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싶은 마음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과 닮았습니다. 매일 나의 활동과 감정을 기록하고 삶의 균형을 점검하다 보면 잊고 있던 나를,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어요.
한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살면서 계속해서 증명되었죠. 별것 아닌 일로 상처받는 내게 실망하고, 해야 할 일을 끝까지 미루다 결국 포기해 버리는 나 때문에 절망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위기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기에 오롯이 내 힘으로 선택해야 하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황을 악화시킬 것인지, 머물러서 다시 한번 내 방식대로 살아볼지, 아니면 완전히 떠나 새로운 길을 걸어갈지에 대해서요.
그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나를 알 때 명확해질 수 있어요.
번아웃을 겪으며 저는 오랫동안 답하지 못했습니다. 안전하지만 괴로운 현재에 머물지, 두렵지만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따를지 말이에요.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나를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나뿐만 아니라 못나고 싫은 나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갖고 싶었어요. 그동안 방치해 온 인생의 통제권을 다시 갖기로 결심하자 새로운 길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은 내 삶을 나만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집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머물며 미래를 계획하도록 말이에요. 그렇게 수집한 자료는 인생의 빅데이터로 저장되어 힘들고 지칠 때 진정한 힘을 발휘합니다.
나를 만나는 방법
내 안에는 아직 풀어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쌓여 있습니다. 삶이 재미없고 별 볼 일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많은 걸 발견할 수 있어요. 웃고 울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만남과 헤어짐으로 가득 찬 나의 삶을요. 그 도구 중 하나로, ‘나의 연대표 만들기'를 제안합니다.
나의 연대표 만들기
내가 태어난 해부터 현재까지 나의 일대기를 정리한 표를 만들어 보세요. 나이와 연도를 쓰고, 기억해야 할 주요 이야기를 작성합니다. 이야기는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하여 정리하면 더 좋습니다.
1. 나의 이야기
태몽, 학창 시절 칭찬받거나 꾸중 들은 일, 크게 아팠던 경험, 꿈과 목표, 연애, 직업, 취미, 친구, 각종 사건 사고 등
2. 가족 이야기
가족 대소사, 좋은 기억과 상처받은 기억 등
3. 사회적 이슈
사회적 사건이 내 삶에 미친 영향
예를 들어, IMF, 2002년 월드컵, 세월호 참사, 코로나19는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정리하여 데이터가 쌓이면 나를 좀 더 잘 알게 됩니다.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꺼내 보세요. 꾸준히 업데이트하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겁니다.
내가 정말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우리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걸 하는 대신 포기를 배웠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 대학에서는 취업에 성공한 후에, 취업하고는 승진하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한 다음에 라며 현재의 즐거움을 계속해서 뒤로 미뤘죠.
그 결과, 어른이 된 후에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뭘 해야 즐거운지 모릅니다. SNS에 가득한 수많은 예를 참고하여 남들이 즐기는 걸 따라 하고, 유행하는 물건을 사요.
이런 내가 만족스러울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겠죠. 그동안 자신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일이니까요.
그런가 하면 일상을 자기 방식으로 멋지게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배시시 새어 나올 정도죠.
‘나 혼자 산다’ 출연진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기획과 연출의 힘 덕분이겠지만, 나답게 즐기는 삶에 대해 고민할 때 꽤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그중에서 유독 다음 두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집 마당 한쪽 구석에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고급 휴양지 부럽지 않게 내 방식대로 즐기는 김대호 아나운서의 모습
동심으로 돌아가 과학 상자를 실험하고 천문대에서 슈퍼 블루문을 관찰하며 천진한 미소를 짓는 코드 쿤스트의 모습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알고 있어요. 남들 눈에는 시간 낭비처럼 보여도,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고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며 나만의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리고 재미있어 보이는 활동을 꾸준히 찾고 실행해요.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는 이런 몰입의 순간은 충만함을 느끼게 합니다. 짧더라도 나를 즐겁게 하는 행동을 지속하면, ‘스스로를 방치하는 미운 나’에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재미를 느끼는 일을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해보는 것, 그게 설사 아주 유치하게 느껴지는 일이라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해 보세요. 더 깊고 넓은 나를 만나는 가장 행복하고도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