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Apr 29. 2024

7. 전화(3)

알바_자멸로 이끄는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전화를 착각해서 그만...


자신의 예상과 다른 목소리에 잠시 당황한 남자가

일단 사과부터 한다.


- 네, 그러시군요. 괜찮습니다.

그럼 통화는 괜찮으신가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전혀 아무렇지 않은

상대의 반응이 외려 당황스러운 남자다.

하지만 아직 어디인지를 밝히지 않은 상대가

의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실례지만 어디신지…


- 저희는 샤크컨설팅이라고 합니다.

저는 인사팀장 박무한입니다.

일전에 저희 쪽으로 이력서 제출하신 적 있으시죠?


전화기 너머 상대는 역시나 차분하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밝힌다.

별생각 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가

마지막 질문에 급히 기억을 더듬는다.


어디였지..

기획실장을 뽑는다던 회사였나..

아니 거긴 동진 어쩌고였던 것 같은데..

아, 컨설팅 매니저에 지원을 했던가..

사무보조로 지원했던 회사인 것 같기도 하고..

하아..


대충 지원 가능한 포지션이면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하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보내놨던 터라

회사 이름도, 어떤 포지션에 지원한 건지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상대와 남자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젠장, 회사 이름이 샤크가 뭐야. 유치하게.

샤크컨설팅, 샤크컨설팅이라, 샤크.. 샤크…


- 잘 기억이 안 나시나 보네요.


몇 초만 더 지났어도 무척이나 어색했을,

딱 적절한 타이밍에 상대방이 상황을 정리한다.

보이진 않지만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띤듯한 목소리에

남자의 불편한 마음이 다소 누그러진다.


-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제가 잠시 헷갈리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결국 기억해 내기를 포기하고

다시 한번 사과를 택한 남자다.


- 괜찮습니다. 보통 지원자분들이 한 회사만

지원하시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 교차지원을 하시기

때문에, 웬만큼 이름 있는 기업들이 아니고서는

인사 담당자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호감 가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다시 한번 기분 좋게

상황을 마무리한 상대가 자연스레 잠깐의 텀을 두고

다시 말을 잇는다.


- 일전에 저희 쪽으로 보내주신 이력서에 대해

검토해 보았습니다. 레퍼런스 체크도 동의해 주셔서

그동안 다니셨던 회사들에 평판조회까지 끝내느라

연락이 다소 늦어졌습니다.

늦게 연락을 드린 저희가 오히려 죄송합니다.


- 아.. 네..


젠장, 레퍼런스 체크? 내가 그걸 동의했다고?

하아… 여긴 그냥 단순히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았던 게 아니었나 보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다녔던 회사와 동료들에게

자신에 대해 꼬치꼬치 물었을 것을 생각하자

갑자기 열이 확 솟구친다.

하지만 이력서 제출 때마다 내용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체크박스에 무조건 체크를 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남자다.


- 이력서를 봤을 때도 괜찮으신 분이라고 판단을

했지만 레퍼런스 체크를 해보니 저희 예상보다

더 훌륭하시더군요.

보통 평판조회를 하게 되면 긍정적으로 얘기를

하는 것처럼 하면서 돌려서 단점을 얘기하시는

분들이 한 두 분 정도는 계신데,

이번엔 농담으로라도 안 좋은 얘기를 하신 분들이

한 분도 없으셨습니다. 다들 공통으로 하신 말씀이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시다는 것이어서

이 부분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우 합리적이시고 조직 내 의견을 조율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에 아주 능하다는 평들도  많이들

해주셨습니다. 게다가...


- 아.. 네..


이어지는 자신에 대한 평판 조회 결과를

계속 듣고 있기가 민망해진 남자가

통장 아주머니가 앞에 계셨으면

또 그 성의 없는 대답이냐고 한 소리 하셨을,

한 글자 감탄사와 한 글자 단답형의 조합을

자동응답기처럼 내어놓는다.


- … 실은 이번 채용 포지션에서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그런 부분들이어서요.

그래서 직접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 아…네…네?


아무 생각 없이 얘기를 듣고 있던 남자가

좀 전처럼 의미 없는 대답을 자동으로 내어놓다

인터뷰라는 말에 정신을 차린다.


- 혹시 무슨 문제라도..?


- 아.. 아닙니다. 그럼 인터뷰 일정이 어떻게...


- 혹시 편하신 날짜가 있으신지요?

아니면 저희가 몇 개..


- 내일..


- 네?


- 내일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pixabay





이전 06화 6. 전화(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