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에피소드 셋, 운동회와 부채춤
내가 어렸을 때, 초등학생에게 운동회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 날은 가족들이 함께 과일, 과자, 김밥, 음료수 등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서 학교에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집안 형편이 힘든 친구들에게는 조금은 쓸쓸한 날이기도 했다. 나는 운동회 전날 밤 부푼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나는 K가 운동회는 참여했을까 궁금했다.
“K, 운동회는 참여했어?”
“운동회라..! 초등학교 1,2학년 때까지는 참여를 했었는데 3학년이 되면서 몸이 안 좋아졌어. 백혈구 수치가 굉장히 낮아졌단 말이지. 그래서 애들이 뭔가 하고 있을 때 멀리서 보고만 있는 정도? 굉장히 참여하고 싶긴 했었어.”
K는 추억하듯이 아쉬운 듯한 미소를 내게 지어 보인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우리는 갔다. 부채를 들고 있는 소녀가 선생님의 마이크를 통해서 전하는 목소리를 따라 서둘러서 운동장으로 뛰어가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달려가는 모습을 본다.
“야, 나 부채 안 들고 왔다.”
“진짜? 선생님 뭐라고 하시겠다.”
“어쩔 수 없지.. 말씀드려야지.”
소녀의 친구가 부채를 안 들고 왔나보다. 부채가 없으면 선생님께서 뭐라고 하실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쿨 하게 말하는 소녀의 친구지만, 속은 타 들어간다. 분명히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자 다 같이 자기 위치로 가서 서 보세요.”
“네~!”
팀으로 이루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부채춤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들 부채 볼 때는 예쁘다고 난리였는데, 연습하는 동안에는 힘들다고 난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 부채 안 가지고 온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다른 팀에서도 몇 명이 안 가지고 온 것이 느껴진다. 소녀의 친구도 일어난다.
“어! 선생님이 부채 꼭 들고 오라고 했나 안 했나?”
다들 말을 못 하고 서 있다.
“다음에는 부채는 꼭 챙기고 와야 한다. 군인이 총 없이 전쟁터 가는 거랑 똑같은 거다.”
“네”
준비물 챙겨오지 않은 학생들에게 하는 선생님들께서 애용하는 멘트이지 않은가.
사실이기도 하고! 그 때 학생들은 차별하는 선생님을 빼고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좋아하고 따르는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서 부채춤을 연습했다. 부채가 하나가 되어서 돌아가고, 하얀 깃털이 달린 은박장식의 분홍색 부채가 나비의 예쁜 날개처럼 펴졌다 접혔다 하는 모습을 연출할 때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사진 찍어야 되지 않겠어?”
“그래 K! 이건 안 찍으면 진짜 안 되는 장면이야.”
그리고 운동회의 하이라이트가 몇 개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어달리기와 박 터트리기가 있었다. 특히나 박 터트리기를 잘 하기 위해서 집에서 사발면 컵 안에 종이가루를 넣고 본드로 붙이고 집에서 콩 주머니를 던지면서 열혈 연습을 하기도 했다.
이어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우는 친구들, 끝까지 달리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마지막 주자들끼리 달리는 부분에서는 응원이 절정에 다 다르게 되었다. 부상으로 노트묶음이 주어지기도 했는데, 아무튼 이긴 팀은 그 날 하루가 정말 온 세상을 가진 듯한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에피소드 넷, 계단 뛰기
K와 나는 조금은 어둑한 하늘 아래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고 있다. 꼭 비가 올 것만 같기도 하고 날씨가 흐리다. 왠지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K와 같이 축축한 기운이 감도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당시 나는 동네에서는 사촌들이랑 지붕을 타고 다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좋아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정말 좋아했었다. 그래서 4학년 때 친구랑 함께 계단에서 뛰어내리기를 하곤 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계단에 비장하게 하지만 무엇이 좋은지 친구와 깔깔거리며 서 있는 소녀를 본다. 아마 또 계단에서 뛰어내리려고 하나보다.
“먼저 첫 번째 칸에서 뛰자!”
“그래, 처음에는 낮게 시작해야지.”
“63빌딩까지 한 번 가 보자.”
“시작해볼까, 하나, 둘, 셋~!”
“점~프”
“히히히히히히”
둘은 아주 신이 나서 웃었다. 계속해서 한 계단식 두 소녀는 올라간다.
“이제 두 번째 칸이다!”
“하나, 둘, 셋!”
그렇게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그리고 열 계단이 넘어간다. 너무 높다고 느꼈지만 깊은 도전의식이 소녀들의 얼굴에 묻어난다.
“하나, 둘, 셋!”
“......”
