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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핑크 꼬리 원숭이

 원숭이들에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만큼 따분한 일은 없었다. 그런 원숭이들은 자신들만의 놀이를 생각해 냈는데, 바로 다른 동물을 흉내 내는 거였다. 꿀꿀거리며 돼지를 흉내 내거나, 깡충깡충 뛰며 토끼를 흉내 내는 것들이었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거북이 흉내도 냈지만, 너무 느렸기 때문에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원숭이 중에는 유독 장난이 심한 원숭이가 있었다. 그 원숭이는 특이하게도 핑크 꼬리를 달고 있었다. 핑크 꼬리 원숭이의 장난은 다른 원숭이들의 장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는데, 동물의 왕인 사자까지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나무나 바위 뒤에 숨어 갑자기 사자가 나타난 것처럼 포효하면 지나가던 동물들은 납작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거나 달아나 버렸다. 핑크 꼬리 원숭이의 장난에 화가 난 동물들은 대장 원숭이에게 항의했지만, 핑크 꼬리 원숭이의 행동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한편, 숲에서 하루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그 마을엔 마술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술사는 이웃 마을로부터 마술 공연을 부탁받고 마차를 타고 숲을 지나가고 있었다.

 ‘달그닥! 달그닥!’

 마차가 지나갈 때마다 요란스러운 소리가 숲에 퍼졌다. 그 소리는 당연히 핑크 꼬리 원숭이의 귀에까지 들렸다. 마차를 발견한 원숭이의 핑크 꼬리가 살랑거렸다. 심술이 돋아나면 저절로 흔들거리는 꼬리였다.

 “우리 마차에 탄 인간 좀 놀려줄까? 생각만 해도 너무 흥분되지 않니?”

 핑크 꼬리 원숭이의 제안에 주변 원숭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작전을 말해줄게. 일단 내가 저기 나무 뒤에 숨어서 마차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마차가 근처에 왔을 때 사자 울음을 흉내 낼 거고. 그러면 너희들은 깜짝 놀라서 도망가는 거야. 눈치 빠른 인간이 알아채지 못하게 비명 지르는 것도 잊지 말고. 알았지?”

 원숭이들은 작전이 맘에 들었는지 손뼉을 치고 텀블링을 했다. 원숭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위해 숲에 몸을 숨겼다. 

 마술사는 원숭이들의 계략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원숭이들이 숨어 있는 곳 가까이 다가왔다. 기회를 포착한 핑크 꼬리 원숭이는 배에 힘을 가득 주고 외쳤다.

 ‘크헝! 크어~~~ 헝!’

 갑자기 울려 퍼진 사자 울음소리는 숲을 공포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때 원숭이들이 ‘캬악, 캬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술 생각에 골똘해 있던 마술사도 덩달아 깜짝 놀랐다.

 “어이쿠! 큰일 났다! 큰일 났어! 사자가 나타난 거야!”

 잔뜩 겁을 먹은 마술사는 황급하게 마차를 몰았다. 마차는 덜컹덜컹 소란스럽게 숲길을 내달렸다. 그러다 마차에 있던 상자 하나가 ‘쿵’하고 땅에 떨어졌다. 마차는 순식간에 숲길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원숭이들은 허둥지둥 달아나는 마술사의 뒷모습을 보며 바닥을 뒹굴고 환호했다. 

 한바탕 원숭이들의 얄미운 웃음 파티가 끝난 후, 원숭이들은 마차에서 떨어진 상자를 들고 대장 원숭이에게 갔다. 상자에는 리본, 밧줄, 공, 병, 카드 등 처음 보는 물건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마술사의 소품들이었다.      


 이웃 마을에 도착한 마술사는 뒤늦게 소품 상자가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큰일이다! 마술 상자가 없으면 공연을 할 수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마술사는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거렸다.

 “맞다! 숲에서 사자가 나타났을 때 떨어진 게 틀림없어.”

 소품 상자의 행방에 실마리를 찾은 마술사는 서둘러 숲으로 되돌아갔다. 마술사는 사자 소리가 들렸던 곳에 도착해 조심스럽게 마차에서 내렸다. 행여 사자가 다시 나타날까 봐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상자를 찾았다. 한참 풀숲을 헤쳐가며 땅을 살피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원숭이 무리 소리가 들렸다. 마술사는 최대한 조용히 원숭이 근처까지 다가갔다.

 원숭이들은 소품 상자에 들어있던 마술 도구를 갖고 놀고 있었다. 마술사는 원숭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원숭이들은 저마다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그중 핑크 꼬리가 달린 원숭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공을 능숙하게 잘 다뤘는데, 신기할 정도로 재주가 남달랐다.

 그때였다. 공에서 내려온 핑크 꼬리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들을 불러 모으는 거였다. 무슨 작당이라도 모의하는 것처럼 원숭이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렸다. 곧 원숭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핑크 꼬리 원숭이는 나무 뒤로 숨었고, 다른 원숭이들도 제각각 숲에 몸을 숨겼다. 마술사는 원숭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분명, 저 원숭이들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크엉, 크~~ 엉’

 그때 사자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그 바람에 마술사 아저씨가 땅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술사는 아플 사이도 없이 몸을 납작 엎드렸다. 몇 번의 심호흡을 한 후에야 마술사는 고개를 살짝 들고 사자를 찾았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 심장 소리에 사자가 달려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사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땅을 뒹굴고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원숭이들만 보였다. 핑크 꼬리 원숭이는 공중에서 연달아 몸을 돌리며 ‘크엉! 크~~ 엉!’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마술사의 입에서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원숭이들에게 속아 넘어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허탈함과 분노가 동시에 마술사의 감정을 지배했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마술사는 원숭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마차를 타고 마을로 돌아갔다. 며칠 후 마술사가 다시 숲에 왔다.      


 ‘크헝! 크어~~~ 헝!’

 어김없이 사자의 포효 소리가 또 숲에 울렸다. 이미 원숭이들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었던 마술사는 놀란척하며 마차를 빠르게 몰았다. 마술사는 일부러 상자 하나를 땅에 떨어뜨렸다. 원숭이들은 다시 한번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하하! 멍청한 인간이 또 속아 넘어갔구나.”

 “그래, 인간도 사자 앞에서는 별수 없네.”

 “맞아, 그리고 사자도 우리 앞에서 별수 없고 말이야.”

 “맞다, 맞아, 하하하!”

 원숭이들은 마치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허세를 떨어댔다. 핑크 꼬리 원숭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는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어 쉽게 안을 볼 수 있었다. 상자 안에는 알록달록한 무지개 공이 있었다. 

 핑크 꼬리 원숭이는 공을 보자마자 아무 생각 없이 상자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 순간, ‘덜커덕’ 소리와 함께 유리문이 닫혔다. 그 상자는 마술사가 핑크 꼬리 원숭이를 잡기 위해 특별히 고안한 마술 상자였다.

 유리 상자에 갇힌 핑크 꼬리 원숭이는 괴성을 지르며 유리 상자를 발로 차기 시작했다. 놀란 원숭이들도 슬금슬금 유리 상자로 다가왔다. 그때 마술사가 마차를 몰고 원숭이들 쪽으로 달려왔다. 원숭이들은 겁을 먹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마술사는 마차에서 내렸다. 마술사는 유리 상자에 갇힌 핑크 꼬리 원숭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 원숭이야! 내 마술에 속은 기분이 어때? 너도 나를 놀렸으니, 그 벌로 너는 앞으로 나와 마술 공연을 하게 될 거야. 알겠니?”

 핑크 꼬리 원숭이는 풀이 죽은 채 꼬리를 바닥에 축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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