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억
나의 중학교 생활은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침 일찍 등교하여 재미없는 시간표에 맞춰 조용히 수업을 들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학교 근처 여기저기의 오락실을 돌며 남은 시간을 때웠다. 오락할 돈이 부족하면 문제집을 핑계로 어머니에게 손을 벌렸고 때로는 게임에 빠져 오락실에서 학교 가방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한두 번은 불량스러운 형들을 만나서 용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홀로 오락실 투어(?)를 마치고 해질 무렵이 되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면 할머니가 저녁을 챙겨주셨다. 부모님은 공장에서 잔업을 하느라고 밤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는 고된 욕체 노동 때문인지 술에 취해서 자정이 넘어 들어오시는 날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싸움에 잠을 미루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곤 했다. 사춘기가 되어서일까? 나는 그런 일상이 너무나 싫었다. 가끔씩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혼돈의 시절, 내 삶의 중심을 찾아주신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무시무시한 수학 선생님. 180cm가 넘는 키, 낮고 묵직한 목소리, 그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 위축이 될 정도였다. 선생님은 무섭고 엄했지만 매사에 차별없이 공정했고,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해주셨다. 믿음이 가는 든든한 호랑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무뚝뚝했지만 학기 초부터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셨다. 나의 성적과 가정 생활에 대해서 처음으로 나와 상담을 하셨고, 수학 시간에는 나에게 칠판에서의 문제 풀이를 자주 시켜주셨다. 나 또한 그런 선생님의 모습에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글짓기 숙제 때문이었다. 전교생들이 참여하는 글짓기 과제. 주제는 가족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가족 이야기를 원고지 10여장의 글로 담았고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선생님은 내 글을 조심스럽게 읽으며 글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중학교 입학하여 내가 들었던 가장 의미있고, 기분좋은 칭찬이었다. 그 이후 나는 매번 반 대표로 글짓기 행사에 참여했다. 비록 입선은 하지 못했지만 언제나 선생님은 나를 응원해주셨다. 소소한 그분의 칭찬 덕분인지 나는 학교 생활이 조금씩 즐거워졌다. 자신감도 생기고 나의 성적도 시나브로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국어와 수학 성적이 크게 향상되었다. 선생님 덕분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주춤할 때는 나를 교무실로 불러서 엄하게 다그쳐주셨다. 그렇지만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시며 잔소리를 마무리하시곤 했다. 그 모든 것이 감사했다.
2학년 마지막 기말고사를 마치고 선생님은 성적 통지표에 이런 문구를 남겨주셨다.
"글재주가 있고 성실합니다".
부모님에 전하는 메시지였다. 짧은 이 문구가 내겐 어마어마한 용기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의 울림으로 남아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덕분에 내가 브런치스토리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가끔씩 중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이 생각난다. 내 삶의 큰 힘을 주셨던 그 호랑이 선생님이 계셨기에 혼란스러웠던 나의 사춘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