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수다도 함께 해주실래요?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시즌2

by 박나비

“다녀올게.”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같이 사는 두 분이 출근과 등교를 하자마자

허물어지듯 소파에 널브러진다.

유독 피곤한 아침이다.

초딩을 데리고 잔 다음날은 거의 항상

온몸을 짓누르는 피곤함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매일 꿈속에서 부모의 원수라도 만나는지

이가 부러질 듯 콰드득 콰드득 이를 갈아대는

녀석 때문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참고로 네가 그 정도로 이를 갈 만큼의 원수는

엄마도 아빠도 아직 만들지 못했으니, 다음번

꿈에선 참고하길 바라. 아, 엄마는 모르겠다. 설마…)


무던하고 건장한 건강한 이 녀석의 애미는 녀석의 엄청난 이갈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만 자는 것 같던데,

예민하고 병약한 소년의 애비는 거의 30분

간격으로 깨서 이를 갈고 있는 녀석의 볼을

콕콕 찔러본다.

볼을 누르면 이갈이를 멈출 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볼 푸시’에는 부작용도 있는데,

볼을 누르자마자 무조건 반사처럼 녀석의 팔이

애비의 얼굴을 후려 치는 불효를 저지를 때가

가끔 있다.

그래서 한밤중 바스러져라 이를 갈고 있는 녀석의

볼을 콕콕 누르기 전 애비는 잠시 고민을 한다.

이 한 번의 손짓으로 녀석이 이갈이를 멈출지,

내 눈에 별이 한가득 보일지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심한 이갈이에 이가 상하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되어 치과에도 가보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가 있나요?’라고

물어보시곤 크면 자연스레 없어질 거라고만 하신다.

내심 마우스피스라도 처방해 주실 줄 알고 갔다가 괜스레 요즘 숙제하느라 많이 힘든가 라는 걱정만

새로 달고 왔다.


그런 애비의 마음도 모르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내심 숙제를 좀 줄여 주려나

기대하는 초딩이지만…

어림없지. 놀기만 하던 뽀로로 시절에도

너의 이갈이는 계속되었으니.


각설하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걸음마다

흐느적흐느적 무너져 내리려는 하찮은 몸뚱이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힘겹게 추슬러 소파에

구겨 넣고는 핸드폰을 들어 브런치 앱을 켠다.


오른쪽 상단 종그림에 푸른 점이 찍혀있다.

몽롱한 정신에도 기분이 좋다.

종그림 위에 찍혀 있는 푸른 점은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힘이 있다.

종그림을 터치해 보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ㅇㅇ님이 라이킷했습니다.’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몸은 피곤에 절어 소파에 널브러져 있지만,

마음은 따뜻해지고 기분은 온화해진다.

이 순간엔 누가 어떤 부탁을 한다 해도 다 들어줄

텐데, 아무도 부탁을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알림을 다 살펴보고 나와서는 종그림 옆

내 프로필을 터치해 본다.

내 이름과 내가 쓴 글들의 목록이 나오…어랏.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미묘하게 화면이 다르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화면만 수 십, 수 백번을 들여다본 나다.

아무리 미세한 변화라도 잡히지 않을 리 없다.

눈을 부릅뜨고 세세하게 화면을 살펴본다.

아…

내 이름 밑에 한 줄이 더 생겼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그리고 그 앞에 붙어 있는 푸릇한 녹색 동그라미

안 선명한 검정색의 S.


놀라운 정신력과 소름 끼치는 괴력으로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눈을 비비고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려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괜히 눈을 비볐나.

다시 봤는데 지우개로 문지른 것처럼 사라져 있으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조심스레 살펴본다.



‘와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내딛으려는

당신을 위한 고품격 와인 스토리’라고 쓰고,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의 믹스커피 같은

와인 이야기’라고 읽는 일상와인 스토리 시즌2,

브런치 스토리 크리에이터가 된 놀라운 소식을

전하며 제17화, 시작.




제17화. 다음 수다도 함께 해주실래요?


구독자가 100분이 되었을 때, 짧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고민을 하다 관두었습니다.

넓디넓은 브런치의 세상에

‘경축! 박나비 브런치 구독자 100명 돌파!!’를

기념하는 경박한 흔적을 남기기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구독자가 200분이 되었을 때, 이 고민이 다시 한번

찾아왔지만 애써 손가락을 접었습니다.

천 분, 만 분의 구독자를 갖추고도 묵묵히 본인의

글을 쓰고 계시는 브런치 작가님들도 많이 계신데,

감히 제가 감사의 글을 쓰는 건 오바를 넘어

육바, 칠바라는 생각에 이미 들떠 키보드로 가 있는

손가락들을 준엄하게 찰싹 때리며 꾸짖으며

주머니로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구독자가 300분이 되었을 때.

아… 이때는 정말 누가 뭐래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겠다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에겐 고작 300명 일지 몰라도, 저에겐

300만 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독자 100분일 때부터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고마움을 한 자 한 자 화면에 써 내려가다…

이번에도 역시 그만두었습니다.

