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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힌 두려움에 행복을 페어링 해보았습니다

by 하다 Mar 09. 2025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 시기별로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그런 사람이 늘 존재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여자아이들만 보면 뽀뽀를 하던 남자 선생이 있었고, 중학교 때는 동네 곳곳에 무서운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기를 좀 펴나 싶었는데 아주 사소한 이유로 멀어진 친구가 나를 경멸하고 원망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첫 직장에서도 다음 직장에서도 ‘두려움’이라는 명찰을 누군가는 달았다. 그리고는 잊을만 하면 섬뜩하게 다가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과 아무 일도 없었다. 남자 선생은 넥타이로 목을 조르고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고,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질 않았고,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만났다. 직장 사람들도 퇴사를 하면 그 뿐이었다.


최근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그 명찰을  쥐어 주고 만다. 40년의 관성이 붙었는데 하루 아침에 멈추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래서 지금은 누구냐고? 모임에서 안면을 튼 후, 조금 과한 친밀함을 요구하고 집요한 구석이 있어 멀리 했던 A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로 인한 ‘불편함’을 토로했지만 너무 별 일 없이 지내던 나는 마침 공석이었던 ‘두려움’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줬던 모양이다.그 부지불식 간의 취임식 이후, 두려운 자의 한마디는 나를 온갖 상상 속으로 밀어 넣었고 두려운 자의 출현은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한동안 보이지 않아 잠시 동안은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단단해졌다고도 착각했다. 그날이 있기 전까지는.


어수선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자료를 수정해 달라는 요청으로 나가다가 다시 책상에 앉고 나갔다가 다시 책상에 앉길 반복했다. 오후에는 작업 했던 인쇄물에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의뢰인에게 몸둘 바를 몰라하며 사과하고 재작업에 들어갔다. 수익을 완전히 포기하고 수습을 하자고 마음 먹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빠른 결정으로 나름 무너지지 않고 선방했다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큰 한방이 터졌다. 들으면 어이없겠지만 사실 내 일도 아니었다. 사무실 밖에서 지인이 낯선 이와 작은 싸움이 일어났고, 나는 유리 현관 너머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로 밀치며 고성이 오가던 찰나 화가 나 잔뜩 거칠어진 상대의 눈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치고 말았다. 아, 잊고 있던 음지의 두려움이여.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 감정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경찰이 오고 cctv를 보여주고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나만 정리가 안 되었을 뿐. 결국 모두가 돌아가고 난 뒤, 문을 닫고 한의원을 향했다. 몇시간 전 침을 맞고 간 환자가 어기적거리며 다시 침상에 올라 누우니 선생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선생님, 너무 춥고 위가 아파요.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는 선생님 앞에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주저리주저리 만신창이인 하루를 읊어 드렸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 대범해 지고 싶슴다.

곰곰이 듣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받아들이세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어. 스스로 자책하지 마세요.

울 것 같은, 아니 이미 울고 있는 마음으로 침을 맞았다. 자꾸 찔끔찔끔 눈물이 차오르는데 속이 상한 건지, 아직도 무서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편안해진 상태로 겨우 집까지 왔으나 ‘두려움’의 활약은 이제 시작이었다. 불도 켜지 않고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여전히 한기는 남아 있었고 머릿속은 내가 아는 모든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지쳐 숨이 꼴까닥 할 것 같은 순간, 한줄기 빛 같은 말, 글, 그림 그 비슷한 무엇인가가 떠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지금’ 행복하고 싶다고! 그 실낱 같은 생각이 밧줄이 되어 던져졌다. 나는 그 밧줄을 잡고 남은 힘을 쥐어짜내 일어나 앉았다. 문득,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킨 장면이 떠올랐다. (제대로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언젠가 주워 들은 성경 구절을 용케도 기억해 냈다.)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하지만 나라는 앉은뱅이도 분명히 일어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씻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아주 오랜만에 A를 만나게 되었다. 예전의 그 ‘두려움’이 고스란히 착착착 자리를 잡고 나를 점령해 갔다. 나는 그를 향했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며칠 전의 사건으로 피폐해진 마음은 이 상황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으로 당혹스러워 졌다. 그러나 동시에 후들거리며 일어선 그 순간이 떠올랐다. 그래, 일어났지. 비틀거리고 있지만 나는 분명히 일어났어. 다시 주저 앉더라도 나는 이제 더이상 앉은뱅이는 아니지. 뜬금없이 다정한 이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감사한 순간들이 떠올랐고, 행복했던 순간의 감각들이 떠올랐다. 강렬한 두려움에 가려졌던 따스한 것들이 이제는 너무 넘쳐나서 저기요, 잠깐만요, 무슨 일이죠? 다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두려움의 장막을 들춰보며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다. 두렵지만 괜찮았다.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여전히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다. 그에게서 ‘두려움’을 회수하지 못했고, ‘두려움’의 자리를 없애지도 못했다. 다만, 예전과 달리 과하게 달콤한 행복이 여기저기 들쑤시며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막연하게 무섭지만은 않다. 이렇게 또다른 관성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그동안은 육즙이 꽉 찬 두려움을 주식으로 삼았다면, 이제는 옆에 놓인 행복에 취해 ‘두려움 따위 얼마나 익었는지 알게 뭐람!‘ 이러면서 주정 부리는 그날이 오길, 오늘치 두려움 속에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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