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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Apr 30. 2024

8. 인터뷰(1)

알바_자멸로 이끄는

- 아, 인터뷰 일정을 가능한 뒤로 잡아달라고는

많이들 요청하시는데…

당장 내일이라고 하셔서 제가 조금 당황했습니다.

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통화하는 동안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상대지만 이런 당황함조차 노련하고 능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샤크컨설팅이라는

회사 자체에 호감이 가는 남자다.


-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침 대표님께서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시네요.

그럼… 내일 세시 어떠십니까?


- 네, 좋습니다.


- 그럼 제가 이 번호로 저희 회사 홈페이지와

지원하신 포지션에 대한 설명 링크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찾아보시려면 번거로우실 테니까요.



- 쏴아아


욕실 안은 수증기로 뿌옇다.

유리로 된 샤워부스 안으로

흐릿한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쏟아지는 물을 가만히 맞고 있는 남자다.


한참을 그렇게 샤워기 아래서 미동도 없이 서 있던

남자가 손을 뻗어 샤워기의 물을 잠근다.

양 손바닥을 펴 이마에 들러붙어 눈을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뒤로 넘기고는

천천히 온몸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한다.

몸 전체에 비누칠이 끝나자

다시 샤워기의 물을 튼다.

그렇게 처음 자세 그대로 쏟아지는 물을

다시 한동안 가만히 맞고 있는 남자다.


- 뽀드득


남자의 팔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수증기로 뒤덮인 거울에

손바닥이 지나간 길이와 폭만큼  

조금씩 남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렇게 대여섯 번 정도 왕복을 하자

남자의 상반신 전체가 거울에 비친다.


세면대 위에 놓인 비누를 집어

한참을 양손으로 문지른다.

원하는 만큼의 비누거품이 생기자

비누를 내려놓고 면도기를 잡는 남자다.


- 쓰으윽


면도기를 든 오른손이 턱의 아래에서 위로

움직일 때마다 남자의 입 주위를 빽빽하게

감싸고 있던 수염들이 거칠게 잘려 나간다.


면도를 끝낸 남자가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 멀쑥한 얼굴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어색하다.


짙은 눈썹,

그 아래 쌍꺼풀이 없는 적당한 크기의 두 눈.

연한 갈색의 눈동자는 속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심하다.


사선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콧날과

막 면도를 끝낸 터라 푸르스름한 인중과 턱 주변,

거기에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이

남자의 각진 얼굴과 조화를 이룬다.


길에서 마주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뒤돌아볼 만큼 매력적인 외모의 남자다.




짙은 남색 계열의 정장을 아래위로 맞춰 입고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남자가

현관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복장을 체크한다.

오랜만에 맨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살짝 목부분의 조임을 풀면서

타이의 끝이 벨트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가 되도록

길이를 조절한다.


타이 손질이 끝난 남자가 신고 있던 갈색 구두를

흘깃 내려다본다.

허리룰 숙여 양쪽 구두코를  손으로 한 번씩 털고는

드디어 현관을 나선다.



- 띵동


남자가 탄 엘리베이터가 바로 아래층에서 멈춘다.

문이 열리자 중년 여자가 한 명 서있다.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막 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년의 여자가 갑자기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다.

이내 중년 여자의 입에서 온갖 감탄사들이

조금의 쉴 틈도 없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어머어머! 아휴! 어쩜! 이게 누구야!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네!

나 원,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아니 웬 모델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나 했네!

세상에 세상에.. 이렇게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그래..

이렇게 멋지게 하고 어디 나가는 거야?

취직이라도 한 거야?


- 아.. 네..


오후 2시.

이 시간, 이 아파트 주변에 존재하는

세상 모든 호들갑을 몽땅 끌어다 쓰는 것 같은

통장 아주머니에게 늘 하던 대로 두 글자의 대답을

간신히 입 밖으로 내놓는 남자다.


- 이렇게 입고 있으니까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커

보이네 그래. 앞으로 분리수거할 때도 이렇게 정장

입고 나와! 아주 사람이 그냥 180도 달라 보이네.

누가 보면 우리 아파트에 연예인이 사는 줄 알겠어!

호호호. 아휴 진짜 어쩜 이렇게…


- 띵동

때마침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마치 시간이 멈춘 세상에 갇혀있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던 남자는

통장 아주머니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간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마저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그만 반쯤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 문에

몸이 끼이고만 통장 아주머니다.


한바탕 난리를 떨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온

통장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한 듯

괜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중얼거린다.


- 이놈의 망할 엘리베이터는 또 센서 고장이네.

아휴, 관리실 오 과장 이 인간을 그냥..

그나저나 오늘따라 참 빨리도 내려오네.

눈 깜짝할 사이에 1층이구만. 거 참 신기하네.

아 맞다! 수선동의서 받아야 되는데.

.. 뭐 좀 늦으면 어때. 저렇게 멋있는데..

아휴..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한쪽손에만 핑크색 고무장갑을 끼고

그 손에 파란색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통을 든

통장 아주머니가 분리수거장으로 걸어간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휘적휘적 흔들며 걸어가는

통장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기운차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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