병! 박! 나! 비!

- 하아 뭐 이리 어리바리해. 다시 똑바로 못해?

- 추웅서엉! 이벼엉! 박! 나! 비!

- 잘해라? 어? 잘해! 알겠어? 내가 지켜본다?

하아, 이 새끼 어리바리해가지고 진짜..


훈련소를 수료하고 자대에 온 날부터 며칠간은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어야 아 지금이 점심이구나.

밤에 벙커에 상황병 근무를 서러 내려가서야

아 지금이 밤이 구나 했지.


벙커로 불리는 상황실은 내무반 건물과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어. 4시간마다 기상을

내려받아서 포의 각도를 변경해줘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교대 근무를 섰어.

벙커 근무는 FDC 1명과 통신병 1 명,

이렇게 2명이 같이 근무를 서.

벙커에는 사격 제원을 계산하는 장비도 있었지만
타 부대에서 연락이 오면 행정반으로 연결시켜 주는

통신장비가 함께 있었거든.


FDC 교육도 제대로 받기 전에 상황실 근무에

투입된 어느 날이었어.

그날 나는 통신분과 최고선임인 송충이 병장과

함께 근무를 섰지. 지구와 명왕성의 차이보다

더 먼 이등병과 병장이 한 조가 된거지.


- 나비야.

- 이벼엉! 박! 나! 비!

- 시끄럽고. 나 지금 너무 잠 오니까 한숨 잘 거야.

만약에 여기서 삐비빅 거리잖아? 그럼 불 들어오는

곳을 확인하고 이걸 꽂아서 통화를 해.

이 시간이면 주로 포대장님 연결해 달라고 할 텐데.

그럼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이걸 빼서 저길 꽂고

행정반 연결해. 그리고 포대장님한테 누구한테

연락 왔다고  말씀드리고 아까 처음 온 곳 하고

우리 포대장님하고 두 곳을 연결해 주면 돼. 쉽지?

그냥 네가 전화 교환수라 생각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이씨, 그렇게 어리바리한

표정 짓지 말고. 이거 유치원생도 할 수 있는 거야.

- 네! 알겠습니다!


하아.. 이거고 저거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어.

안 그러면 안 될 분위기 같았거든.

그렇게 통신분과 선임은 책상에 엎어져 코를 골며 잠이 들었고, 나는 통신장비 앞에 직각으로 앉아서 세상 온갖 신들에게 다 빌었어.


제발 연락 오지 마라. 제발 연락 오지 마라. 제발 울리지 마라. 제발...


- 삐비비빅


니체가 맞았어. 신은 죽었지. 하아..


- 나비: 토.. 통신보안!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높으신 분: 어, 그래 수고. 포대장 바꿔.

- 나비: 아... 저... 어디신지...

- 높으신 분: 어, 작전과장이야.

- 나비: 추웅서엉! 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진짜 정신이 나가겠더라. 이걸 빼고 저걸 꽂고...


- 포대장: 어, 상황실 왜?

- 나비: 통신보안. 포대장님! 작전과장님 연락입니다!

- 포대장: 아 그래? 빨리 연결해.


이걸 빼고, 저걸 꽂으랬지. 그리고 이건 저기에다

다시 꽂고... 3시간 같은 30초가 흐르고서야

대대 작전과장님과 우리 포대장님이 연결됐어.

해냈어! 이 어려운 걸 내가 해냈어!

감격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아직 삼자통화로 맞물려 있어서 내 숨소리가

두 분에게 다 들렸나 봐.


- 포대장: 어, 나비야. 수고했어. 이제 그만 들어가.

- 나비:..........

- 높으신 분: 뭐야, 들어가라는데 왜 안 들어가.

- 나비:..........

- 포대장: 나비야! 이제 됐으니까 그만 들어가.

- 나비: 저... 포대장님...

- 포대장: 어? 왜?

- 나비: 저... 어디로 들어가란 말씀이신지...


잠시 수화기에선 적막이 흘렀어.

하지만 적막은 3초도 채 되지 않아 끝나버렸지.


- 높으신 분: 푸하하하 크헛 읏힣히 아하하

- 포대장: 나비야, 수화기 내려놓으라고.

- 나비: …. 아!! 네!! 알겠습니다!! 추웅서엉!!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머리를 벽에 처박았어.

나는 바보가 분명해.


어, 그래 들어가~
통화하다 끊을 때가 되면 으레 하는 말.
살면서 수 백, 수 천 번도 더 내 입에서 나왔을,
그리고 내 귀로 들었을 보통의 그 말.


나는 왜 이 평범한 말 한 마디를 못 알아들었을까.

진짜 유치원생도 이러진않을텐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싫고 미워져서

벽에 머리를 박은채 속으로 오열을 하고있었어.


- 크크크크


뭐지? 누구지?


- 크크크크 아오 진짜.. 어디로 들어가냐고?

야 이 어리바리한 새끼야. 뭐 어디 수화기 속으로

들어갈 거야? 저기 비문함으로 들어갈래?

아오 배 아파..


송충이 병장! 분명 좀 전까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어떻게 다 듣고 있었지?


-... 죄송합니다!

- 아니야. 됐어 임마. 오늘 나 웃겼으니 이따 매점에서 냉동 하나 돌려줄게.

- 저... 송충이 병장님.

- 어? 왜?

- 진짜 죄송합니다! 작전과장님 연락인데...

