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IN Aug 21. 2022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

좋은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공교롭게도 퇴사가 확정되기도 전에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들을 뽑는 면접에 들어가게 됐다. 몇 주전 다른 팀원 분께서 퇴사 의사를 말씀하셔서 올려둔 공고가 마침 있었고, TO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이전 글 <저, 퇴사하겠습니다>에서도 밝혔듯이, 퇴사 면담에서 한번 더 생각해보는 것으로 대화가 마무리된 직후 면접이 이뤄졌다. 이미 면담을 하면서 마음속 답은 퇴사 100%로 결정되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는 것조차 거절하기엔 예의가 없다고 여겨졌다.


경력직 분들 이력서를 보고 면접을 들어갈 때 가장 큰 마음은 '제발 좋은 사람 이어라!'였다. 여기서 '좋다'의 기준은 일도 잘하고, 회사에 적응도 잘해서 나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끔 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만한 마음이기도 했다. 나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 하나 나간다고 큰 타격을 받으면 그게 더 문제인데 말이다. 어쨌든 빈틈이 느껴지지 않게 잘 메꿔줄 사람이 들어왔으면 했다.




면접에 들어갔을 때 마음은 그야말로 싱숭생숭 이었다. 웹 예능 <환승 연애>가 생각나기도 했다.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는 이야기인데, 시즌1 때 한참 과몰입해서 봤었다. 그런데 면접을 보는 기분이 딱 그랬다. 이미 새로 갈 곳은 정해져 있어 이성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아쉬운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내 손으로 뽑자 하니, 지난 연인에게 새로운 인연을 직접 소개해주는 모양새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지난 회사, 팀, 업무에 정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나갈 자리에 간절히 들어오고 싶어 어필하는 지원자 분들을 보며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회사의 어떤 특징이 마음에 드는지, 들어와서 하고 싶은 일은 뭔지 가만히 듣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나 또한 4년 전에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즐겁게 일했던 감각들도 다시 피어올랐다. '아, 나도 이런 마음이었지'라는 자각은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부디 그들의 마음이 입사 이후에도 오래 지속되었으면 했다.




다행히 경력으로나 인성으로나 괜찮은 두 분이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금방 잊힐 수도 있겠다는 이름 모를 위기감도 들었다. 나도 결국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도감이 더 컸다. 그만큼 괜찮은 분이 없었으면 다시 한번 퇴사 의사를 밝히기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모든 면접이 끝난 후, 나는 다시 한번 더 퇴사를 말했다.


1년 뒤 제 모습이 너무 그려져요.


팀장님께 한 번, 본 부장님께 한번 분명하게 퇴사 이유를 밝혔다. 여기서의 1년 뒤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안정감이 좋긴 했지만 지금 나이가 아니라면 도전하지 못할 것 같았다.


새로운 걸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알겠어요.


결국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으로 두 번째 퇴사 면담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퇴사는 공식화되었다. 이젠 진짜 퇴사할 날만 남았다.




이직 제안을 받고, 고민하고, 면접을 보고, 처우 협상을 하고,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내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뽑기까지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일반적인 이직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속 고민의 밀도는 지난 4년 치만큼 빽빽했다. 지나온 길을 반추하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그렸던 1개월이란 시간은 훗날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전 08화 저, 퇴사하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