“어...다리가 이상한 것 같다.”
“나도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
“어어, 야! 못 걷겠다.”
“못 걷겠나?”
“어..”
소녀의 다리가 결국에는 높은 계단들을 이겨내지 못 한 것이다. 그러게 왜 그렇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을까! K는 걱정이 되는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어! 저 때는 아주 심각했지. 저기 봐! 같이 뛰어내리던 친구가 부축해서 가고 있어.”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그러니까 말이야. 그냥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 좋았어. 어린아이들의 영웅심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유치하지? 이제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께 이야기 하겠다. 같이 가보자.”
“으이그, 문제 아이였네.”
“뭐라고?”
“빨리 갑시다.”
소녀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친구의 부축을 받으면서 선생님께로 갔다. 교무실 문이 스르륵 열린다.
“선생님...”
“어, 그래! 다리가 왜 그래?”
“삔 것 같아요.”
“병원에 가 봐야겠는데. 오늘 꼭 병원에 가 봐라. 어떻게 하다 그랬니?”
“...”
어린 소녀들은 아무 말도 못했다. 혹시나 계단에서 뛰어내렸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혼 내실까봐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 말고도 충분히 장난으로 가득한 아이들을 상대하고 계셨으니까!
K와 나는 한 발을 제대로 땅에 딛지 못하고 울먹이며 걸어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소녀는 집에 도착해서 엄마에게 오늘 이야기를 한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소녀를 비오는 날이면 학교 앞에서 기다려주시고, 아플 때면 걱정해주시는 엄마셨다.
“어쩌다가 다쳤는데?”
“계단에서 뛰어내리다가요.”
“그냥 두면 안 되는데”
소녀의 엄마는 주변에서 치자에 대해서 듣고 오시더니, 치자를 개어서 붙여주셨다. 지금 인터넷검색을 통해서 ‘치자의 효능’을 검색 해 보면 알지만 치자는 진통 및 소염작용을 한다고 되어있다. 치자와 밀가루를 개어서 붙여주시는 소녀의 엄마.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치자로 응급처치를 하고, 더 상세하게 알아보고 대처하기 위해서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깁스를 하라고 하셨고, 결국 소녀는 몇 달간 목발을 짚고 깁스를 하고 다녀야만 했다. 어린 소녀는 깁스를 한 것이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깁스하지 않은 것보다 깁스를 하고 관심 받을 수 있다는 어린 마음이었다.
K가 안타까운 눈으로 소녀를 보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이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섣부르게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지는 않겠지?”
“맞아, 관심이 좋아도 다칠 줄 알았다면 이렇게 철없는 행동은 안 했을거야.”
“어리다 어려.”
“어리지 어려.”
“큭큭큭. 학교로 가자.”
소녀는 학교에서 깁스를 한 다리로 수업을 듣고 있다. 화장실을 갈 때도 걷는 것이 힘들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도 돌아다닐 수가 없다. 이 때,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에게 소녀를 잘 도와주라고 이야기 하신다.
“오늘 마치고 피아노 학원까지 내가 들어줄게.”
“진짜? 그래, 고맙다.”
아픈 다리를 한 소녀가 안타깝게 느껴진 친구가 학원까지 가방을 들어준다고 한다. 소녀는 덕분에 피아노학원까지 친구의 도움으로 한 결 수월하게 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갈 수 있다.
다른 날에는 또 다른 친구들도 도와줘서 수업을 마친 뒤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학원에 갈 수가 있었다.
“그래도 이 때 친구들 도움 많이 받았네. 고마워해야겠다.”
“고맙지~ 살다보면 힘든 순간들도 많지만, 돌이켜보면 이렇게 내가 도움을 받은 순간들도 많더라고! K 너도 그렇지?”
“글쎄 ... 초등학교 때는 워낙 병원신세를 많이 졌어. 아프다는 기억이 너무 많아서 도움이라는 생각보다는 아픔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생각이 나. 그리고 원망이라는 단어도 그 때는 나를 지배하는 단어였어”
“하긴.. 사람마다 다른 상황에 쳐해 있는 거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서도 한 동안은 그런 아픔과 원망이라는 단어들이 있었는데,
내게 계기가 있었어. 그런 아픔과 원망이라는 단어 대신 이해라는 단어로 바꿔줬던..“
“그런 일이 있었어?”
“다음에 이야기 해 줄게.”
K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서 ‘변화’가 일어났는지 궁금해진다. 그 변화의 과정이 K를 시간여행을 하도록 돕는 사람이 되게 만든 것은 아닐까? 시간 속에 사연이 있고, 개인의 시간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게 아닐까? K를 더 이해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