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에 만나 시절에 헤어지는 그 시절 우리의 시절인연들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머리에 샴푸를 하는데 문득.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머릿속에 번뜩.
한 번쯤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이 궁금하지만 굳이.
시절에 만나 시절에 헤어진
그 시절 우리들의 수많은 시절인연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연들도 있고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연들도 있어.
물론,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인연들도.
좋든, 나쁘든, 지우고 싶든.
어쨌든 이 모든 인연들은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고,
이 기억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눈밑이 가늘게 떨려오는 것처럼
불쑥 찾아왔다 다시 불쑥 사라지곤 해.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걸을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조금씩 두꺼워지는
계절이야.
요즘시절,
너는 어떤 시절인연들을 만나고 있을까.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땐
이리저리 엮이는 모든 인연들이 다 소중했어.
여기도 기웃, 저기도 기웃.
여기도 끌려다니고, 저기도 찾아다니고.
부르면 부르는 대로,
찾으면 찾는 대로.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커피잔이 몇 잔이며,
그렇게 엮인 인연들과
부딪친 소주잔이 몇 잔이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각종 사건, 사고로 어색해진 사람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고
다시 그만큼의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오고,
나는 또 새롭게 마주한 인연들과
커피를 나누고 술잔을 부딪히고.
지금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 시절 내가 만난 나의 시절인연들.
부끄러운 기억에 이불을 차버리기도 하고,
흐뭇한 기억에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
아쉬운 기억에 한숨을 쉬어보기도 하고,
무서운 기억에 눈을 질끈 감아보기도 하는.
지금은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 시절 우리의 시절인연들.
그 인연들의 기억 속에선 나도 그러하겠지.
어떤 인연에겐 이불을 차게 만드는 주인공으로,
또 어떤 인연에겐 꿈에도 보기 싫은 악역으로.
내 기억 속 시절인연들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내가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겠지.
그리고 그 기억들은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엔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기억 저편에 잠들어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서 머리에 샴푸를 하는데 문득.
자려고 누웠는데 머릿속에 번뜩.
찰나처럼 등장해 순간에 사라지겠지.
그러니,
지금 네가 만나는 인연들에 너무 얽매이지 마.
시절에 만나,
시절에 헤어지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인연들이니까.
너무 빠지지도,
굳이 붙잡지도,
애써 맴돌지도,
괜히 겉돌지 않아도 돼.
그 순간,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네가 해도 되는 만큼만 하면 돼.
그 인연들 때문에 웃고
그 인연들 때문에 울고
그 인연들 때문에 가슴 아프고
그 인연들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눈 밑이 떨려오듯
불쑥 찾아왔다 찰나에 사라지는
그런 기억으로만 남게 될 테니.
그러니,
진짜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잘 챙기도록 해.
숨을 쉬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해서 인식을 못하고 있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소중한 인연들 말이야.
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 인연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도록 해.
그럼 너는 늘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고,
순간 불쑥 찾아오는 시절인연들의 기억은
이불을 차버리고 싶은 그 기억,
혼자 배시시 웃게 되는 그 기억,
한숨을 쉬고,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그 기억들은
어쩌면 네가 너의 삶을 잘 살아왔다는
증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지.
시절이 지나
나중에 남게 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기억.
그것도 온전한 기억이 아닌,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눠 가진
아주 작은 기억의 편린일 뿐이야.
이 글은,
원석에서 철을 찾는 여정이었던 '돌'같은 10대,
남들의 말과 태도에 쉽게 타오르고
또 금방 식어버렸던 '쇠'같은 20대,
절대 굽히지 않는 신념의 화신이 되어
남들을 태우고 식혔던 '불'같은 30대를 보내고
4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방황 중인 청춘이
이제사 방황을 시작하는 청춘에게 보내는 연서.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는 셀프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