- 괜찮아 임마. 오히려 니 개그에 두 분 다 웃겨서

분위기 좋았을 거다. 전화받는 게 뭐 어려울 게 있나

싶었는데 장난 아니지? 이 선인지, 저 선인지도 헷갈리고,  저걸 빼야 되나. 저선은 언제 빼야 되나.

나는 언제 빠져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크크크.

그래도 좀만 지나 봐라. 너도 나중 되면 자다가도 3초 만에 연결하고 다시 자게 될 거다.


송충이 병장의 말을 듣고도 나는 절대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아니 어떻게 3초 만에

통신을 연결하고 다시 잘 수 있겠어. 말도 안 되지.

저건 송충이 병장 같은 완벽한 사람한테나 적용되는 거지, 나 같은 바보에게는 절대 해당되지 않을 거야.

아, 군대 진짜 싫다.

누가 그랬어. 군대 아무나 가는데라고.

이렇게 어려운데!


시간이 흘러 송충이 병장은 제대를 했고,

나는 통신과 선임과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도

통신이 오면 3초 만에 바로 통신을 연결하고

선임과 하고 있던 농담을 조금의 끊김도 없이

자연스레 연결해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


계속 하니 늘고,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 놔도 돌아가더라.



- 정말입니까? 나비 병장님이 그런..

- 그래 임마. 다 처음엔 그래. 하다보면 계산도

빨라지고, 도판 까짓 건 눈감고도 그리게 될 거다.

내가 장담한다. 그러니까 선임들이 못된 거 같아도

다 너 빨리 배우라고 하는 거니까 너무 모질다

생각 말고 잘 배워. 그리고 쟤네도 힘들어.

쟤네도 맨날 자유시간에 못 쉬고 너 가르치잖아.

오케이?

- 그래도.. 제가 진짜 그렇게 되는 날이 올 것 같진...

- 온다니까! 와! 오고야 말지!

야, 저기 이제 니 선임 나온다. 잘 배워. 알았지?

다음에 훈련 나가면 내가 너 계산 한 번 시켜본다?

쭈쭈바 껍질 이리 내놔.


나는 벙커에서 나오는 자신의 선임을 보고 잔뜩

얼어버린 여치를 일으켜 세웠어.


- 야, 쟤보다 내가 더 선임인데, 너는 왜 나랑 있을 때보다 쟤한테 더 쪼냐.


나는 모래가 잔뜩 묻은 내 엉덩이를 탈탈 털어대며

투덜거렸지만 잔뜩 얼어버린 여치의 귀엔

내 궁시렁 소리는 들리지 않나 봐.


- 아, 나비 병장님. 왜 내려오셨슴까. 막내 쓰다듬어주지 마십쇼. 버릇나빠짐다. 쟤 아직 덜 혼났슴다.

아니, 아직 메트로를 못 푼다는 게 말이 됨까.

- 응, 그래 매미 상병아. 수고가 많다.

안 쓰다듬어줬어. 나도 엄청 혼냈어.

너 여치 이 자식! 잘해! 알았어?


- 뭘 안 쓰다듬어주셨슴까. 딱 보니까 쭈쭈바도 사주셨네.

- 아니야. 이거 내가 두 개 먹은 거야.

그리고 매미 너 이 새끼 말이 짧아?

너 내가 막내 있는데서 다 불어?

너 메트로 일병 때까지 몇 분 나왔더라.

내가 그때 스톱워치 잡고 있었는데 몇 분 이었...

- 아! 나비 병장님 막내가 진짠 줄 오해하겠슴다!

어서 올라가십쇼! 이따 빅팜 내기 한판 어떠심까?

- 흐흐 그래. 간다 가. 여치야 기운내고!

우리 매미도 친절 봉사! 알았지?


이미 다 털어내서 모래가 남아있지도 않은 엉덩이를

연신 털어대며 나는 내무반으로 향하는

비탈진 계단을 올라갔어.


물론 등 뒤로,

 '야 임마.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와 같은 말들이

계속해서 메아리치듯 들려왔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지.


여치는 조만간 매미처럼 될 거고

매미도 이제 나처럼 될 거란걸.

그렇게 어리바리하던 내가 송충이 병장이 됐듯이.



그러니,
남들보다 많이 미숙한 너 자신이
바보 같단 생각이 들어도 괜찮아.
남들도 다 그 과정을 지나온 거야.
그리고,
걔네가 과거에는 더 심했어.


정말이야. 봤잖아?

전화 교환하면서 ‘들어가’라는 말을 듣고

어디로 들어가야 되냐고 되물었던 나였어.

그런 내가 나중에는 3초 만에 교환을 하고,

사단 주특기 대회 나가서 1등도 하고 그랬다니까?

물론 그때 포상휴가 나갔다가 여자친구랑 헤어졌지만.

뭐,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러니,

지금 어딘가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부딪히고 깨지면서 익혀봐.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지금 네가 부럽게 보고 있는 그 사람,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을 것 같은 그 사람.

그 사람의 위치에 네가 서 있게 될 거야.


그 어떤 자리도,

부딪힘과 깨짐 없이

공짜로 주어지는 자리는 없더라.



이 글은,

원석에서 철을 찾는 여정이었던 '돌'같은 10대,

남들의 말과 태도에 쉽게 타오르고

또 금방 식어버렸던 '쇠'같은 20대,

절대 굽히지 않는 신념의 화신이 되어

남들을 태우고 식혔던 '불'같은 30대를 보내고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 중인 청춘이

이제사 방황을 시작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연서.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셀프레터.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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