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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pr 14. 2024

2. 남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1)

알바_자멸로 이끄는

거실로 나온 남자가 다시 멈춰 섰다.

울렁이는 속과 흔들리는 머리 중

어느 곳을 먼저 부여잡을지 망설이던 남자는

이내 자신의 손이 두 개인 걸 깨닫는다.


왼손으로 배를,

오른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니

처음 이 집을 보러 온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 아휴, 이 정도면 거의 남향이야 남향!


아주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남향이라고

거듭 강조하던 부동산 아줌마의 말이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은 듯한 그녀의 표정과

체격을 보면 상상하기 힘든 하이톤의 억양,

촌스럽게 새빨간 립스틱을 잔뜩 칠한 입술과 함께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사 와서 지내보니

아주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거의 완벽한 서향의 거실이다.


울렁이는 속과 흔들리는 머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남자는 양손을 내리고 거실 밖을 바라본다.

쏟아지는 햇살로 눈이 부시다.


-남향은 개뿔...


부동산 아줌마에겐 제대로 항의도 못하면서

그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게 다인 남자다.


하긴 누굴 탓하랴.

해가 언제, 어디서 드는지도 모를 밤에 집을 보러 온

자신을 탓할 수밖에.


남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예닐곱 걸음쯤 걸었을까.


냉장고 앞이다.

상하단 두 개로 이루어진 구형 냉장고.

남자의 오른쪽 손이 아래쪽 냉장실 문으로 향한다.

손잡이를 잡고 냉장실 문을 열자

휑한 냉장실 내부가 그대로 드러난다.


남자는 냉장고 안쪽으론 시선도 돌리지 않고

문이 열리자마자 문쪽 선반을 향해 왼손을 뻗는다.

뻗은 왼손에 원통형의 플라스틱 병이 잡히자

그대로 밖으로 빼내면서 다시 냉장고 문을 닫는다.


왼손으로 투명한 원통 플라스틱 몸통을 잡고

오른손으로 빨간 뚜껑을 돌려 딴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병째 들어 올려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한다.


- 내가 입 대고 마시지 말랬지!


바로 옆에 있는 듯 머릿속을 관통하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는 남자다.

잠시 병을 입에서 떼고 눈에 힘을 주던 남자는

눈을 감고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투명한 우유통이 빠르게 비어 간다.

그 속도에 맞추어 남자의 목젖이 연신 꿀렁거린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우유 한통을 다 비운 남자가

빈 우유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싱크대의 수도를 틀어 빈 우유통을 헹군다.


깨끗하게 헹군 우유통을 손목을 이용해

몇 번 흔들어 남은 물기를 털어내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빈 우유통을 들고 주방 오른쪽 문을 열자

플라스틱이 가득 담겨있는 종이백이 보인다.


종이백에 빈 우유통을 던지려던 남자가

순간 멈칫한다.


-아... 수요일..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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