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면담을 하며 깨달은 퇴사를 해야만 하는 이유
갑자기 온 이직 제안, 경험 삼아 본 면접, 어떻게 잘 맞춰진 처우 협상. 경력 이직을 위한 모든 프로세스가 끝이 났는데, 정말 '퇴사'를 말해야 하는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직을 하려면 퇴사는 당연한 건데, 퇴사를 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업계에서 잘 나가는 회사에 다니며 조직에서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사를 밝히면 '너가? 왜?'라는 소리가 나올게 뻔했다. 거기다 갑작스럽게 다른 팀원도 이직 의사를 밝혔고, 다른 곳과 모든 프로세스가 완료 되었을 때 공교롭게도 팀장님은 신혼여행에 가계셨다.
모든 상황이 퇴사를 외치기 적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외쳤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우선 팀장님이 안 계시던 상황이었지만, 하루 빨리 퇴사 의사를 밝혀야 후임자를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본부장님을 먼저 찾아갔다. 인턴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지켜봐주시던 분이었고 평소에도 업무 관련 고민을 이야기하던 터라 먼저 말씀드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대화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마음은 반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면담이 이어질 수록 퇴사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점점 더 명확해졌다.
이직 이유를 여쭤셔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새로운 제안을 여럿 주셨다. A라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어떨지, B라는 팀에 전배를 가서 다른 일을 해보면 어떨지, 현재 상황에서 시스템을 바꿔보면 어떨지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셨다. 하지만 내 모든 대답은 NO였다. 본부장님께서 고안해주신 선택지에서는 내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여기서 더 이상 하고 싶은 건 없구나. 여기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구나. 그럼 여기까지인가보다.
면담을 하면서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굳건해졌다.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까지만 내 머리에는 이직을 해야 하는 이유만 명확했지, 퇴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나는 원래 미래에 있을 일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하고 싶은게 충만해지는 상태가 된다. 이직 제안이 온 곳이 딱 그랬다. 아직 한계를 겪어보지 않아서 그만큼 상상할 수 있는 바운더리가 넓었다. 기존에 하던 업무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고, 관련된 다른 업무도 확장해볼 수 있었다. 반대로 다니던 곳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퇴사와 이직의 본질은 같은 곳에 있었는데 그걸 보질 못했다.
회사나 부서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한계가 더욱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대학교 때도 그랬다. 대외활동 하는 걸 좋아했는데, 기업에서 하는 거든 동아리이든 한 기수가 끝나면 무조건 다른 단체를 찾아 떠났다. 하나의 단체에서 배울 수 있는게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거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크지 않았다. 분명 오래 있으면 깨달을 수 있는 점들도 있었을 텐데 그 지겨운 구간을 견디질 못했다. 새로운 자극만이 배움이라고 생각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첫 회사도 4년 가까이 다녔으니 꽤 긴 시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잘 맞는 곳이었고 재미있게 배우면서 다녔다. 하지만 점차 도전보단 안정이 커졌고, 좋기도 했지만 마약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평온함도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굳이'의 함정에 빠져드는 것이다. '굳이 이것들을 버리고 가야할까?', '굳이 상황을 바꾼다고 크게 달라질까?' 등의 굴레에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들다. 물론 인생에 있어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아니었다.
결국 그날의 대화는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다음주에는 팀장님께서 복귀하셨고, 휴가 백업 미팅을 하던 중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 미팅도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으로 끝났다. 면담을 하며 이미 결심은 100%가 되었는데, 한번 더 퇴사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지만 해야만 했다. 나의 본질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