괜한 변변치 못한 글로, 너무도 고마운 300분의

구독자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이 마음속에 스며들자마자 쓰고 있던 글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참 소심하기도 하지요.


아직도 저는 제 글을 좋아해 주시고 구독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댓글로 칭찬을 받을 때면 공기 주입기로 온몸에

공기를 불어넣은 바람 인형이 된 마냥

손과 발, 온몸이 기쁨을 주체 못 해 흔들리는

소심쟁이입니다.

제가 글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씨앗을 심고 나무를 기릅니다.

그 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고,

그 열매로 술을 빚어 와인을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 한 스푼에 수다 세 스푼을

섞어 여러분에게 내어 놓습니다.

여러분이 마주하는 ‘일상와인스토리’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매 화, 제가 내어 드리는 이 한 잔의 믹스 와인이

앞에 앉아 계신 여러분의 마음에 꼭 들기를 바라며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속 수다를 정제합니다.


이번 겨울엔 따뜻한 뱅쇼라도 한 잔 더 내어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와인을 빚고,

마음속 수다를 정제해 보겠습니다.


지난한 일상에서 잠시 휴식(休息) 하실 수 있도록

복잡한 세상에서 잠깐 사고(思考) 하실 수 있도록,

고품격 수다살롱 ‘일상와인스토리’의 문은

항상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언제든 오셔서 피식하고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는

휴식(休息)의 시간을 가지시길.

누군가를 때론 무언가를 한 번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사고(思考)의 시간이 되시길.

이 소심쟁이는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그러니 부디,

다음 수다도 함께 해주실래요?



* 시즌2는 이렇게 17화를 끝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매 시즌 10편의 수다로 풀어 볼

계획이었는데, 제 글이 한 회 분량이 좀 긴 편이어서

그런지 시즌1에서 10화 분량으로 구성해 보니

브런치북 적정 분량(60분)을 넘기게 되더군요.

다음 시즌부터는 한 회 분량을 조금 줄이더라도

10편으로 구성할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행복한 와인 생활을 즐기고 계시면, '제18화'로

다시 새로운 수다의 시작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 시즌2를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 한 종을 소개드립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와인들에 비해 가격대가

조금 있긴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소개드리고 싶었던 와인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기념할 일이 생긴 오늘이

그 기회라 생각하고 소개드립니다.


‘마르케제 안티노리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마트나 와인전문점에서 이 와인이 보이시면

가격 태그를 유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5만 원대로 보이면 냅다 집으시고,

6만 원대라도 괜찮은 가격입니다.

집에 잘 보관해 두고 계시다 생일이나 기념일과

같이 좋은 일이 있을 때 오픈하시면

좋을 와인입니다.


700년, 26대를 걸쳐 와인을 만들어온 이탈리아

명문 안티노리 가문의 와인입니다.

마르케제(Marchese)는 ‘후작’이라는 뜻으로,

안티노리 후작의 이름과 작위를 그대로 사용한

와인의 이름에서 그 자부심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와인 품종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릴

산지오베제 품종의 와인으로 정말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조금 경망스러운 표현이지만,

입에 쫙쫙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어떤 느낌인지

직관적으로 알게 해주는 와인입니다.

꼭 한 번 드셔보시길 강력 추천드립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이탈리아 와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끼안티’와 ‘키안티 클라시코’는 많이 다른

개념입니다.

우선 '끼안티 클라시코'와 '끼안티'는 재배 지역이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처럼 명확하게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둘 다 산지오베제 품종에 약간의 블렌딩이

허용되긴 하지만,

‘끼안티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 80% 이상으로,

‘끼안티’는 70% 이상으로 가이드합니다.

그리고 이때에도 ‘끼안티’는 10% 이내로 화이트

품종을 블렌딩 할 수 있지만 ‘끼안티 클라시코’는

화이트 품종의 블렌딩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최소 숙성기간도 ‘끼안티 클라시코’가 12개월,

‘끼안티’는 6개월로 그 절반 기간입니다.

더 자세하게 보면 재배 면적당 수확량에 대한

제한도 다르고, 최소 알코올 함량 기준도 다릅니다.

따라서 거의 다른 와인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끼안티 클라시코’도 숙성기간과 포도밭에 따라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지금 소개드리는 와인은

풀네임이 ‘마르케제 안티노리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로 끝에 '리제르바'가 붙어있습니다.

이는 '끼안티 클라시코'의 세 등급 중 두 번째를

의미하며, 최소 숙성기간 24개월의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이라는 뜻입니다.


자, 이쯤 되면 준비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네, 맞습니다. 위에 설명들은 얼른 한 귀로

흘려버리시고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행복한

와인생활에 해롭습니다.) 오늘은 ‘끼안티’와

‘끼안티 클라시코’는 많이 다르다만 알고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 정도는 우리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일상의 즐거운 와인 생활 중 조금은 사치를 부려도

좋을 그런 날에 이 와인, ‘마르케제 안티노리’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그럼 오늘도 당신의 행복한 와인 생활을 기원드리며

이만. 총총.






keyword
박나비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1,314
이전 06화생라면과 족발의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