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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pr 22. 2024

4. 남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3)

알바_자멸로 이끄는

방문이 열리고 거대한 직육면체가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와인냉장고.

족히 백 병은 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와인냉장고 앞에 남자가 멈춰 선다.

 

손잡이를 당기자 거대한 와인냉장고 내부가

훤히 드러난다.

거대한 외관과 어울리는 원목 재질의

고급진 나무 선반들이 칸마다 놓여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반들이 텅 비어있다.

내외부의 고급스러움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군데군데 대여섯 병의 와인만이

이 거대한 와인 냉장고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대부분이 만원을 넘지 않는 싸구려 와인들이다.


이 싸구려 와인 대여섯 병을 앞에 두고

남자가 장고에 들어간다.

도대체 여기서 이렇게까지 고민해서 고를 와인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잠시 후,

마침내 긴 고민이 끝났는지 가운데쯤 놓여있는

병 하나를 꺼내고 와인냉장고 문을 닫는 남자다.

거실로 나와 파스타가 담긴 접시와 와인을 들고

처음 잠에서 깬 방으로 들어간다.


와인을

잔에 따르고, 마시고, 비우고.

파스타를

입에 넣고, 씹고, 삼키고.

다시

잠이 들고, 일어나면, 우유를 마시는.


어찌 보면 꽤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남자의 일상은 관음의 재미가 썩 좋진 않다.



- 타타탁탁


외부의 불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는 방이

전혀 어둡지 않은 이유는 남자의 앞에 있는

노트북의 모니터 불빛 때문이다.  


한참을 무언가 검색하고 유심히 모니터를 바라보던

남자가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다시 침대로 가서 눕는다.

누웠던 남자는 바로 다시 일어나 침대가에

엉덩이를 반만 걸친 채 두 손을 머리에 파묻는다.


냉장고엔 우유가 반 병쯤.

아, 고기는 이제 없다.

파스타면은 1/3쯤 남은 봉지가 다고

거대한 와인냉장고엔 딱 한 병의 와인이 남아있다.


좀 전에 확인한 통장 잔고의 숫자도 떠오른다.

파스타면 하나도 살 수 없는 세 자리 숫자.

슬며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다시 노트북 앞에 앉는 남자다.


다시 구직 사이트를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대학을 졸업한, 평범한 회사원 이력의

40대 초반 남자를 찾는 곳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월 수익 1,000만 원 보장!]


부동산 시행사 광고에 혹해 연락을 해보았지만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남자의 현실감각으로도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말은

저 하늘 위 뜬 구름만 잡을 수 있으면

대박이란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월급 350만 원.

주방 보조 구함.

월-일 16-03

휴게시간 보장

주방장 350. 주방보조 240.

근무요일, 시간 협의 가능.]


사람 상대할 일도 없고,

주방에서 설거지만 하면 된다는 말에 혹했지만,

주 6일 함께 일을 할 주방장이 네모난 식도로

삿대질을 하며 일분이라도 시간을 어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에 말없이 돌아섰다.


- 위이이이 잉


어디선가 전화 진동이 울린다.

윗집 사람이 또 전화기를 방바닥에 두었나 보다.

하지만 3번쯤 울리면 들리지 않던 평소와 달리

네 번째, 다섯번 째..진동이 계속 울린다.


그러고 보니 평소와 달리 진동 소리가 꽤 가깝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가 진동 소리를 따라 걷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검은색 면바지 주머니에서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는 전화기를 꺼낸다.


모르는 번호다.

잠깐 망설이던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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